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왕후는 몇 번이나 태자가 현실로 돌아와 나라의 형세를 살피고 병략(兵略)을 읽으라 했지만 그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었다. 잠시 월성에 들어온 세종 전군은 미실이 대왕을 섬긴다는 느닷없는 소식에 실망해 백제와 대치한 변경으로 떠나버렸다. 자신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고 크게 낙망한 아들을 보며 지소태후는 어금니를 질끈 악물었다.

‘요물, 요물인 게야. 내가 이룩한 신국(神國)에 해충(害蟲)이 날아든 게야. 그 요망한 것을 없애지 않는 한 장차 형제와 부자(父子) 간에 더러운 다툼이 일어날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어쩐다, 어찌해야 하나. 이 일을 어찌해야 좋누?’

아무리 이리저리 굴려도 좋은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 무겁게 가라앉은 태후전(太后殿)인데도 설추경은 약사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그가 수하를 풀어 거둬들인 정보가 조심스럽게 수놓아졌다.

“마마, 미실 낭주께서 보명궁을 지킬 ‘댕견’을 한 마리 구했다는 소식입니다.”

“댕견이라?” 

‘댕견’은 양동리 마을에서 자라는 신라의 토종견이다. 생김은 진돗개와 비슷하나 꼬리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5센티 내외로 짧다. 복종심이 강해 우수한 토종견으로 경주 일원에 알려진 우수견이다.

“소인이 들은 바에 의하면 그 ‘댕견’은 복종심이 워낙 강해 주인이 아니면 다른 사람 말을 알아듣지 않는다 하옵니다. 그 개가 내일 아침 일찍 보명궁에 당도할 것으로 궐 안에 소문났습니다.”

“그 얘길 어찌 하는고?”

“소인은 그 주인을 포섭해 궁으로 데려오는 게 좋을 것으로 보옵니다.”

설추경의 뒷말이 이내 이어졌다.

“그리하면 마마의 뜻을 이루리라 보옵니다. 소인에겐 다른 계책이 있나이다.”

“미실 그 아이를 요절낼 계책이냐?”

“예에, 마마.”

지소태후는 깊은 심호흡을 몰아쉬었다. 아직도 그녀 가슴엔 깊은 응어리가 맺혀 있었다. 남도(南桃)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진흥왕이 깜짝 놀랄 일을 발표하지 않았는가. 오래 전에 원화(源花)를 폐하고 이룩한 화랑을 한순간에 폐한다는 교지였다. 화랑을 비롯해 중신들의 놀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이것은 지소태후 쪽의 모든 힘을 없애는 살벌한 교지다.

“설약사.”

“예에, 마마.”

“미실 고 요망한 것이 원화가 되어 나서려는 건 내 아드님 세종 전군이 가지고 있는 힘을 빼앗아 날 누르려는 것이오. 그걸 알면서 이대로 있을 수는 없소. 주상이 보명궁에 부자(附子) 사용을 엄금했으니 그 방법을 쓸 수는 없고···.”

“마마, 그래서 소인이 주청드린 것입니다. 마마의 뜻을 펼치는 데엔 무엇보다 댕견의 주인이 나서야 소득이 있을 것입니다. 소인에게 이 일을 맡기시고 마마께선 좋은 소식이 날아들 날을 기다리십시오.”

“그리하리다.”

그 시각, 보명궁에선 동륜태자가 달덩이처럼 둥그런 도자기를 호기심 있게 만지작거렸다. 그것은 여느 것과는 다르게 목언저리에 개구리가 깜짝 놀란 모습으로 뒤쫓아온 뱀을 돌아보고 있었다. 물론 이곳엔 다른 동물들도 적지 않았으나 그런 것은 그냥 붙어 있을 뿐 지금의 것처럼 희화성은 없었다. 아마도 동륜태자도 그런 점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문득 시비(侍婢)가 아뢨다.

“태자마마, 세종 전군에겐 융명을 정실부인으로 받아들이라는 명이 떨어졌나이다.”

“그래야겠지.”

“또한, 미실 낭주를 원화(源花)에 임명해 화랑의 직제를 바꾼다는 소식이옵니다.”

“아하하하, 그게 무슨 소리야. 아바마마가 이젠 내명부 실권까지 미실에게 줬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 어마마가 무척 서운해 하실 텐데?”

“아니옵니다. 그 일도 왕후마마께서 진언했다 하옵니다. 소식을 듣고 미실 낭주께선 월지궁에 행차해 양위마마와 말씀을 나누는 중이옵니다.”

“가만, 가만···. 그리 되면 어찌 되는가. 내명부 실권이 미실에게 가는 건 그렇다 해도 화랑을 움직일 권한까지 받는다면 신라의 병권(兵權)을 반이나 받는 것 아닌가? 이것은 대왕마마의 실권을 위협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건 모르옵니다.”

“하긴 네가 그것까지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미실 낭주가 아바마마를 어찌 다뤘기에 하루아침에 화랑도 직제를 바꾸고 원화를 부활시키는가? 이렇다 보면 월성의 모든 실권이 미실에게 옮겨 가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