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하자 구석방에서 병략을 강의하던 육도선생(六韜先生)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스물 일고여덟쯤으로 뵈는 젊은이가 탄성을 부르짖었다.

“이건 발양론(發陽論)이오!”

조선 사람들은 처음 듣는 말이라 모든 시선이 그 젊은이에게 향했다.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얼마 전 이곳에서 수련을 하다 살해를 당한 임문혁과는 가까운 사입니다. 오로관의 대표가 되어 무슨 베개를 걸고 내기바둑을 둔다는 말을 들었는데 급히 조선으로 건너와 보니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와의 인연이 남다른 데다 조선의 바둑 고수들이 즐비하게 모여든다는 소문이 있고 보니 이곳 오로관엔 오늘에야 처음 들어왔습니다.”

젊은이 얘기에 고갤 끄덕이다가 육청하는 눈앞에 펼쳐진 바둑 도형에 왜 ‘발양론'이란 제목이 붙었는지를 물었다.
이름을 이몽학(李夢鶴)이라 밝힌 젊은이의 얘기가 시작되었다.

“일본의 미농(美農)이란 지역에서 1646년에 태어난 상원도절(桑原道節)이란 분은 정상인석(井上因碩)의 본명으로, 그의 스승은 도책(道策)이며 다섯 명의 제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아 스승 도책과는 겨우 한 살 차이였어요.

도책이 자신의 후계자로 1684년에 내세운 이는 소천도적(小川道的)으로 그는 13세 때 이미 6단에 이르는 중후한 힘이 있었고, 17세 때엔 7단으로 승단하여 스승 역시 선번(先番)으로 이긴다는 건 어려울 정도로 출중한 기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깝게도 스물 둘에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인석은 결국, 도책의 친동생의 상속인이 되어 1690년인 그의 나이 45세 때에 비로소 양자가 되었다.
도책은 임종시에 그를 불러, 자신이 죽은 후 명인기소(名人碁所)를 넘봐선 안 된다는 서약서를 쓰게 하였다. 스승의 사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명인기소를 넘겨보지 않겠다는 각서(覺書)였다.

이후 인석은 6년 간이나 도지(道知)를 가르쳤다. 본인방가(本因坊家)의 전설에 의하면 도지(5세 본인방)가 도책의 자식이라는 점에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후 인석은 전후 열일곱 번이나 시험기를 두어 주어 성의를 다하다가 1706년에야 후견을 풀고 별거했다. 그 후 인석은 아홉 해나 바둑계를 통솔하다 1719년에 세상을 떠났다.

재미있는 것은 인석이 세상을 떠난 후 3가(三家)에서 언제까지나 명인 추대를 해주지 않으므로 제자 도지는 화가 났다.

“명인기소에 대한 지금까지의 청원을 승부로 결정하기 바란다!”

그렇게 담판 짓고 바둑을 둔 후 나중에 명인 인가를 받은 자리에서,‘나의 명인 기소 취임은 인석으로 인해 10년이나 늦어졌다'고 탄식할 정도였다.
젊은이의 얘기가 이어졌다.

“정상인석의 저서는 많습니다. <발양론>은 바둑 고수들이 볼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고 어려운 책입니다. 이 책엔 ‘옥집의 삶'에 대한 묘수들이 나옵니다.
‘옥집은 집이 아니다' ‘대마라도 두 집을 내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발양론>에선 다르지요.”

젊은이는 이 문제들이 여섯 부 202 문제로 되어 있는 활지부(活之部)‘옥집의 삶'에 수록된 문제들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도>를 보면 백은 한 눈에 봐도 살아있는 모양이다. 이 모양에서 흑이 옥집만으로 살 수 있는 특이한 수순이 숨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