이또우와 이규완의 바둑은 계속되었다. 장막 안은 구경꾼들로 열기가 후끈했다. 장막 안은 발을 들여 놓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운집했다. 구경꾼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고수들의 반상혈투를 즐겼다.

"딱히 누가 유리하다 할 수 없겠는데요."

김옥균이 옆에 앉아있는 유대치에게 말을 걸었다. 반상을 골똘하게 바라보고 있던 유대치도 수긍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 연암 선생은 문과 덕은 피어나는 즉시 세상의 것이 되기에 문덕(文德)이다 했으니 오늘 저 두사람의 바둑을 보니 그 말이 실감나이."

유대치가 김옥균의 말을 받았다. 연암은 박지원을 말하는것으로 조선 개화파의 정신적 지주였던 박규수의 할아버지다.

'하하 맞습니다. 바둑이 중국에서 시작되긴 했어도 오늘 조선 일본이 즐기는 도락이 되었으니 연암선생의 말이 한치도 오차도 없는 것이지요."

김옥균도 맞장구를 쳤다. 박지원의 대표작인 열하일기를 우리는 모두 안다. 그러나 열하(烈河)라는 말에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열하는 강이름이 아니다. 열하는 오늘날 중국 하북성 승덕시(承德市)로 내몽고와 화북평야의 경계지점에 있는 '피서산장'이란 별궁의 이름이다.

피서산장은 강희제 건륭제 집권기간의 북방의 방어요충지로 남진을 획책하는 몽고와 주변세력을 막기 위한 요새이기도 했다. 피서산장 안에는 큰 정원이 있고 정원 안에 물을 이용한 여러 디자인을 해놓은 것 중 하나를 열하라 이름지어 놓는 치기(?)를 부리기도 한다.

박지원은 1782년 연행사행단을 따라가 피서산장을 방문하는 행운(?)을 잡았고 그곳에서 라마교의 살아있는 신(神) 반선라마(班禪喇麻)를 친견하는 기회를 잡기도 한다. 반선은 청의 귀족 중의 귀족들만이 만날 수 있던 라마를 건릉제의 명으로 친견한 것이다. 박지원은 불왕 반선라마를 이렇게 묘사한다.

- 전각 속 북쪽벽 아래 침향을 높게 쌓아놓고 연꽃 탁자를 놓고는 반선은 그 앞에 다리를 꼬고 남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누런빛 관을 썼는데 말갈기의 털이 달렸고 가죽신 모양으로 생겼다. 금으로 싼 선의(禪衣)를 입었는데 소매가 없이 왼쪽 어깨 위에 걸쳐 온몸을 감쌌다. 오른편 팔뚝은 드러냈는데 길고 크기가 다리만 했으며 금빛이었다.

낯빛은 누렇고 둘레가 예닐곱 뼘 정도일까. 수염은 없고 코는 쓸개를 떼어 달아 맨 듯하다. 눈썹은 두어 치고 흰눈동자가 겹으로 음침하고 컴컴하다.

"이공, 일본은 언제 출발합니까?"

유대치가 바둑을 구경하는 이동인에게 물었다. 이동인은 유대치의 좌측에 앉아 반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동인이 신사유람단의 중요 인사라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