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명례방(명동)은 어느 곳보다 땅값이 비싼 탓에 행세깨나 하는 부호들을 끌어들이려면 학이 비상하는 듯한 처마를 자랑하는 널따란 한옥을 지어, 밀실처럼 안온하여 속되고 뜨거운 말을 지껄여도 밖으로 말소리 하나 새어나가지 않은 그런 곳이면 뱃가죽이 두꺼운 사내들이 몰려들기 마련이었다.

이런 곳일수록 무슨 ‘루(樓)’니 ‘관(館)’이니 하는 말을 쓰기 마련이지만 양념처럼 들어가는 단어가 ‘학(鶴)’이고 보면 아무래도 이곳을 출입하는 사람들이 장수를 하고 싶다는 귀여운 바람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도성 여기저기에 ‘명월관’이니 ‘황학루’라 부르는 옥호(屋號)가 있는 집엔 경위원의 별순검을 부리는 경무사 일행이 자주 찾아들고 그들을 맞이하는 여인들의 부러진 애교가 창문 밖으로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러한 판세가 확 달라진 것은 ‘현녀관(玄女館)’이란 술집이 생겨나면서였다.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계집들이 주렁주렁한 곳에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모양이지만 채 반년이 지나기 전에 이상한 말들이 기방(妓房)에 떠다녔다.

“나는 살다 살다 고양이가 방귀 뀌는 소릴 듣는다니까. 글쎄, ‘현녀관’이란 술집은, 사내와 계집이 방사하는 게 서로 즐거움을 나누는 목적이 있으나, 더 큰 뜻은 방사를 통해 목숨을 연장하는 대단한 효과가 있다는 거야. 그곳에서 나온 얘기론 계집은 ‘정(鼎;솥)’이라는 것인데 정해진 법도에 따라 사랑을 나누면 능히 2백 세는 보장한다지 뭔가.”

처음엔 말도 되지 않은 소리라고 펄쩍 뛰던 사내들도 자꾸만 귓가에 앵앵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들썩였다. 어떻게 하면 그런 방법을 얻을 수 있을까. 이 곳 저 곳의 술집에 있던 술손님들을 비롯하여 기생어미도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좋은 소식이 날아들기를 기다렸다.
더 이상은 희소식다운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지 않자 손님들은 현장 답사를 겸해 직접 현녀관을 찾아가 ‘계집과의 방사 2백 세’에 대해 묻기에 이르렀다.

기생 하나가 달금지게 웃으며 답변을 내놓았다.

“남녀 간의 방사는 누가 가르치거나 시키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만, 밖에서 듣는 얘기완 상당히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소녀경(少女經)]이란 책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 책이 어떤 내용입니까.”

“사내와 계집이 거시기 하는 내용 아닙니까?”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만, 맞췄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소녀경]은 거시기 하는 책이 아니라 성의학(性醫學)에 관한 지침서죠. 세상에 널려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사랑을 나누는지, 그로 인해 생긴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책으로 보면 무난합니다.

다시 말해 이런 내용이죠. 방사로 인해 어느 한쪽이 고장 났을 때 그것을 방사로 고치는 책이라 할 수 있어요. 그렇다보니 성행위의 체위(體位)에 대해 구구절절한 설명이 붙어 있어 사람들을 현혹시키지만, 사실 [소녀경]은 성행위의 초급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렇다보니 [소녀경]만 보아서는 제 명을 깎아 먹을 뿐 방사를 통해 2백 세의 수명을 누린다는 건 어림 반 푼 어치 없는 일이죠.”

“방사를 통해 장수를 누릴 방법이 있다는 얘깁니까?”

“그럼요. 있고 말고요.”

“어디 들어봅시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소녀경]을 초급편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신기하고 기이한 일을 ‘묘하다’고 합니다. 이때 쓰는 ‘묘(妙)’는 ‘소녀(少女)’를 합한 것으로 글자를 들여다보면 계집이 앞에 나와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녀’라고 했을 때는 그 나이를 ‘열 네 살 쯤’으로 봅니다. 다시 말해 [소녀경]은 나이 열네 살쯤의 여인네가 보는 초급서라는 얘기지요.

그 다음의 중급에 해당하는 책이 바로 [현녀경(玄女經)]입니다. ‘검을 현’을 쓰는 것은 세상 경험이 어느 정도 있어 보이는 열여섯 나이의 여인을 가리킵니다. 바로 이 여인이 사내의 몸에 ‘정(精)’과 ‘기(氣)’를 불어넣어 장수를 보장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요? 나이 열여섯의 여인을 가까이 하면 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오늘 ‘현녀관’에서 그런 여인과 밤을 지새우고 싶소. 괜찮겠지요?”

“그거야 두 사람의 뜻이 맞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손님께서 마음을 정하시기 전에 잠시 저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사실 과일도 때가 돼야 따는 게 아니겠어요. 너무 일찍 따면 떫거나 시기 마련이고 아차 실수로 늦장을 부리면 나중엔 껍질이 짓물려 먹을 수가 없지요. 아까운 생각에 그냥 먹으려들면 마음까지 찝찝해 여간 기분이 나쁘거든요.

그래서 이곳 ‘현녀관’에선 어느 누가 보더라도 먹음직스럽고 맛깔스러운 과일을 준비해놓고 손님이 찾아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 그래요?”

“그렇지만 그 일에 나서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인물이 고우면 다행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렇다고 재물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럼 뭡니까?”

‘현녀관’의 기생어미는 한쪽 서랍을 열고 두 겹으로 접은 종이를 펼쳐놓았다. 백선으로 결과를 묻는 묘수풀이 기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