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것은 여인이 기보의 묘수풀이를 손가락으로  짚어갈 때, 혼분의 기류는 선방을 꽉 메운 채 회돌이치듯 몰려왔다. 남사고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서자 기다렸다는 듯 여인은 고개를 숙이며 품속으로 쓰러져왔다. 창포의 그윽한 머리 내음이 코끝을 간질이자 한 팔로 여인을 뉘고 오른 손으로 옷섶을 헤치기 시작했다. 백설처럼 하얀 피부가 황촉불에 드러나자 여인의 숨소리가 어지러워지고 남사고의 동공도 크게 열렸다.

“낭자.”

열띤 목소리가 여인의 귓가를 맴돌자 화석처럼 굳어진 여인의 몸이 실타래처럼 풀어지며 숨소리가 가빠졌다. 잇몸으로 짜낸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두 사람은 짐승과 같은 몸싸움을 벌였다. 그것은 정녕 하나의 몸짓이었다. 밤은 점점 깊어가는데 두 사람의 숨소리는 산중을 에이는 바람처럼 그칠 듯 말 듯 온밤을 휘저었다.

뎅! 뎅! 뎅!

멀지않은 곳에서 울리는 신종 소리에 퍼뜩 눈을 뜬 남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은 여전히 결가부좌를 튼 채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아, 무설설(無說說)이라더니···, 나의 수양이 부족했구나.'

남사고가 둘러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스님은 단잠에 떨어져 구석켠에서 자고 있었다. 날이 밝아 마른 음식으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불영사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경내를 잠깐 돌아보고 부용봉(芙蓉峯)에 오르니 여기까지 동행한 스님이 노송 밑 그늘 아래 바둑판을 펼쳐놓고 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님의 말이 묘한 여운을 던지고 있었다.

“내가 선비님과 동행하며 느끼는 바가 많아 소승이 선비님에게 선물을 드리려 합니다. 다음의 묘수풀이 도형을 보고 그 풀이를 어떻게 하든 거기에 맞는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어떤 문제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스님이 단숨에 바둑판 위에 백선으로 결과를 묻는 도형을 만들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