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문가에 서 있던 세종 전군은 말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라고 해서 감정이 없겠는가. 정한(情恨)이 마음 한복판에 똬리를 틀고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꿀꺽 삼켜버렸다. 한때 살을 맞대고 살았던 여인에게 그가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어차피 한 세상 병권을 쥐고 큰소리치면 뭐하나. 인생이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 아닌가. 미실의 호출로 월성에 왔다는 말을 들었지만 말없이 떠나버린 전군(殿君)을 생각하며 지소태후는 이를 갈았다.

‘고 요망한 것 때문이야. 요망한 것.’

그날 정오가 이른 시각, 또출(又出)이란 자가 설약사와 함께 나타났다. 염소 수염을 기른 똥똥한 몸집의 사내는 묻지도 않은 말로 지소태후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었다.

“에헤헤, 소인은 양동리 마을에서 댕견을 ‘흘레’붙이는 또출이라 합니다. 그 마을뿐 아니라 일대에선 소인의 흘레붙이는 솜씨를 알아줍지요.”

“흘레라니?”

설약사가 설명을 하려는데 또출이가 얼른 받았다.

“이를테면 짝붙이깁니다. 종자가 단단한 수컷을 씨밭이 넉넉한 암컷의 헬레레에 쏘옥 넣어주는 것입지요. 그리되면 아무리 사나운 암컷도 소인이 접붙이는 솜씨를 아는지 새색시마냥 뒷발에 힘을 주고 버티길 잘 합지요.”

지소태후는 또출이의 말이 흥미로운지 빙그레 웃을 뿐 말은 끊지 않았다. 그런 기미에 대해 누구보다 눈치빠른 또출이는 자신의 특기라도 내보이는 양 주절댔다.

“에헤헤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서라벌의 귀부인들이 양동리 마을에 아랫것들을 보내 단단한 댕견을 구하는 건 이유가 있습지요.”

“그게 무슨 소리냐?”

“사람도 나이 들면 기력이 쇠해집니다. 그럴 때 원기를 회복하려 개를 잡아먹습니다만, 서라벌의 귀부인들은 유달리 수컷 댕견을 선호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댕견은 암컷이 훨씬 사납고 무섭습니다. 발정기에 접어들어 짝을 못 지을 땐  어느 누구건 사정없이 물어뜯지요. 해서, 댕견을 팔았어도 소인은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사나운가?”

“아무렴입쇼. 우리 신라에는 ‘투견(鬪犬)’이란 개싸움이 없지만 바다 건너 중원엔 별의별 싸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테면 뱀을 잡아 사투(蛇鬪)를 벌인 일도 있다니까요.”

“흐음, 사투라 그것 재밌겠구만.”

“아이구, 그런 말씀 마십쇼. 중원엔 여러 종류의 독사가 있어 가까이만 가도 목숨을 잃는 뱀이 비일비재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중원을 다녀온 사람들이 기이한 독물을 가져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얘기를 여기서 끊었다. 설약사의 눈짓이 거기까지 허용한 것이다. 지소태후는 또출이에게 봉사화랑을 명하여 보명궁에 머물게 했다. 어차피 댕견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니 먹이를 주고 집을 지키는데 필요한 여러 일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양동리 마을에 댕견을 주문했기에 미실도 크게 신경 쓰는 상황이 아니어서 이 일은 문제 삼지 않은 채 넘어갔다. 월성에 사는 이들이 개를 보지 않은 자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보명궁에 개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왕족의 자제나 귀부인들이 이따금 찾아와 개가 좋아하는 먹거릴 던져주며 즐거워했다.

또출이는 철저하게 주위를 속였다. 자신이 키우는 댕견은 ‘투견’용이기 때문에 곡식보다 육식을 자주 먹었고, 육식 중에서도 독사(毒蛇)를 약간 상하게 하여 구더기가 생길 때 고기를 먹게 했다. 토종 댕견은 질겁할 것이지만 평소 투견으로 상대를 물어 죽여야 할 상태에서는 무엇보다 질긴 육질이나 독이 있는 물건에 면역이 되어 있었다.

그런 이유로 발정(發情)이 오기 전까지는 비교적 주인의 말에 고분고분했고 찌꺼기 음식이나 인분(人糞)도 다소곳이 먹을 정도로 순해 보였다. 그러나 장원을 한 바퀴 돌며 침입자들을 찾아낼 때엔 예의 쫑긋한 두 귀를 곧추세운 채 호랑이 같은 모양새로 주위를 압도하며 두리번거렸다.

미실도 그 점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러기에 손을 대지 않은 좋은 음식을 댕견의 식사대용으로 내주었다. 그러나 몇 달에 한 번 찾아 온 발정의 시기를 모르고 보니 육질을 먹어야 하는 댕견의 습성을 알 리 없었다. 설약사는 보름이 가까워지자 또출이를 불렀다.

“보명궁에 있는 아이들 얘기론, 보름 무렵엔 누군가 보명궁 뒷담을 넘어온다는 말이 있네. 워낙 비밀이라 상대가 누군지는 알 수 없네만 날이 밝도록 미실과 색사를 즐기다 돌아간다고 하니 좋은 기회라 보네. 어떤가, 앞으로 닷새 남았는데 그날 도둑을 잡을 일이 준비됐는가?”

“아무렴입쇼. 닷새 후면 내일부터라도 독사의 상한 고길 줘야겠군요. 그걸 사흘만 먹으면 혀에 인이 박혀 고기가 먹고 싶어 환장할 겁니다. 누군가 담을 넘어 온다면 기다렸단 듯이 목을 물고 늘어지겠지요. 예에, 그렇습지요.”

“실수 없도록 하게. 기회는 한 번뿐일세.”

“아이고 걱정 마십시오. 어김없이 침입자를 잡겠습니다.”

   ▲사투(蛇鬪) ; 뱀을 이용한 싸움. 아마 도박꾼들이 이용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