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으로 돌아온 날부터 다시 병세가 악화되자 유방이 황태자 폐위 문제를 확정짓기 위해 어전에 나갔을 때 유영의 등 뒤에 선 네 명의 백발노인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물었다.

“수염이 허연 저 작자들은 누군가?”

“상산사호라 하옵니다.”

유방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내가 찾을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내 아들에게 공손히 대하는 이유는 뭔가?”

상산사호가 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폐하께선 사람을 깔보시기에 저희들은 만나 뵙길 거절했으나 황태자께옵선 효성심과 충성심이 강해 저희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도울까 합니다.”

유방은 태자와 사호가 물러갈 때까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척희의 처소로 돌아와 힘없이 말했다.

“나는 태자의 무능함을 알고 폐위시키려 하였으나 상산사호가 유영을 날개처럼 보호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 수 없소. 이 것은 하늘이 정한 숙명이니 여치는 당신의 주인이 될 것이오.”

유방은 자신이 죽기 전 주창을 불로 봉국(封國) 조나라에 유여의와 함께 보냈는데 자신의 사후 유여의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일책이었다. 그러나 유방이 세상을 떠나자 여치는 기다렸다는 듯 척의를 잡아들여 황궁의 특별감옥 영항(永巷)에  집어넣었다. 머리를 빡빡 깎고 쇠사슬로 묶은 다음 붉은 수의를 입혀 왼종일 쌀을 찧게 했다.

척희가 불렀다는 ‘영항가’가 지금도 쓸쓸하게 전한다.

아들은 왕 어미는 수인(囚人)

아침부터 찧어서  해질 때까지

언제나 옆에 죽음이 함께 있구나

삼천리 떨어져 있는 너에게

누굴 보내 알릴 수 있으리오

<사기(史記)>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한서(漢書)>에 전하고 있는 걸 보면 후세 사람들이 척희를 동정해 지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치는 이 노래를 듣고 노기가 등등하여 소리쳤다.

“앙큼한 년 같으니. 어디 두고 보자.”

여치는 갖은 계책을 동원하여 유여의를 제거한 후 곧 바로 척희의 양손과 양발을 자르고 두 눈을 뽑아버렸다. 이것도 부족하여 연기(煙氣)로써 두 귀를 멀게 한 다음 벙어리가 되는 아약(啞藥)을 먹여 뒤주에 집어넣고 인간 돼지(人猪)라 불렀다. 어느날 여치는 아들 데려와 독살스럽게 쏟아냈다.

“여기서 꾸물거리는 인간 돼지는 바로 척희의 말로요”

유영(혜제)은 대성통곡하며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할 짓이 못됩니다. 나는 어머니의 아들로서 천하를 다스려 나갈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사기>의 작가 사마천이 혜제의 본기를 만들지 않은 것은 황제로서 업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훗날 다시 상산(商山)을 찾은 사호들은 세상의 온갖 번뇌를 떨쳐버리고 한가로이 바둑을 두면서 소일했다고 전해 온다.

서거정(徐居正)은 <사호위기도(四皓圍棋圖)>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세상도 영리도 모두 피한 그 몸이(於世於名已兩逃)

한가로이 마주앉아 바둑돌을 두드리네(閑圍一局子頻敲)

이 중에서 어느 누가 묘수를 알아주어(此中妙手無人識)

나라를 편안히 할 높은 수를 두어 주리(會有安劉一着高)

상산사호는 혜제(유영)의 병몰 이후 궁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과응보가 존재한다면 여치의 악행은 몇십 배나 죄의 응보를 받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