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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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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반지
2011-08-12     프린트스크랩

겨울은 차갑다. 몸이 차갑고, 주위의 정물이 차갑고, 달력을 스치어 보는 내 눈길이 차갑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차갑고, 추억이란 이름의 열차가 뿜어낸 시간의 부스러기 파편이 차갑다.


문득 상념의 호롱불을 켜본다
. 나의 젊은 시절,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밤의 속삭임처럼 누군지 모를 이에게 편지를 보냈던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런 날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빈 거릴 낙엽처럼 떠돌다 찾아가는 곳이 장충단공원이었다.


예전엔 이곳 주변에서 배호라는 가수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 뽕짝 테이프를 파는 리어카 가게에서 흘러나왔지만 요즘은 신세대가 좋아하는 조수미의 나 가거든이 흘러나온다. 이 곡은 TV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제가로 이 공원의 장충단이란 비(碑)와 관계 있었다.


그러니까 장충이라 할 때의 장
()은 장려할 때의 으로 권장한다는 의미가 있다. 뭘 권장한다는 것인가? 바로 충()이다. 충을 권장한다는 말이다.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를 지키다 역부족으로 순국한 홍계훈 부령
(副領)과 그를 따르는 군인들, 그리고 궁내부 대신 이경직 등을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그들의 장렬한 출정을 권장하고 기리던 비가 장충비.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이곳을 찾은 건 내 친구
하늘을 나는 연()’10년 전에 약속한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공원 주위를 돌아보며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다
. 널따란 공원 곳곳엔 사람들이 들어차 나름대로 즐거운 한때를 보냈었는데, 내가 구석에 핀 개나리를 꺾었을 때 그가 말했다.


꽃보다 예쁜 아가씨가 왜 꽃을 꺾었어요.”


그저 지나치듯 한 말이었지만 나는 깜짝 놀랐다
. 그때의 나는 SY여대에 들어간 지 두 해가 되는 해로 감수성이 무척 예민한 시기였다.


그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 얼핏 보면 소년티를 벗은 것으로 뵈는 그의 나이 역시 나와는 고작 한 살 터울이었다. 그날의 인연으로 우린 곧잘 만남의 여유를 가졌고 그러다 보니 그가 시()를 좋아하는 문학청년이란 사실도 알게 됐다.


그는 자신의 본명보다
하늘을 나는 연으로 부르는 걸 좋아했다. 거칠 것 없는 하늘바다를 연()처럼 맘 놓고 날아다니며 휘저을 수 있는 걸 좋아했다.


내게도 싫지 않은 필명을 그가 지어주었다
. 내 이름이 ()’이었기 때문에 나를 만날 때면 덤불이라 불렀다.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고 힘이 없어 뵈는 이름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 이름을 주던 날 나를 장충비 가까이 데려온 그는 이곳의 역사를 찬찬히 들려주었다.


여기엔 사당이 있었어. 예전에 군인훈련소로 쓰던 남소영(南小營) 앞이지. 이곳에 명성왕후와 홍계훈을 기리기 위해 사당이 세워지고 봄 가을로 두 차례 제를 지냈지. 나중엔 배향범위를 넓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에 희생된 장병들도 모셨는데 핵심적인 내용은 을미사변 때 황실을 지키다 순직한 이들이었지.”


그러다보니 이 사당의 운명이 어찌 됐겠는가
. 조선이 일제에 강제 병합되던 그때 사당은 철거되고 이곳에서 드리던 제사 역시 대일 감정을 악화시킨다는 이유로 금지됐었다. 이 일대는 일본인들의 꽃 벚꽃나무 수천 그루를 심어 공원으로 만들어버린 떫은 역사가 있다. 그가 말했다.


장충단을 무력시킨 작업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야. 일제는 1932년 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에 안중근 의사에게 살해된 이등박문을 기리는 절을 세웠는데 이것 역시 항일 기운을 누르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거든.”


이곳에서 단은 철폐되고 비석만 남았다고 쓸쓸하게 말했다
. ‘장충단이란 전서체(篆書體) 글씨는 순종이 황태자일 때 쓴 것이고 뒷면의 작은 글씨는 민영환의 것으로 거기엔 비를 세우게 된 경위에 대해 적고 있다.


우리는 공원에 갈 때마다 장충단 글씨를 보며
참 아름답다고 했다. 그날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헤어질 때가 되어 하늘을 나는 연이 내게 반지를 내밀었다.


뭐야?”


반지.”


?”


우리가 만난 건 딱이 100일이야. 내게 중요한 계획이 있는데 10년이면 족할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말을 안 하려 했는데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반지를 준비했어. 지금은 아니지만 내 뜻이 이뤄지는 10년 후의 오늘, 만약 덤불이 혼인하지 않았다면 내가 청혼하려구.”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 상대가 반지()을 주며 청혼한 것도 뜻밖이지만 그것도 10년 후의 오늘을 약속하며 반지를 내민 것은 뜻밖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결혼해 자식들을 오밀조밀 낳겠다는 생각이 없는 데다
하늘을 나는 연10년 후에 다시 만나야겠다는 바람도 없었다. 우리의 만남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거니 여겼었다. 그가 말했다.


반지라는 게 그래. 예전엔 혼인하면 필수품으로 상대방 손가락에 끼워 약속했다지만, 내가 듣기엔 왕실에서 상감의 은총을 받은 날을 반지 안쪽에 새겨 상대에게 줬다 하거든. 용의 씨, 즉 상감의 씨를 증명시키는 것이겠지. 그게 발전돼 내려왔다고 들었어.”


그 말을 남기고 그는 공원을 떠나갔다
. 그와 봄날에 처음 만나 100일이 지났으니 이른 가을의 장충당엔 나들이 나온 사람들 모습이 무척 한가로웠다. 그런데 어느새 10년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이다.


은은한 분위기를 잡아줘야할 하늘은 웬일인지 간간히 실비
(細雨)를 뿌린 데다 건들바람까지 몰아쳐 그렇게 좋은 일기는 아니었다.


나는 공원으로 나가 비석 가까운 벤치에 앉아 시계를 들여다봤다
. 시각은 벌써 저녁 일곱 시를 지나고 있었지만 주위는 을씨년스러웠다. 아베크족도 보이지 않았지만 쓰레길 청소하는 청소부가 비석 주위를 쓸며 아는 체 했다.


낙엽이 일찍 생겼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친 탓에 나뭇가지가 힘없이 떨어졌어요. 아주 덤불 같습니다.”


덤불?’


나는 청소부의 몸놀림을 눈여겨보다 잠시 생각에 빠졌다
. ‘하늘을 나는 연과 헤어져 10년이 흐른 게 남의 일 같았다. 처음에는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윤곽이 마음 판에 또렷이 찍히곤 했다.


그가 나에게 던졌던
덤불이란 말이 어쩌면 이렇게 납덩이처럼 마음에 얹히는지 몰랐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에게 아름다운 추억 하나 남기지 못하는 덤불과 같은 것일까.


회상의 책갈피 속에 고즈넉이 묻힌 낙엽이 아니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덤불과 같은 것이었을까. 문득 청소부가 한마디 던져온다.


옛날에 마카로니웨스턴이란 서부극이 있었어요. 정통 서부극 말입니다. 정오, 아참 그걸 하이눈이라고 하죠. 12시 정각에 만나 등을 맞대고 선 채 하나 둘...열 걸음을 걸어 총을 뽑아들죠. 그렇다 보니 얼마나 멋과 운치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총을 쏠 기회가 오면 열 발이든 스무 발이건 총알이 없어질 때까지 다 쏘아버려요. 주윤발이 나오는 영화가 그렇잖아요!”


청소부는 그것만이 아니라고 열을 올렸다
. 예전엔 사람이 쓰러지면 그가 왜 그랬는지 재빨리 다가서 일으켜 주지만 요즘은 아예 등짝을 밟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이웃을 돌아보고
공감(共感)’이란 끈으로 연결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오직 나와 내 식구만 잘 먹고 잘 산다는 서글픈 논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소부는 잠깐 서 있더니 어둠 저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잠깐 생각에 젖었다
. 저 청소부가 말한 공감이란 끈은 아인슈타인이 <인생에 대하여(on life)>에서 한 말이다. 사람이란 게 그렇잖은가. 세상을 살아가는 건 혼자선 어렵다고 했다. 더불어 살라는 말이다.


나는 어떤가
. 여성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보다 약하게 보이지 않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했다. 그렇게 하자면 내 나름의 철학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했다.


그걸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몰랐지만 나는
호사호(虎蛇狐)’라했다. 먹잇감이 있으면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어야 하고, 비둘기같이 약하게 보이면서도 지혜로워야 하고, 여우같이 교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 딱 맞는 일이
도박이었다. 내가 도박하는 게 아니라 도박장에서 안내하는 일이었지만, 하루 일당 3만원 벌이가 나중엔 꽃뱀으로 발전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제는 서울이며 지방에 점점이 조직으로 연결돼 도박 · · 계집장사에 대해선 누구도 무시 못할 존재로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 왜 며칠 전부터
하늘을 나는 연이 꿈길에 떠올랐는지 모른다.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게 어떤 건지 모른다
. 어쩌면 맑은 내 영혼이, 어느 사이 시궁창에 던져졌다가 훠이 훠이 하늘을 나르는 연처럼 자유스러워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제까지의 삶을 접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이곳에 나왔는지 모른다.


언뜻 시계를 보니 시간은 벌써 아홉 시가 지나고 있었다
.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으니 돌아갈까 생각하여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저쪽에서 바바리코트를 걸친 사내가 오고 있었다.


, 그다!’


나는 한 달음이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 그가 가까이 오자 윤곽이 드러났다.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10년의 세월이 그의 윤곽을 바꿔놓았지만 변하지 않은 건 왼손에 낀 반지였다. 나는 다른 것보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 반지가 있었군요?”


이곳에 올 때 반지를 꼈다면 결혼을 안했다는 뜻이다
. 반가움에 한마디 한 것인데 사내는 얼굴을 세우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꽃뱀이시죠? 조금 전 반지의 주인이 이곳에 청소부로 와 당신을 체포하려다 반지가 있는 걸 보고 우리에게 그 일을 맡긴 겁니다. 그 친구 아직 미혼입니다.”


내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것도 모를 만큼 나는 혼미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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