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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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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아버지
2011-08-19     프린트스크랩


기차가 역
() 안에 들어오기 전이라 양백이(梁伯夷)는 종내 자리에 앉지 않은 채 주위를 서성거렸다. 역이라 해야 사평(沙坪) 지방의 간이역으로 어느 곳이나 그렇듯 지방의 역사(驛舍)라는 게 생각보다 허름하고 주변은 깨끗지 못했다.


십여 평 남짓한 손님맞이 실내엔 잘 해야 스무 명 남짓의 승객이 보일 뿐으로 평소엔 대여섯 명이 고작이었다
. 그래도 이곳 사평역은 도회로 나갈 수 있는 기차가 서는 곳이자 도회에서 들어온 소식이 생기 있게 펄떡이는 곳이다


그렇기에 역 주변엔 나이든 시골 아낙 서넛이 푸성귀를 비롯해 사평의 특산물 이것저것으로 난전을 펼치고 있었다
.


터를 잡아선지 이곳 아낙들은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는 시각이나 연착되는 이유도 정확히 셈질했다
. 사평을 몇 번 찾는 이들은 역사 안에 쓰인 열차시각표 대신 아낙들의 한마디를 더 믿는 눈치였다.


그건 양백이도 마찬가지였다
. 배운 것이라곤 길거리에서 천자문 장난하는 걸 몇 번 들었을 뿐이지만 어느새 그걸 외웠는지 역으로 손님 마중나갈 때는 길거리 천자문을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기 예사였다.

하날 천 따지 감무 솥에 누렁밥

따악 딱 긁어서 괴이춤에 숨기고···.

 
그게 말이 되는지 어쩐지도 모르면서 벌써 강산이 몇 번 바뀔 시간에도 흥얼거렸다
. 이름이란 게 깊은 밤() 상대가 알기 쉽도록 불러준() 것이라지만, 이름을 얻기까진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 태어나 쉰이 넘도록
개똥쇠란 이름으로 살아왔으니 그 인생이 얼마나 천하고 우직하며 쓸쓸했겠는가.


일제 때엔 양견분철
(羊犬糞鐵)이란 네 자의 이름이 있었다. 양이나 개똥을 치우는 사람이란 뜻이지만 면서기가 염소를 어떻게 쓰는지 몰라 양을 붙여 이름 지은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이름자는 그 후 주욱 내려오다 양씨
(羊氏) 성을 쓰는 이가 없다는 말에 양()을 양()으로 바꾸고 견분철(犬糞鐵)개똥쇠로 탈바꿈한 게 이름자의 비밀이랄 수 있었다.


그런데 신도시 건설현장에서 잡부로 일할 때에 철모르는 아이들이 장난치는 걸 쫓아다니다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바람에 오른팔이 바위에 깔린 사고를 당했었다
.


흔들리는 팔을 잘라낸 후
, 무슨 복지재단에서 용감한 모범시민이란 명칭과 함께 금일봉을 내리고 지방신문에 연거푸 기사가 실려 늦게나마 장가가는 행운을 맛보았다.


신문지면에 그럴듯한 선행기사가 실리면서 여기저기서 보조금이 들어오자 이에 걸맞게 이름자도 백이
(伯夷)로 바뀌었다. 거기에 양이라는 성을 얻었으니 성과 이름자를 한꺼번에 주운  것이다.


아내는 역사 근방에서 푸성귀 등속을 파는 순박한 여인으로 혼례를 올린 그 해에 아이를 잉태해 순철
(順鐵)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이는 순박한 이름처럼 탈 없이 자라 고등학교를 마치고 해외공사장에 파견 나갔지만 제 어미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이 번 돈을 몽땅 송금해 주는 금메달감 효자였다
.


세 해를 그곳에서 지냈는데 한 달 전에 도착한 편지엔 사진도 동봉했었다
. 웃통을 벗어젖힌 구리빛 피부에 건강미 넘치는 밝은 미소가 그곳에 있었다. 워낙 더운 열사(熱沙)의 나라인지라 그곳에 파견된 이들은 만만치 않은 대우를 받았다. 순철이는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바로 그 아들이 일을 마치고 세 해가 지나 돌아온다는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 뜨거운 사막지역에서 대한민국의 산업역군으로 일한 아들의 귀국에 양백이는 재작년 5월 아내가 마련해준 모시 바지저고리를 걸치고 역으로 마중나왔다.


몇 시에 온다 했지?’


가만히 주머니를 더듬어 두툼한 회중시계를 꺼냈다
. 다섯 시다. 도착하려면 아직도 30분이나 남았다. 순철이가 어른이 되고 건강한 대한민국 남아로 성장했으나 생각해 보면 기막힌 세월이었다.


이제야 밝히는 것이지만 그의 아낸 말을 못했다
. ‘아버버 으버버만을 내지르며 손가락과 몸짓으로 뜻을 전하는 벙어리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벙어린 아니었다.


얼굴은 곱상하여 마을 가까이 돈냥이나 있고 방귀깨나 뀌는 자들이 납치해 강제로 어떻게 해보려 했지만 그녀가 혀를 깨물고 눈을 부릅뜬 채 기암하자 낯빛이 핼쓱하여 물러났다
.


그 후 그녀는 말을 잃었다
. 자신의 생각을 전하려 뜻을 펼치면 그것은 소리가 되어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웅얼거림만 토해냈다.


꼴값 하고 있네.’


주변사람들은 새우 눈을 뜨고 그렇게 비웃었다
. 상대의 말은 들을 수 있지만 자신의 언어는 소리가 돼 상대에게 혼란만 부추기자 그녀의 속살을 만져보려 덤빈 자는 서슬이 시퍼런 그녀의 눈빛에 슬금슬금 줄행랑을 놓았다.


그런 그녀가 양백이와 혼인하자 아낙네들은 행복해지길 바라며 축하의 선물을 주었다
. 그러나 사내들은 달랐다. 그들은 마음씨 착한 그녀 행동을 애써 꼬집으며 비아냥댔다.


한 팔을 잃은 양백이와 정겹게 외출할 때면 새우 눈으로 노려보았고 부부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엔 아예 못마땅한 듯 이죽거렸다
.


빙신들, 삽질 하누만.”


괜히 미워하고 물어뜯었다
. 그러나 그것도 그녀가 살아있을 때였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모두들 안타까워했다. 그녀의 죽음을 양백이만큼 슬퍼했겠는가. 언제나 해맑은 웃음을 짓던 그녀가 없다고 생각하니, 사평역에서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주욱 뻗은 선로를 볼 때마다 모든 게 아련하고 막막할 뿐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돌아올 사람이 있어 좋았다
. 시간은 어느새 기차가 도착할 시간을 설픗 넘기고 있었다.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리자 역사 안에 있던 몇 사람이 트렁크 등의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윽고 기차가 서고 사람들이 하나둘 기차에서 내렸다
. 그러나 온다는 순철이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 없는데?’


몇 번이나 두리번거렸지만 순철인 이번 기차로 오지 않았는지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
기차가 떠나고 친척을 기다리는 손님마저 그곳을 떠나자 양백인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워낙 바쁘다 보니 이번 기차가 아니면 다음에 올 것이란 생각에 삼십 분이 훨씬 지나서야 자리를 털고 나무의자에서 일어났다
. 그가 몇 걸음 걸었을 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부지!”


으응?”


소리 나는 곳으로 돌아보자 그곳엔 목발을 짚은 사내가 서 있었다
. 약간 야위었지만 순철이었다. 자신을 향해 딸칵 딸칵 다가오는 소리가 귀에 멍하도록 울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순철이가 더듬거렸다.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는 바람에 공사장에 불이 났어요. 건물이 무너져 발이 깔려 나오질 못했는데···, 다행히 구조돼 목숨만은 구했습니다.”


순철이가 오른쪽 다릴 걷어 올리자 그곳은 의족을 댄 곳이었다
. 연한 피부색을 띠었지만 따뜻한 기운이 없다는 건 자신의 한쪽 팔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한 팔을 잃고 세상에서 수모 받아온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자 한숨부터 쏟아졌다.


순철이가 오면 이제부턴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자신의 기대감을 마음 속에 쑤욱 밀어넣고 불쑥 자리에 앉았다
.


업혀라!”


예에?”


업히라니까!”


아부지!”


나는 두 다리가 있고, 니는 두 팔이 있응께 우리 서로를 도와가며 살자. 내가 못한 건 니가 하고, 니가 못한 건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우리 그렇게 살자. 니 엄니와 그리 살았듯, 순철이 너도 애비와 그렇게 살자.”


하나둘 곳곳에 전깃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 양백이는 아들을 업은 채 사평 역을 빠져나오며 길게 천자문을 외고 있었다.


하날 천 따지 감무 솥에 누렁밥

따악 딱 긁어서 괴이춤에 숨기고
···.


양백이의 눈에선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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