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죽음을 당한 구후의 딸은 역대 중원의 왕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여인이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남편의 손에 죽은 첫 번째 여인이었지만 성도 이름도 남기지 못하여 요절한 왕후 명단에 끼지 못했다. 그녀는 자기 혼자 죽은 게 아니라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분까지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녀가 이렇듯 비참한 말로를 걷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녀에게 선택권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맺어준 배필을 지아비로 맞이하여 싫으면 당연히 이혼해야 하는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당시의 풍습 때문이었다.

자수신의 비인간적인 만행은 삼공 중 유일하게 남은 희창을 슬프게 만들었다. 자신이 어떤 사실을 간언하면 그 결과가 눈에 빤히 보이는지라 이러지도 저럴 수도 없었다. 게다가 주위의 눈이 있고 보니 한숨도 쉴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숭후호(崇侯虎)의 고자질이 자수신에게 전해졌다.

“대왕마마, 높으신 성덕을 신은 찬양해 마지않습니다. 하온대 중신들 중엔 마마의 성덕에 대해 한숨짓는 무리가 있어 참으로 그들을 받들기 민망하옵니다.”

“받들기가 민망하다?”

“그는 삼공의 한 사람인지라.”

“흐음, 그래. 서백이 한숨지었단 말이지.”

고자질한 숭후호. 숭후는 관명이고 호는 이름이다. 숭후호의 성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중원의 사서(史書)엔 늘 병폐가 나타난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성을 만인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이름만 기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서(漢書)> 등의 역사기록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이름만 보일 뿐 성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저명한 역사학자들이 천년을 두고 연구 · 토론했지만 지금까지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어쨌건 숭후호의 고자질은 무척 선동적이었다. 많은 부락의 추장들을 자신의 심복으로 만들어 때가 오면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뜻을 숨기고 있다고 했으니 자수신은 노발대발하여 서백을 체포해 감옥에 가둬버렸다.

당시 서백의 큰아들 희고(姬考)는 상왕조(商王朝)의 인질로 잡혀 자수신의 어거(御車)를 몰고 있었다. 그를 잡아들여 기름에 튀겨 죽인 후 시신을 맷돌에 갈아 그의 아버지에게 갖다 주었다. 자수신은 희고의 살을 그의 부친에게 전하여 이런 말을 했다.

“희창이 성인(聖人)이라면 자기 아들의 살은 먹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할 것이다.”

그러니까 서백이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죽음을 택하리라 자수신은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폭군의 압력에 그는 아들의 살을 먹을 수밖에 없었으니. 서백이 아들의 살을 먹었다는 소식에 자수신은 득의만만했다.

“아하하하, 희창을 성인이라 할 수 있느냐. 제 아들의 살을 먹고 그게 뭔지도 모르고 있으니!”

자수신이 가져온 게 뭔지를 알았지만 서백은 그것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먹으면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할 희망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서백은 아들의 살을 먹은 후 사흘간 구토를 하며 뱃속의 모든 것을 토해냈다. 자신이 아무리 구박을 받는다지만 서백으로선 방법이 없었다. 주부락(周部落)에선 여러 친구들이 모여 그를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

백방으로 펼친 구출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마지막으로 자수신의 약점을 찾아 공략했다. 그들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를 수집하고 절세미녀를 징집했다. 많은 미녀들을 신부락(辛部落)에서 데려와 상납하자 마침내 기원전 1142년에 서백을 석방했다. 미녀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온갖 교태를 부렸기 때문에 마음이 풀린 자수신은 대량의 활과 화살을 서백에게 건네주었다.

“공은 과인에게 섭섭한 게 있으면 그걸 잊으라. 과인이 공을 수감했던 것은 숭후호가 공을 밀고했기 때문이니 섭섭히 생각지 말라.”

폭군은 다른 사람의 입장은 생각지 않는다.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아무리 많은 공을 세운 충신이라 해도 이용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제거해 버린다. 자수신이 숭후호를 밀어낸 것도 눈앞의 조그만 이익 때문이다.

서백은 주부락으로 돌아가 기원전 1136년 초여름에 숭부락을 공격해 멸망시키고 주부락을 숭부락 지역으로 옮겼으며 숭부락 사람들을 모두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숭후호가 밀고한 대가는 그 자신의 몸이 짐승의 사료가 된 것과 온 백성이 노예로 전락한 엄청난 것이었다. 서백은 숭부락을 멸망시킨 이듬해, 즉 1135년에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중 한 사람인 희발(姬發)이 추장직을 이어받았다.

이 사람이 얼마 안 가 주왕조(周王朝)를 건립해 스스로 주무왕(周武王)이라 칭하고 죽은 아버지 서백에겐 주문왕(周文王)이란 아호를 내렸다. 그가  주왕조의 1대 제왕이다. 희발은 추장이 되자 상정부(商政府)에 군사행동을 했다. 황하도구에 8백여 부락의 전사들을 집결했으나 그들은 오합지졸이라 상정부의 일격도 받아내지 못하고 뿔뿔히 흩어져 버렸다.

첫 번째 무장이 실패했다. 그러나 이것은 상왕조의 상종(喪鐘)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자수신은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이 돌아가는 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다. 주부락의 희발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상정부에 밀파한 정보원들의 소식을 기다렸다. 보고가 들어왔다.

“간사한 도배들만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지금이 상정부를 무너뜨릴 좋은 기횝니다.”

희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얼마후 소식이 날아들었다. 무고한 백성들이 이유없이 체포 처형되어 민심이 어수선하니회가 왔다는 것이다. 희발은 자신의 지혜보따리 강여상을 불렀다. 역사에 전하는 태공망 그 사람이다.

▲서백(西伯) ; 삼공의 하나로 이름은 희창(姬昌)이다.

▲상종(喪鐘) ; 죽음을 알리는 종. 곧 멸망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