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이름은 쓰노다 신이찌(角田新一). 나이는 서른 둘이었다. 한국의 역사를 왜곡시키는 무라야마 역사문제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본에 있을 때엔 ‘센노리쿠의 암각바둑판'을 찾아내 본토에서는 매스컴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대한제국에 건너 온지 두 달 만에 갑자기 쓰러져 목숨을 잃은 건 무슨 까닭인가.

육도 선생은 그의 죽음을 경위원에 알리고 측근들을 모은 채 일처리를 의논했다.

행적을 살펴보면 그는 두 달 전에 이곳 ‘오로관'에 들려 <오로 기우회>에 가입했었다. 오로 기우회는 바둑을 단순한 취미로 생각하는 모임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었지만, 그는 바둑 연구에 정열적이었다. 한국인 못지않게 언어를 구사한 데다 마음자리까지 넓어 이방인 취급하는 이도 없었고 회원들간에 품평도 좋아 ‘오로관'에 올 때마다 오히려 반기는 이들이 늘어날 정도였다.

평소 심허증을 앓아 본토에서 가져온 환약(丸藥;알약)을 복용한 것 같아 사흘째 되는 날 육도 선생은 ‘가미수첩산(加味手帖散)'을 처방해줬었다. 이것을 다섯 첩 가량 복용하면 심허증이 치료되는데, 효험이 나타나지 않으면 옻닭이나 옻토끼를 복용하는 것이 한 방법이었다.

그는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을 쉽게 흘리고 말았다. 옻을 복용할 때는 아무리 피로해도 ‘피주사'를 맞지 않아야 하는데, 별다른 생각없이 ‘피주사'를 맞고 오로관에 왔다가 다섯 시간 만에 절명한 것이다.

처음엔 독물에 의해 살해됐다느니 ‘오로관'을 음해하기 위해 누군가 궤계를 꾸몄다고 했지만, 자신의 실수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인(死因)이 규명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러나 단 한사람, 육도 선생만은 그의 죽음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그가 죽기 전 몸에 지닌 <제1기 본인방 습명 윤허서>를 살피고 있었다.

해묵은 종이 형태로 보면 그것이 진본인 것 같았으나 이것은 윤허서를 복사한 것이었는데, 문제는 뒷면에 쓰인 문구였다.

‘벼에는 탄수화물이 70~85%이고, 단백질이 6.5~8.0%이며 지방은 1.0~2.0%이므로 의심이 가면 반드시 확인해 보기 바람'이라는 내용이었다.

그가 농촌진흥에 앞장 선 사람도 아니고 역사를 만지작대는 무리야마 역사연구소 직원인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내용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의혹은 두어 시각이 지나기 전, 선생의 머릿속에서 깨어지기 시작했다.

“쓰노다가 이런 글을 남긴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는 본토에 있을 때부터 글을 썼다고 했지. 사람들이 그의 문장에 대해 매끄럽고 날렵하다는 평을 내놓은 걸 보면, 그 연구소에서도 뭔가를 썼지 않았을까?”

육도 선생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그의 메모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벼에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그리고 지방이 있다. 의심이 가면 그것을 반드시 확인해 보라는 것은, 어떤 비밀이 숨겨있다는 것이다.
벼(禾)와 반드시(必)를 합하면 비밀(秘)을 뜻하는 말이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탄수화물과 단백질, 그리고 지방은 무슨 뜻인가? 가만, 그것보다 왜 바둑 도형을 뒷면에 그려 넣었을까?'

육도 선생은 도형을 바둑판 위에 올린 채 노려보았다. 이런 모양은 대수롭지 않은 것 같은데 수순을 잊고 잘못 젖히면 실패하는 경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