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질주하던 한상훈 초단의 돌풍이 윤준상 6단에 막히며 일단락 되었다. 돌풍이 끝난 것인지 잠시 멈춘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한초단은 6월 초에 열릴 LG배 세계기왕전 본선에 올라있으며 곧 기성전과 국수전 예선도 시작된다. 한상훈 초단의 첫 번째 쿠테타는 실패로 끝났지만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겼다.
한상훈이 남긴 숙제
최근 한상훈 초단을 중심으로 ‘초단돌풍’이 바둑계를 뜨겁게 달궜다. 사실 어제오늘 있는 일은 아니다. 현재 정상급 기사로 성장한 이세돌, 윤준상 또한 그 주역이었고 모두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중엔 정상급기사로 성장한 이들도 있고 반짝 돌풍으로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이들도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로 접어들며 입단관문을 통과하려면 프로급 이상의 실력에 운까지 따라주어야 하는 현실이 이런 현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상훈의 등장은 극적이었다. 2006년 12월에 입단한 한상훈 초단은 1988년생이다. 현재 국수 타이틀 보유자이자 왕위전 마지막 관문에서 만난 윤준상 6단(1987년생)과 불과 한 살 차이다. 2001년에 입단해 이듬해 LG배세계기왕전 본선에 오른 윤준상 6단의 발자취를 한상훈 초단은 5년이 지난 뒤에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입단대회는 진짜 지옥 문이에요. 제 경우 중1 때부터 만 6년간 무려 15번(본선 10번) 도전 만에 통과했어요. 내신 2등만 3번 했고 그 중 한 번은 딱 6점 차로 입단을 못했죠. 작년 말 연구생 마지막 기회를 못 살렸더라면 대학 진학이냐, 군 입대냐를 놓고 지금쯤 엄청 고심 중이었겠죠. 현재도 연구생 최상위 5명 정도는 저보다 절대 약하지 않습니다. –한상훈 초단의 조선일보 인터뷰(2007-05-07) 中
위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가 동년배보다 실력이 부족해서 입단이 늦었다고 보기 힘들다. "현 연구생 1조의 최상위 5명은 나보다 절대 약하지 않다."는 말도 겸손한 표현이 아니다. 그 또한 몇 달 전만해도 그런 5명 중에 한 명이었으리라. 나이제한에 걸려 퇴출당할 기로에서 막차를 타고 입단한 뒤 승승장구하고 있는 한상훈 초단의 돌풍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등장이 현 프로제도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생 제도의 첫 번째 수혜자 이창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1986년에 11세의 소년이었던 이창호 9단이 프로로 입단했다. 당시 이창호 9단의 실력은 어땠을까? 프로는 물론 바둑 좀 둔다는 아마추어들조차 당시의 소년 이창호에게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창호 9단은 연구생 제도의 첫 번째 수혜자였다. 한국기원은 미래를 이끌어갈 유망주를 키워야 한다는 목적으로 입단대회를 연구생만 참가하도록 제한해 큰 반향을 불렀다. 당시 주변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입단을 준비하던 중견 아마추어들은 갑작스런 변화로 대회에 참가할 기회마저 빼앗겼다. 그런 과정에서 이창호는 최연소 입단 2위(만 11세 1개월)의 기록을 세우며 프로가 될 수 있었다.
이창호 9단은 이후 1989년에 첫 타이틀을 획득(KBS바둑왕전 대 김수장 7단)하고 1990년에는 스승 조훈현 9단을 상대로 최고위 타이틀을 쟁취했다. 1992년에는 동양증권배에서 린 하이펑 9단을 물리치고 최연소 세계타이틀 홀더가 되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바둑의 제왕으로 군림하며 바둑계가 베풀어준 특혜에 백배 보답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제도의 변화가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예이다. 다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성공 뒤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도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경쟁은 연구생들도 해야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더 치열해야 한다. 프로가 되어 벌이는 경쟁보다 프로가 되기 위해 벌이는 경쟁이 더 심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일선에서 도장을 운영하는 관계자들은 상황을 훨씬 심각하게 보고 있다. 한국의 양대 바둑도장으로 유명한 권갑용바둑도장과 허장회바둑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권갑용 7단과 허장회 9단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권갑용 7단) 한국에는 당장 프로가 되어도 아무 문제 없는 연구생들만 30명 정도 된다. 가장 약한 연구생도 이들과 선 이상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상급 기사라도 이들을(연구생 12조) 2점 접고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상태라면 해마다 10명 정도의 프로급 강자는 입단을 포기해야 하며 이로 인해 어린 유망주들도 바둑에 등을 돌리고 있다. 단지 여기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위에서의 정체가 도미노 현상처럼 퍼지며 매년 바둑교실에 등록하는 원생수도 줄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은 벌써 여러 제도로 이 문제를 극복해 어린 유망주들이 마음껏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았다. 입단 연령차이도 한국과 3년 정도로 벌어졌다. 정상급으로 성장하려면 적어도 15세 이전에 입단해 프로무대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근래에 15세 이전에 입단한 기사는 박정환 초단뿐이다. 지금도 중국과의 경쟁에서 점점 밀리고 있으며 앞으로의 미래는 더욱 암울할 뿐이다.
(허장회 9단) 이미 3~4년 전부터 나타나던 문제가 이제는 최고조에 달했다. 현행보다 최소 10명은 더 입단을 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기사 수를 늘릴 수는 없고… 프로기전 자체도 개혁을 해야 한다.
프로기사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토너먼트 프로로서 활동할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다. 뒤에서 지도나 보급을 위해 발로 뛰는 것도 프로의 중요한 소임이다. 입단자수가 늘고 바둑이 활성화 되면 이런 길도 자연히 열리지 않겠는가. 입단제도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로 인해 현재 바둑계 전체의 시장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프로기사라고 다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서서 말은 못하지만 찬성하는 쪽도 많이 있다고 알고 있다. 나도 일선에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처지라 이런 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있어 아쉽게 생각한다.
제도개혁, 더는 미룰 수 없다.
지금까지 연구생 제도와 함께 프로제도는 한국바둑 발전의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변했다. 예전에 합리적이고 좋았던 제도가 현재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변화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제도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한국바둑은 애매한 위치에서 방황하고 있다. 프로제도는 일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스포츠화 바람이 불며 중국을 벤치마킹한 랭킹제도와 바둑리그가 생겼다. 바둑의 도와 예를 중시하는 일본과 바둑을 스포츠라 여기는 중국 사이에 이도저도 아닌 한국바둑이 있는 꼴이다. 요즘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같기도’가 떠오른다.
무작정 입단의 문호를 개방하여 프로기사의 수를 늘리는 것은 합리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나이제한 조항에 걸려 쓸쓸히 떠나야만 하는 유망주들을 이대로 지켜볼 수는 없다. 이는 그들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국가적인 손실이다. 답은 간단하다. 한쪽이 열린다면 그 반대쪽도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엄격히 얘기하면 퇴출 연령이(만18세까지 입단하지 못하면 퇴출되지만 연구생 5조까지는 원할 경우 1년 연장이 가능하다) 문제라기보다는 적체 현상이 더 문제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라도 불운을 겪을 수 있는 일이므로 한상훈 초단 한 명의 사례로 ‘19세 퇴출 조항’이 적절하다 부적절하다 할 순 없다. 그렇지만 프로들도 공공연히 “연구생 1조는 프로 5, 6단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는 마당에 현행 입단 문호의 폭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입단의 기회를 넓히고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프로의 랭킹을 정해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개념이다. 물론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기 위한 마이너리그 대회에 대국료 및 기타 비용을 없앤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입단을 하면 마이너리그에 포함되고 매년마다 일정수의 메이저리거는 밑으로 떨어뜨리고 마이너리그에서 그 수를 보충하면 된다.
프로 문호를 넓히되 골프처럼 컷-오프제를 도입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하다. 기전마다 대국료가 지급되는 커트라인을 정해놓고 예선을 벌인다면 프로가 300명이건 400명이건 문제될 게 없다.
입단한 프로는 무조건 기전 참가가 보장되어야 하고 대국료가 반드시 주어져야만 한다는 불문율. 이는 프로기사들의 생활과 연관된 문제이자 자존심과 직결돼 있다는 점이 우리 바둑계가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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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상훈 초단을 중심으로 ‘초단돌풍’이 바둑계를 뜨겁게 달궜다. 사실 어제오늘 있는 일은 아니다. 현재 정상급 기사로 성장한 이세돌, 윤준상 또한 그 주역이었고 모두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중엔 정상급기사로 성장한 이들도 있고 반짝 돌풍으로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이들도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로 접어들며 입단관문을 통과하려면 프로급 이상의 실력에 운까지 따라주어야 하는 현실이 이런 현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1986년에 11세의 소년이었던 이창호 9단이 프로로 입단했다. 당시 이창호 9단의 실력은 어땠을까? 프로는 물론 바둑 좀 둔다는 아마추어들조차 당시의 소년 이창호에게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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