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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이창호의 10년 사제대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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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이창호의 10년 사제대결 (2)
2009-03-19     프린트스크랩
▲ 사진출처/ 월간바둑

불사조

흐름으로, 기록으로 보면 90년대 사제대결은 제자의 일방적 승리로 보인다. 하지만 ‘순국산' 서봉수 九단이 끝없이 얻어터지면서도 오뚝이 같은 불굴의 투지로 전관왕 조훈현의 독주에 태클을 걸었듯이 조九단도 불사조처럼 투혼을 살랐다. 승부세계의 장강의 앞물결은 한번 흐르면 다시 거슬러 오르지 못한다. 그 정도의 내상을 입으면 재기하지 못하는 게 상식이다.

제자에 의해 20년 만에 무관으로 전락하는 순간. 허망한 스승...무관전락을 확인하는 마지막 공배 메움. 95년 12기 대왕전 도전4국 모습.


그런데 조훈현 九단은 달랐다. 그는 확실히 특별한 승부사다.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았던 담배를 끊고 틈날 때마다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다졌다. 마음도 달리 먹었다. 지난 15년 세월 그는 아래를 굽어보았을 뿐 쳐다볼 일이 없었다.

90년부터 하나둘 타이틀을 내주며 실지(失地)하기 시작한 조훈현 九단은 92~95년 대회전에서 참패하며 대장정에 돌입해야 했다. 조九단이 향한 대장정은 세계대회였다. 해외 거점을 마련해 재기의 발판을 모색한 것. 

 
94년에는 사제도전 27번기에서 참패를 당해 국내 거점이 붕괴직전에 처했으나 5회 동양증권배와 7회 후지쯔배를 석권, 세계기전에서는 제자를 능가했다. 이 해에는 단체전인 진로배 우승까지 견인해 89년 우승한 응씨배를 포함, 세계최초로 세계대회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다. ‘망명객' 소리를 들었지만 해외 거점을 기반으로 대대적인 항전에 돌입했다.

95년 초 무관의 수모까지 겪었던 조九단은 1년 만(96년 3월말)에 패왕을 탈환했고 이어 5월 비씨카드배와 6월 기왕전까지 단숨에 치고들어가 국내기전 3관왕에 복귀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1989년 5월, 1회 응씨배를 석권한 뒤 금의환향하고
있는 조훈현 9단.

96년에는 제자와 11승 13패로 대등한 접전을 펼쳤다.

97년에는 다시 동양증권배를 우승했고 바둑왕과 배달왕기전을 추가하며 6관왕에까지 올랐다. 놀라운 분전이었다. 98년 11월에는 91년 탈환했다가 93년 0-3으로 내준 국수를 5년 만에 되찾기도 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무리의 지도자는 늘 젊은 경쟁자의 도전을 받고 언젠가는 자리를 내주게 된다. 조九단 역시 자신이 키운 제자에게 일인자 자리를 빼앗겼다. 동물의 세계에선 리더 자리를 빼앗긴 왕은 그 순간 무리를 떠나거나 철저하게 도태되지만 조九단은 포기하지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제자에게 숱하게 꺾이면서 더 강해졌고 아킬레스건이었던 끝내기 실력도 늘었다. 라이벌 서봉수와 경쟁하면서 늘었듯이 제자와 10년 전쟁을 벌이면서도 끝없이 의문을 품고 공부했던 것이다.

월간『바둑』 92년 11월호 박수동 만평.


잠시 사제대결이 양산한 수많은 수법 가운데 ‘추억의 정석' 하나 감상하고 넘어가자.


[장면1] 제22기 명인전 도전2국
조훈현 九단 (명인)
이창호 五단 (도전자)

<1991. 8. 5, 285수 끝, 흑 반집승>

<장면1>의 좌하귀 백2,4,6의 정석을 기억할 것이다. 흑1로 걸쳤을 때 이렇게 붙여막는 정석은 귀의 형태를 결정지어 실리를 확보하는 수법이기는 하나 백의 모양이 빈삼각 삿갓형이라 외면하던 정석이었다.
그러나 두터운 화점바둑을 구사하는 이창호 九단이 우변 신(新)고바야시류 포진에 대항하는 수법으로 애용하면서 유행정석으로 재탄생했다. ‘이창호 정석'으로 불린 이 수법은 특히 사제대결에서 흡사 오기를 부리듯 서로 번갈아 구사하며 진화를 거듭했다.

 

<1도> 흑3으로 내려서는 것은 부분적으로 정석이기는 하나 이 포진에서는 백4에 다가서서 공격하는 것이 의외로 껄끄럽다.

 
[1도]

<2도>처럼 백이 두어도 10의 자리가 명당이 되어 흑이 재미없다.


   
[2도]

이것이 <3도> 흑1로 먼저 걸쳐 판을 넓힌 이유다. 이때 백은 2로 받거나 <장면1>처럼 백8로 협공하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둘 다 사제대결에서 등장한 실전이다.


   
[3도]

 

협공하게 되면, 즉 <4도> 백△에 흑1로 뛰어나오고 이하 5까지 진행된 실전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다음 백A, 흑B, 백C로 탈출하는 과정을 밟으며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게 된다.

 
[4도]

90년대 중반 대규모 사제대결에서의 과다출혈 이후 전략도 바꾸었다. 국내기전 공략은 게릴라 전법으로 대체했고 대신 상금도 많고 단기간에 치러 체력부담이 덜한 세계기전에 전력을 다했다. 이것이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대회에서 자주 우승할 수 있었던 숨은 동력이다.

다시 천재론을 들먹여 본다. 격투기 무대처럼 숨돌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는 요즘 바둑세계에서 나이 예순에 이르도록 이처럼 짱짱하게 활약하고 있는 기사가 조훈현 말고 누가 있는지. 타고난 감각에 전류보다 빠른 두뇌회전, 치열한 승부근성 따위의 수사를 나열할 것도 없다. 라이벌로 거명되던 고바야시 고이치 九단도 녜웨이핑 九단도, 한참 연하인 마샤오춘 九단조차 존재감이 사라진 마당이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비록 도전무대에서 시나브로 비껴나고 있지만 조훈현이란 이름 석 자는 우리 가슴에 영원한 승부사로, 반상의 불사조로 남을 것이다.

일러스트/ 김원락

사제의 선문답

실전만한 공부는 없다. 사제가 치른 타이틀전만 67회. 이 중 2000년까지 59회를 치렀다. 대략 사제대결 10년으로 잡고 나누면 1년에 6차례나 타이틀매치를 벌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두 해도 아니고 강산도 변한다는 기간을 매일 대좌한 거나 다름없다. 헤겔의 정반합의 법칙처럼 서로 실전을 통해 강해지고 진화한 것이다. 10년 세월을 자나깨나 상대를 의식했고 연구했다는 얘기다.

사제의 바둑에 대한 정열과 경쟁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재미난 사례가 있다. 아래 글은 97년 주간세계바둑 창간예비호에 <사제는 증말 무서버!>란 제목으로 발표했던 칼럼이다.


97년 4월 10일 오전 11시 서울발 도쿄행 KL703기편 비즈니스 클래스 석은 한국의 내로라하는 톱기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 서봉수, 양재호, 최명훈에 차민수까지. 이틀 후 일본기원에서 벌어지는 10회 후지쯔배 등정에 나선 참이다.

비행기가 대한해협을 건널 때쯤 나란히 앉았던 조훈현 九단과 미국대표 차민수 四단이 무료함을 못참겠다는 듯 며칠전 두었던 8회 동양증권배 결승2국(조훈현 : 고바야시 사토루)의 승부처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바둑판은 없다. 명승고찰에서 수도하는 선승들의 선문답처럼 말로 주고받을 뿐이다.


[장면2] 제8기 동양증권배 결승5번기 2국
조훈현 九단
고바야시 사토루 九단

<1997. 4. 2, 236수 끝, 백 불계승>

<장면2>이 이날 화제에 오른 문제의 대목. 백을 든 조九단이 1로 바짝 다가서자 고바야시 九단 역시 흑2로 다가섰는데, 여기서 백이 3으로 하나 헤딩한 후 8의 곳에 뛰지 않고 5로 뛰어나가면서 분란이 일었다. 이렇게 되면 흑6,8의 절단은 기세. 바로 이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여기서 조九단은 백9로 뻗어 이하 흑16까지 처리하고 말았는데, 우하변은 그것대로 굳혀주고 좌변은 좌변대로 흑A로 뛰어드는 맛을 남겼으니 백의 포석실패가 자명하다.

(조훈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묘수가 있었어.

<5도> 백1로 끊었으면 흑이 끝장이었어. 다음 흑4,6으로 두는 것은 백9로 몰고나와 그만이더라구.”

   
[5도]

마침 바로 뒷좌석에서 스승의 이 말을 들은 이창호 九단은 도쿄 시내의 에드몬드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이 묘수에 대해 의문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하룻밤이 지났다. 이九단은 슬며시 동갑내기 최명훈 五단의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어제 비행기 안에서 선생님이 말한 수 있지? 그거 <6도> 흑1에 붙이는 묘수가 있어 안돼.”

백2에 서면 흑3으로 부딪쳐가는 수가 기가 막혀 다음 A로 넘는 수와 B로 나가 백 다섯 점을 잡는 수가 맞보기라 백이 안된다.


   
[6도]

이 수를 최명훈 五단이 식당에서 차민수 四단에게 전했고 다시 조九단에게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났다.

후지쯔배 본선 1회전이 있는 날. 일본기원 대국장으로 가는 차안에서 조九단은 작은 소리로 차四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창호가 어제 얘기한 그 수 말야. <7도> 백1로 역으로 부딪치면 어쩌겠다는 거지?”

차四단은 순간 무릎을 쳤다. “햐~, 그런 수가 또 있었나?”

흑은 2로 젖혀봐야 이하 백9까지 꼼짝없이 장문에 걸려든다.

 
[7도]

차四단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 친구들 정말 대단하군. 달리 바둑황제들이 아니야. 증말 무서버~.

하룻밤 사이를 두고 주고받은 사제간의 묘수 공방. 세계정상은 호텔방에서도 결코 쉬지 않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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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샘 |  2009-03-20 오전 12:34:3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쩌면 이렇게 생동감있게 글로표현이가능한지 감탄스럽군요.좋은글 계속부탁드립니다.  
대야등 그렇죠? 글을 이렇게 재미나게 꾸미기도 쉽지 않은데... ^^ 오늘 하루가 행복할듯 .
jskm |  2009-03-20 오후 4:19:4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 후도 궁금한데요 ㅠㅠ  
달선공팔 |  2009-03-20 오후 9:12:4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사제는 증말 무섭네욤 *^^*
저리 서루 연구하시문서 두분 다 실력이 한층 강해졋것지욤?
물론 차사범님이 중요한 역할을 하셨네요. *^^*  
선비만석 |  2009-03-22 오전 9:15:3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음..............역시.......달러....(달라....) 뭐가 ? 주문진 촌아자씨 글쟁이가 천직이여....  
맹물국수 |  2009-03-22 오후 6:04: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크으~ 중간에 낀 車사범 최명훈 사범, 군대 전령이라고 해야 하나, 향단이 방자라고 해야 하나 그 재미난 처지가 증말 우스워요.
 
맹물국수 헤딩수 다음에 이어지는 야그는 없나요?
푸룬솔 |  2009-03-23 오후 11:01:2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혹시 계시원 맨왼쪽이 백성호 감독인가요?  
대야등 동안의 백 사범님 맞네요 ^^
아도 |  2009-03-26 오전 11:32:2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참고도를 보고 싶은데 참고도가 왜 2개만 뜨고 안보이지요? 아시는분 좀...도움부탁드립니다  
큰가물치 |  2009-03-29 오후 6:42: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재미있네요! 또 다른 바둑 세계를 보여 줘서 감사해요!  
후지산 |  2009-03-30 오전 7:33:2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창호 가죽잠바 멋집니다^^  
부산바우 |  2009-04-03 오전 10:14:4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조훈현이 호랑이 새끼를 키웠을가 ? 아니다. 조훈현은 정말 대단한 사람으로 수십년간 모아온 일본 기보를 창호에게 제공함으로 자신의 후계자를 양성하여 자만에 빠질 자신을 채찍질 하였고 이루 말미암아 세계대회를 석권하고 한국 바둑을 세계최강으로 만든 분이다.
승부욕이 강하여 카드에도 유감없이 승부를 거는 조훈현 그가 없었다면 한국 바둑의 세계석권은 없었을 것이다.  
殺生丸 |  2011-07-16 오후 4:33:3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너무나도 좋은 글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사제의 선문답'부분은 감탄하다 못해 억 소리를 냈네요. 30년 후에도 이 글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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