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의 명이 살아있으니 이곳에 있다 해도 어김없는 부젭니다. 그 책 내용대로 재생비법을 완성한 후 다시 찾아오세요. 물론 거처는 이곳 보명궁입니다.”

그러니까 설원랑이 재생비법을 사용하는 동안은 밖으로 나올 수 없고 그것을 완성했을 때라야 만나줄 수 있다는 얘기다. 미실이 굳이 장소를 말하지 않았지만 시비(侍婢)들은 설원랑을 특별한 장소로 안내해갔다.

재생비법을 한방에선 ‘심영폐위(心榮肺衛)’로 설명한다. 사람이 그 생명을 영위해 나가는 데 있어 영(榮)과 위(衛)가 맡고 있다는 것으로 이 기운들이 끊어지면 당연히 죽는다. 영은 심장이 맡으며 혈액이 그 표상이다. 그런가 하면 위는 폐장이 맡고 기(氣)가 그 표상이므로 기혈이 끊어지면 죽는다.

만약 기혈이 약하거나 끊어질 위험이 있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당연히 영을 고르게 하여 근심을 밀어내야 한다. 이른바 조영양위(調榮恙衛)다.

필요한 약제는 ‘인삼’이다. 인삼을 많이 복용한 사람이 쉽게 안 죽고 오래 끄는 것은 그 원인이 여기에 있다. 우리의 몸을 돌고 있는 기혈은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묶이면 막히고 막히면 동하며, 동하면 급해지며(緊), 급해지면 빠져나가려(滑)한다. 그러다가 힘이 지치면 깔깔한 현상이 나타나고 깔깔함이 지나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뭉쳐지고, 뭉쳐진 것이 오래 되면 적이 되고, 옹저(종양)가 된다. 이것을 원문으로 적으면 이런 내용이다.

<縛則 寒하고 寒하면 動하나니 動하면 緊이라. 緊은 縛之色者也이며 緊之則 滑하고 滑盡하면 濇하며 盡則 聚하고 聚久則 成縛하며 癪而 榮衛不通則 作癰疽니라.>

그러므로 <성사>에서 말하는 음경에 고무가락지를 끼우는 것은 음경이 ‘박(縛)’한 것이다. 즉, 묶이는 것이다. 묶이면 색(濇)이 와 막힐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되면 생체의 생명 본능은 동(動)하게 되고 동(動)하다 보니 묶인 곳은 긴급을 요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는 피부에서 빠져나가려고 활(滑)의 현상이 일어나고 이 현상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활이란 현상은 마치 손아귀에 쥐어 있는 미꾸라지가 피부에 점액을 증가하면서 미끄러져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미꾸라지가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다 힘이 지치면 정액분비가 멎고 몸이 까끌거린다.>

여기에서 말하는 색(濇)은 까끌까끌한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보니 미끄럽지가 못하다. 이 상태는 기혈이 통하지 못하니 뭉치는 현상이 생기는데, 기혈이 끊어졌으니 돌아갈 길을 잃고 하나의 수분(임파선)으로 변해 부어오른다. 혈액이 임파선으로 변하는 건 피부의 땀구멍을 이용하려는 의도다

그런데 양경의 표피는 나름대로 기혈의 힘을 못 받으므로 땀구멍을 열어 조절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힘을 잃게 돼 당연히 수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나갈 구멍이 없으니 임파선 뭉치는 서로 꼭꼭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적(癪)’이라는 땡땡한 뭉치다.

이 상태가 오래 되면 속에서 곪기 시작하거나 세포의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우리 피부에 생긴 조그만 부스럼이라 할지라도 빨갛게 뭉치고 뜨끔거릴 때까지는 종기(腫氣)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내장의 강경변증, 자궁근종, 위암 등도 그 뿌리를 따져보면 대게 10년 이상 그 부위에 이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사>의 재생비법은 이러한 기혈현상을 이용해 양경을 재생시키는 방법이었다.

설원랑이 물러간 후 미실은 월성의 판도를 생각해보았다. 지소태후가 별다른 움직임없이 몸을 낮춘 것은 모든 것을 미실에게 건네줬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상황이 좋질 않으니 몸을 낮춘 채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자는 의도였다.

더구나 세종 전군이 풍류주로서 화랑들을 움직이고 있으나 이것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내실은 이미 원화(源花) 자리가 넘어간 상태였다. 언제 아들의 위상을 빼앗으려 들지 모르기에 태후 역시 함부로 움직이는 걸 삼갔다. 그러나 왕가의 인물들이 모일 때도 모른 척 하지는 않았다.

“지난날 그 아이는 세종 전군의 계집이었으나 행동이 방자스러워 내가 내쳤습니다. 그것을 전군이 식음을 전폐하여 궁에 들어옴을 허락했는데 이젠 새주(璽主)란 세력으로 성장했어요. 이보세요 주상.”

“예에, 어마마마.”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오. 그 아이에게 원화(源花)까지 내릴 생각이오?”

“이미 명은 내렸으나 미실 궁주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탓에 세종이 아직 풍류주 자리에 있잖습니까. 태후마마, 전군이 그 자리에 있을 때만이라도 월성이 평안했으면 합니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만약 태후가 지난날의 수렴청정을 생각해 함부로 나선다면 세종의 풍류주 자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섬찟한 경고였다.

▲새주(璽主) ; 옥새의 주인. 아직도 권력의 자리에 돌아올 수 있음을 나타낸 말

▲원화(源花) ; 병권을 쥘 수 있는 힘을 나타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