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보기엔 빨리 방비를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은 대원신통(大元神統)의 씨를 말리려고 태후마마가 마련한 계책입니다. 섭정을 거두고 왕권을 대왕에게 주는 대신 당신이 노리는 계책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왕후마마, 옥진궁주의 손녀를 궁으로 불러들인 건 어떤 변명이나 핑계거리를 남기지 않으려는 심계원모(深計遠謀)의 책략이 숨어 있나이다.”

“그렇기는 하나, 지소태후가 만월성을 보수공사까지 하면서 그런 계획을 세웠을까?”

“며칠 전 태후전 약사가 하는 말을 소인이 들었나이다. 남도(南桃)의 이궁(離宮)을 만드는 건 장차 진골정통(眞骨正統)이 거칠 게 나가기 위함이라고요.”

그 말을 들은 후 생각하는 바가 있어 은밀히 조사해 보니 반월성의 축조에 관여한 인부들의 선조가 만월성에 모여 보수공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도원경(桃源境)’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몇 해 전 많은 비가 내려 성벽이 무너지고 전각들이 훼손당한 만월성에 무슨 방법으로 도원경을 만드는가? 여기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흔히 ‘도원경’이라 할 때는 도연명(陶淵明)이 쓴 ‘도화원시병기’를 앞자리에 놓고 얘기꽃을 피운다. ‘속세를 떠난 이상향의 세계라고!’ 여기엔 그럴듯한 얘기가 따른다.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죽음에 대한 묘수풀이와 같은 말이다. 도원경에 들어가면 영원히 죽음을 멀리할 수 있다는 전설의 한자락이 신라인의 마음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말이 튀어나오게 된 이유는 그 배경이 진(晉)나라다.  

진나라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武陵)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기를 잡기 위해 작은 배를 저어 골짜기 사이에 흐르는 강을 따라 올라갔다. 얼마나 멀리 왔는지 모르지만 정신을 차려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엔 처음 보는 낯선 곳이었다. 근처엔 복숭아나무 숲이 있었는데 넓이는 눈대중으로 보아 몇 백 보(步)가 되었다.

잡목 하나 없는 복숭아 나무숲으로 들어가자 그윽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어부는 불현듯 숲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어 다시 노를 저었다. 막다른 곳에 이르자 가까운 곳에 동굴이 있어 그곳으로 들어가니 멀지않은 곳에서 개 짖는 소리와 닭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부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이 오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은 진(秦)나라 시황제의 폭정을 피해 산으로 숨었던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나라가 혼란스럽고 천하가 어지러울 때 우리 조상들은 처자 권속을 데리고 이곳으로 온 후 한 번도 복숭아나무 밖으로 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의 만난 적이 없지요.”

그들은 한(漢)나라나 위(魏)와 진(晉)도 몰랐으나 어부가 들려주는 설명에 감개가 무량한 듯 싶었다. 그곳에서 얼마쯤 지내다 어부가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돌아가시더라도 우리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마을 사람들이 신신당부했지만 어부는 군데군데 표시를 해두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관가에 들러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죄다 얘기하자 흥미를 느낀 관장이 사람을 그곳으로 보내려 했으나 예전에 갔던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도원경’은 전설상의 지명으로 통하는 이상향의 세계다. 어느 때인가 남양에 사는 유자기(劉子驥)라는 이가 얘기를 전해 듣고 무릉도원을 찾아가려고 서둘렀으나 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는 이곳을 찾아가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도왕후는 약사가 들려주는 얘기에 반짝 흥미를 느꼈으나 그것이 전설이나 이상향의 세계를 나타낸다는 점에 시들해지고 말았다. 마음 한켠에선 중원에서 일어난 이상향의 세계가 왜 신라의 만월성에서 재현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독지차(篤支次)는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왕후마마, 만월성에 복숭아나무를 심고 주변 경계를 남다르게 한 것은 이유가 있나이다. 그곳을 왜 남도(南桃)라 하였는지는···, 무릉도원의 전설이 일어난 중원을 북(北)으로 생각하고 신라를 남(南)으로 생각해 ‘남쪽의 도원경’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나이다.”

“오호호호, 그것 재밌지 않습니까. 남쪽의 도원경이라! 그런 곳을 만들려고 복숭아나무를 심고 인공으로 연못을 파고 사람들 사이를 구르는 수레(車)를 만들었다는 것입니까?”

“수레는 중원의 항씨(項氏) 집안에서 대대로 만들어 온 색사(色事)를 위한 수레이옵니다.”

“무어요? 색사를 위한 수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