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안이 뒤끓었다. 남도의 연회를 다녀온 진흥왕이 미실을 원화(源花)로 삼은 건 파격적인 대우였으나 다음날 아침에 떨어진 교지는 파격적인 것이라 하마터면 까무라칠 지경이었다. 새주(璽主), 옥새의 주인 새주로 삼은 것이다. 그 소식에 진흥왕이 공무를 보는 남당으로 지소태후가 찾아갔다.
“내 주상께 할 말 있어 왔습니다. 내가 남도의 연회를 열게 한 것은 그 동안 내게 베푼 은고에 대한 보답이었어요. 그래서 아무 욕심 없이 남도의 연회를 열게 한 겁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기에 미실 그 아이에게 원화를 시키고 새주에 임명했습니까? 어디 말좀 들어봅시다.”
“어마마마께 먼저 말씀드린다는 게 그렇게 됐습니다. 화랑은 본시 원화(源花)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화랑도 직제를 놓아둔 채 원화를 부활했습니다.”
“그러면 원화가 뭡니까?”
“어마마마도 아시잖습니까. 화랑의 전신인 그 옛날의 원홥니다.”
“허면, 그 원화는 어떤 일을 합니까?”
“그 옛날과 같지요.”
“같아요? 화랑을 거느립니까?”
“예에, 어마마마.”
“이것 보세요 주상! 세종 전군을 풍류주에 명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고작 한 달입니다. 그런데 고 요망한 것을 원화로 삼아 화랑들 위에 군림한단 말입니까?”
“어마마마, 소자는 그게 허물이라 보지 않습니다. 세종 전군이든 누구든 나라를 위해 일합니다. 힘이 있는 자리라도 때에 따라선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나라에 힘이 되는 일이지요. 세종 전군은 이제껏 병사 업무엔 관심 없었어요. 풍류주 자리도 마지못해 맡았습니다. 그런 세종 전군의 업무를 미실로 하여금 일부라도 맡아 달라 소자가 청했습니다.”
“그러니까···, 궐내에 떠도는 말처럼 아녀자가 억센 화랑들을 다스린단 말입니까? 주상이 세종 전군에게 병권이 있는 걸 견제하려 꾸민 일이 아닙니까?”
“당치않습니다, 견제라니오.”
“그렇잖소. 그렇기에 미실에게 새주(璽主)를 명한 것 아닙니까. 그 요망한 것이 새주가 됐으니 어미도 찾아가서 예를 올려야 합니까?”
“아니옵니다, 어마마마. 오해십니다.”
“주상이 어디까지 권한을 줬습니까?”
“소자가 그런 교지를 내린 건 원화로 복귀하면 반대세력이 일어날까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미실에게 왕후와 맞먹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호오, 이런 변이 있나. 진골도 아닌 일개 대원신통 나부랭이에게 왕후와 같은 실권을 줘요? 이젠 어미 앞에서도 유난을 떨겠군요. 아니, 어미에게 문안인사 드리라고 채근하겠어요. 늙은 목숨이 하루라도 하늘을 우러르려면 그렇게 해야지 별 수 없잖습니까.”
“어마마마, 소자가 그런 직함을 내린 건 억센 화랑들이 제 분수를 모르고 날뛸 걸 염두에 둔 조처였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세종 전군의 힘을 빼앗는 자리에 그 요망한 것을 임명했으니 얼마나 날뛰는지 두고 보겠습니다.”
지소태후는 냉담한 낯으로 남당을 나와 처소로 돌아왔다. 생각할수록 분했다. 자신의 힘을 빼앗기면서까지 세종 전군을 풍류주로 만든 건 장차 병권(兵權)에 의지할 수 있는 기대감이었다. 그런데 미실이 ‘원화’에 ‘새주’를 꿰찼다면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구경할 수밖에는 한심한 상황이었다. 마음으로는 절대 안 된다는 부정의 뜻이 강했지만 현실은 이미 교지가 내린 상태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태후는 설추경을 가까이 불렀다.
“궐 안에 소문이 자자한 걸 보니 고 못된 것이 내명부에 알린 모양이야. 이젠 자신의 세상이 됐으니 누구라도 자기 앞에선 허릴 굽혀야 된단 거겠지. 이보오, 설약사.”
“예에, 마마.”
“호랑이 없는 곳에 교활한 여우가 왕이라 했다지만 나는 두고 볼 수 없네. 그러니 방법을 생각해야지.”
“예에, 마마.”
“무슨 방법이 있는가?”
“마마께선 이미 마음을 정하셨습니다. 이젠 세종 전군의 부인도 아니고 대왕의 후궁입니다. 왕비마마께서 허락이 떨어졌기에 대왕께서 새주(璽主)를 삼은 것으로 본다면 그 위세(威勢)는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하오나···.”
“내가 아직은 살아있어요, 설약사. 고 요망한 것의 할미 옥진 궁주가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가. 그걸 알기에 월성에서 쫓아낸 것인데 주상이 어미 모르게 실권을 줘요? 그러나 난 두고 보지 않습니다.”
“예에, 마마.”
“가장 혹독한 방법을 사용하세요. 그것이 윗전을 모르고 함부로 나선 것에 대한 참혹한 댓갑니다. 하루라도 빨리 사용하세요.”
“예에, 마마.”
“나에겐 원망만 있을 뿐 왕실의 권위는 없습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시겠습니까?”
▲새주(璽主) ; 옥새의 주인. 당시엔 이 자리가 왕후와 맞먹는 권력이었다.
▲옥돼지는 장식용이지만 왕실이나 집안이 번성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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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