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치와 김옥균의 만남은 역사적인 것이었다. 중세와 근대가 만나는 역사적인 분기점에서 조우한 그들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김옥균은 유대치보다 박규수(朴珪壽 1817-1877)를 먼저 알았다. 박규수는 연암 박지원의 직계손으로 대원군의 지음을 얻어 외교행정가로 이름을 떨치며 청국 사행단을 여러번 이끌면서 유대치, 오경석 등의 역관들과 의기투합하여 조선에 개화의 바람을 일으킨 사람이다.

박규수는 1866년 병인양요와 병인교옥 등이 연이어 일어난 해에 대동강을 타고 평양까지 들어온 셔먼호를 불태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셔먼호를 공격한 평양감사가 박규수였다. 김옥균은 양부 김병기를 따라 강릉에서 돌아온 16세 무렵부터 박규수의 사랑방을 출입한 것으로 보인다. 박영효는 문집에 김옥균, 서광범, 홍영식 등이 박규수의 사랑방 멤버였다고 했다.

김옥균은 양반 사대부들의 아자서서자아(我者書書自我)의 풍조를 규탄하던 박규수의 영향 때문인지 입으로만 도덕이니 백성이니 운운하며 행동은 전혀 딴판인 조선 양반사대부를 비판하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서재필은 본인이 양반사대부면서 그들을 욕하는 사람이라 김옥균을 평한 바 있다.

조선의 성리학은 도덕과 이상을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학문의 발전과 사회발전의 시금석과 같은 비판정신을 상실한 측면이 있다. 비판 없는 학문과 사회는 거세된 남성의 세계이자 근친교배의 비활력을 낳기 마련이다. 김옥균은 박규수의 사랑방을 드나들다 유대치를 만난 것으로 파악된다.

그들이 만난 시간은 1877년 2월 박규수가 죽었으니 1876년쯤이 아닌가 생각된다. 박영효가 그들이 만난 지 얼마후 박규수가 죽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오세창은 김옥균과 유대치는 만나는 즉시 불교로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유대치는 심원한 불교관의 소유자로 평소 불교에 관심이 많던 김옥균이 그를 접하고 흠뻑 빠져든 모양이다.

유대치는 조선의 학자들이 의례(義禮)에는 뛰어나면서 도념(道念)은 부족하다고 간파한 바 있다. 허례의식에 집중하고 사고하고 비판하지 못하는 조선성리학의 편협하고 고루한 특성을 잘 지적하고 있다. 박영효도 오세창의 말을 이중으로 증언한다. 김옥균은 불교에 흠뻑 빠졌다. 박영효는 김옥균이 불교를 말하면 너무도 재미가 있어 날을 새우고 그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김옥균은 과거를 통과한 후 불교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김옥균을 연구한 다수의 일본학자들은 김옥균이 상당한 선불교의 소유자라 했다. 이날 유대치 사랑방의 토의는 늦은 밤에 끝났다. 사랑방에는 밥상과 함께 바둑판 몇 조가 들어왔다. 요기를 한 후 한판의 바둑대국이 벌어진 것이다.

첫판은 박영효와 유지원이 대국을 하고 김옥균과 유대치는 그 옆에 앉아 관전을 했다. 옆자리에선 다른 멤버들이 바둑판을 벌였다.

"따악!"

박영효가 백으로 천원에 첫수를 놓았다. 흑백이 여덟 점씩 놓고 두는 순장식 바둑이었다.

"고균? 박회를 한번 여는 것은 어떨까?"

유대치가 바둑대회를 열자는 제안을 했다.

"박회를요?"

김옥균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언제 날을 잡아 개화당 인사들을 전부 모으는 게지. 그날 이동인과 김홍집도 부르고 말이야."

"오? 그거 좋은 방법이군요..."

김옥균이 무릎을 치며 찬성을 했다. 유대치의 의견이 탁견이라 믿어졌기 때문이다.

조선실록의 기초 자료인 사초
군왕이 죽으면 설치된 실록청에서 군왕을 지근에서 기록했던 모든 사관들의 기록을 모아 시록을 편찬한다. 이담명은 사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