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계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얼마 안 가 자천을을 풀어주었다. 일이 여기에 이르자 중책을 맡은 이윤은 상부락의 추장 자천을과 손을 잡는다. 군사동맹을 통해 하왕조와 대항하기로 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회가 있었다. 사이계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흐트러진 민심 수습에 나섰다면 어지러운 정세를 원만히 되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미 시매희의 미색에 깊이 빠져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기보다는 더욱 흉폭해졌다. 이런 탓에 십여년이 흐르는 동안 거의 모든 부락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결국 기원전 1776년 자천을의 연합군단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연전연승의 기세로 몰아쳐 오자 사이계는 짐심(斟鄩)을 포기하고 4백년 전의 도읍지 곧 안읍(安邑)으로 도주했으니 연합군단의 추격대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추격해 양군은 명조(鳴條)에서 참패했다.

사이계는 황하를 건너 적국인 이적국(夷狄國)으로 갈 생각을 했다. 정치 망명을 위해 열심히 수레를 달렸지만 연합군단의 추격은 대섭도구(大涉渡口)에서 그를 생포하고 말았다.

자신을 태양이라 칭한 사이계. 그는 포로가 된 후에야 자신이 끝장나도 태양이 따사롭게 천지를 비추고 있음에 장탄식을 쏟아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쓸데없는 아량을 자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탄식이었다.

“아, 정말 후회스럽구나. 내가 자천을을 없애 버리지 않는 게 후회스럽다. 일찍 그를 제거했다면 오늘같이 후회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이로 보면 그 역시 폭군이 지닌 공통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폭군들의 공통성은 자신의 소행은 반성하지 않고 배신한 사람만 미워하고 원망한다는 점이다. 사이계 역시 마찬가지다. 주지육림에서 거침없이 많은 충신들을 도살한 과오를 반성치 않고 큰소리만 쳐댄 것이다.

연합군단은 사이계를 비롯하여 비단찢기를 좋아하는 시매희까지 생포해 두 부부를 수차(囚車)에 태워 멀리 소호(巢湖)로 추방해 버렸다. 안읍에서 소호까지는 직선거리로 7백킬로미터다. 지금은 개발되어 유람선이 떠다니는 휴양지지만 그 무렵엔 황량하고 조습(潮濕)해 여름엔 모기떼가 극성스러웠다. 그렇다보니 사람이 거주할 조건은 하나도 갖추진 못한 것이다.

오랫동안 주지육림의 기름때오른 놀이에 길들여진 그에게 텁텁한 평민생활은 고행(苦行)의 나날이었다. 그것은 고형(苦刑)이었다. 평민생활도 아닌 유배생활이었으니 그 고생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상왕조의 보좌에 오른 자천을이 제왕의 보좌가 얼마나 좋은지를 몸소 체험했고 보니 그가 하왕조의 사이계를 그냥 뒀을 리 만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두 사람은 소호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역사기록엔 그들이 어떻게 죽었다는 게 나타나지 않는다. 굶어서 죽었을 수도 있고 병사했을 수도 있고 익사할 수도 있다. 그들이 처량하게 죽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상왕조에서는 사이계에게 걸제(桀帝)라는 칭호를 내렸다. ‘폭군’이라는 뜻이다. 미실이 하왕조에 대해 관심을 가진 건 그게 신라와 관련있지 않았나 하는 점 때문이었다. 시매희는 절세의 미모를 지녔으나 비명에 죽은 첫 번째 왕후다. 그녀가 아름다운 건 사실이지만 지명도 면으로 볼 때 소달기(蘇妲己)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소달기는 시매희보다 6백년이나 늦게 태어났다. 그러나 역사의 인물로는 여자 중에선 단연 선두다. 훗날의 사람들도 시매희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지만 소달기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녀처럼 행과 불행을 동시에 겪은 여인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달기(蘇妲己). 이것은 후세 사람이 붙여준 호칭이다. 당시엔 그녀를 달기라 불렀다. 그녀의 성은 기(己)고 달(妲)이 이름이다. 그녀는 소부락(蘇部落) 추장 딸이므로 성이 소씨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상하다. 왜 한 사람의 성이 두 개인가. 그 원인이 어디 있는지는 3천여년이 지났지만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지금에 이르러선 그녀의 습관적 호칭이 달기란 점이 좀 더 정확히 말해 소기(蘇己)라고 해야 옳다.

성이 뒤쪽으로 오면 현대에 사는 우리로선 서양풍의 냄새를 느끼게 되지만 실제로 중국에선 그게 결코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달(妲)은 요염하고 아름답다는 뜻이고 어여뿐 기(己)는 아가씨의 대명사다.

6백여년 전. 사부락과 똑같은 운명이 되어 추장은 자신의 딸 소달기를 내놓으며 화평을 청했다. 이때가 기원전 1147년으로 상왕조의 제31대 제왕 자수신(子受辛)이 다스리던 세상이었다. 상왕조에서는 소부락이 반란 징후를 보이자 대량의 정부군을 이끌고 토벌에 나선 것인데 소부락에선 달기를 내놓고 화평을 청한 것이다.

자수신은 그녀의 용모를 보고 넋이 달아날 정도였다. 달이 부끄러워하고 꽃이 수줍어 고개를 숙일 정도여서 자수신도 눈이 번쩍 뜨였다. 토벌군의 입장에선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었으나 달기의 용모에 넋을 잃은 제왕은 첫마디에 화평을 승낙하고 즉시 군대를 되돌렸다.

소달기가 태어난 기원전 12세기. 서방(西方)에서도 절세미녀가 한 명 출현했다. 그녀 역시 소달기처럼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꺼지는 엄청난 재앙을 일으켰다.

▲짐심(斟鄩) ; 하남성 공현

▲명조(鳴條) ; 산서성 하현

▲대섭도구(大涉渡口) ; 산서성 하현의 서황하도구

▲왕가에서 쓰는 금제내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