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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어머니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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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어머니의 열쇠
2011-08-23     프린트스크랩

어머닌 돌아가시게 됐을 때야 내게 열쇠를 내밀었다. 그것은 장미 한 송이를 수놓은 조그만 주머니로, 안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열쇠가 들어 있었다.

주머니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탓에 겉면이 무척 낡은 상태였지만 열쇠만은 도금이 벗겨지지 않은 채 번쩍이는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이 열쇠를 본 적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쓰던 방에 들어오면 가끔 주머닐 꺼내 열쇠를 만지작대던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그 방은 허접한 물건들을 쌓거나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두는 곳으로 이것저것 잔물건이 많았다.

 

그래도 이 방은 그런대로 명맥은 있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썼던 할아버지의 물건이 남아있었는데 그 중 중국에서 사온 벼루가 소동파(蘇東坡)가 썼던 것으로 밝혀져 신문이며 방송국에서 달려온 바람에 매스컴을 탄 적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기에 값나가는 물건이 있는지 되살펴 봤지만 다른 건 나오질 않아 소란스러움은 이내 가라앉았다. 그러나 내가 어머닐 그 방에서 본 것은 할아버지의 물건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으로 아버지의 병이 깊어지면서였다. 그때마다 어머닌 홀로 이 방에 들어오는 횟수가 많아졌다. 잡동사니가 쌓인 곳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기도 하고 뭔가를 뒤적이다 나오곤 했지만 나의 관심을 끄는 건 아니었기에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다.

 

그 다음 해인가, 비가 몹시 내린 적이 있었다. 빈약한 시골 토담은 큰 비에 무너지기 예사여서 기와집인 우리 집과는 달리 흙으로 지은 이웃의 토담집은 장마통에 무너지거나 쓸려나가기 예사였다. 아마 이 무렵엔가 우리 마을에 부군당(府君堂)이 지어졌을 것이다.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이곳에 제물(祭物)을 놓고 기도하면 신통하게 원하는 게 이뤄지곤 했었다. 그래서 형식적으론 관우묘(關羽廟)라 불렀으나 거의 모든 일이 후손을 갖는 것이어서 점차 천자만손당(千子萬孫堂)’이란 이름이 붙었다. 두고두고 가문을 잇게 한다는 집이었다.

 

부군당은 언덕 위의 높은 곳에 지어졌는데 자손이 없는 사람이 이용할 때엔 아낙네를 앞세운 남편이 뒤따라와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자신은 문 밖에 있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에서 잠을 자는 게 보통이었다.

 

이곳 관우묘를 관리하는 이는 충화자(忠和者)라 했는데 본래 이름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라에 충성하고 가정이 화목해야한다는 것을 입버릇처럼 들려주곤 했으나 그는 학식도 꽤 뛰어나 어느 누구와 대화하더라도 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충화자는 한 곳에 가만있지 않았다. 일년 사시절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망태기 을러메고 산으로 약초 캐러 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먹는 것이야 공들이러 오는 사람들이 가져온 곡식과 생선 등이었지만 그는 식탐(食貪)이 세지 않아 그런대로 생활을 꾸리는 참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어머니가 준 열쇠를 보자 갑자기 그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열쇠를 받아들자 나는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엔 어머니 외엔 어느 누구도 볼 수 없는 해묵은 장롱(欌籠)이 있었다. 오동나무로 만들어서 무거운 탓도 있었지만 골방에 놓여선지 한결 음습한 분위기를 풍겼다.

 

장롱 안을 살폈지만 특별한 건 눈에 띄지 않았다. 어머니가 준 열쇠는 분명 장롱을 채운 자물쇠를 열 수 있는 것이다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서랍 위쪽엔 옷가지 등속을 넣어두는 것으로 알았기에 아랫부분을 살폈다. 아래엔 작은 서랍이 있었고 그곳에 다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어머니가 건넨 열쇠는 그곳도 같은 열쇠로 열 수 있었기에 거기도 열었다.

 

안에는 내의를 포장하는 작은 상자가 있었고 그 안엔 뜻밖에 색동저고리 한 벌이 놓여 있었다. 저고리는 아주 작은 것으로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 입었던 것으로 생각됐다.

 

사실 어머니가 이곳 최씨 일문에 시집온 것은 먹을 게 없었던 당시로선 대단한 행운일 수 있었다. 어려운 보릿고개 시련이 넘어가고 이제는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때 집안에 큰 고민이 생겨났다. 그것은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 리를 걸어야 나오는 절(山寺)을 찾아가 백일치성을 드렸으나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재물은 불어나는데 뒤를 이을 후손을 생산하지 못하자 어머닌 애가 탔다. 할머니의 극성도 여간 아니었다.

 

인물이 반반한 처녀들을 골라 아기씨가 잘 들 목밀녀(木蜜女)를 만든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는 와중에 관우묘에 대한 소문을 동네 아낙에게 들은 것이다.

 

이봐요, 새댁. 시집온 지 몇 년 지났으니 새댁이란 말을 쓰는 게 옳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새댁의 처질 생각하면 안타까워 그런다우. 자식을 가지려면 저어기 부군당에 가 봐요. 거기 가서 기도하는 아낙치고 아들이건 딸이건 자식 못 가진 사람이 없다우. 바깥양반 끌고가 봐요.”

 

그날 부군당에 대한 소문을 말하자 남편은 번거로운 일이 생겼다는 낯으로 입맛을 쓰게 다셨다. 자식을 얻기 위해 자신이 직접 그런 곳까지 가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목밀녀로 아랫마을에 사는 행월이를 점찍어 두었으니 아무래도 그쪽이 마음에 있었다. 그렇게 돼 어머니는 혼자서 부군당에 공들이러 갔었다.

 

하루는 부족하니 사흘 있다 오라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효험이 있었다. 공들이고 온 이후 아이가 들어찬 것이다.

 

5대인가 6대인가 만에 독자가 태어났으니 최씨 일문에선 온 마을이 흥청대도록 잔치를 베풀었다. 열 달이 지나 아들이 태어나자 이제는 바랄 것 없다는 듯 액막이굿까지 덩달아 치렀다.

그때 어머니는 아들이 태어나자 색동저고리를 마련했다. 말깨나 하는 집안이니 옷 한 벌 하는 데 아까워할 일 있겠는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자 복덩이라는 이름으로 잔치를 베풀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태어난 것은 최씨 일문의 영광이오, 부인의 공덕이 큰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내가 이상히 여긴 것은 어머니의 장롱에 왜 그런 물건이 있느냐였다. 아이들 옷이야 시간이 지나면 버리게 되는 것이지만 어머니는 열쇠까지 준비해 장롱 깊숙이 감춰둔 것일까. 더구나 요즘엔 해괴한 소문도 돌았다. 부군당에 머문 충화자라는 이가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건, 나라에 충성하고 가정에 충성하자는 뜻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충화자는 돌진하여() 화합()을 이룬다는 사내의 거시기에 대한 속어란 소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상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마을에서 색동저고리를 입는 아이들은 자신을 비롯해 다섯이나 됐다. 그런데 그 아이들 혈액형이 한결같이 ‘RH-이라는 점이다.

 

나는 직업이 경찰관이라 사람의 혈액형에 대한 식견이 적지 않게 있었다. 갑자기 다치거나 당사자에게 필요할 때 혈액형을 모른 채 수혈하면 피가 굳어 위험한 상태에 빠진다. 그러므로 당연히 의사라면 혈액형을 나누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여러 가지지만 무엇보다 수혈할 때 적합하므로 알아야 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게 ABO형과 RH형이다. ABO형으로 나누는 건 유전인자 속에 A형과 B형이 있으며 각각 한 종류만 가진 경우엔 A형과 B형이 되는 거로 알고 있었다.

 

특히 RH형은 인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로 나뉘며 (+)가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RH-형 피를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네라곤 하지만, 희귀한 피가 다섯 어린이에게서 나왔고 위급한 순간 수혈해 준 사람이 충화자란 사실이 이제야 어렴풋이 납득돼 온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열쇠는 당신이 숨겨놓은 비밀의 장롱을 열게 한 것인데, 그것은 내가 최씨 일문이 자랑스럽게 여긴 핏줄이 아님을 열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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