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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삼각형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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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삼각형의 비밀
2011-07-29     프린트스크랩


  생각지 않은 ‘바다 위의 꿈’에게서 꽃바구니가 배달되자 나는 다른 물건이 있는지 바구니 옆을 기웃거리며 가만히 살폈다. 과연 그곳엔 꽃바구닐 전한 이의 간단한 메모가 끼워있었다.

 

귀등임재삼달점(龜登臨在三達点)

음화장처봉사자(陰花藏處逢使者)

 

거북이가 오르는 곳에 삼달점이 있고

저승꽃이 핀 곳에서 사자를 만난다

 

‘염병한다’

갑작스런 내용이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으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으니 오랜 옛 기억이 머리 한쪽에 남아 스멀거렸다. 이것은 <서시(序詩)>란 제목의 도입부였다.


시를 쓴 것은 정치판에 갓 발을 들인 이들에게 ‘출정식’ 하는 결의가 담긴 ‘산으로 가는 결의’라 했었다. 산은 용맹한 호랑이가 사는 곳으로 그걸 잡으려면 당연히 산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때 우리에게 정치를 가르친 정책실장은 그의 노하우가 담긴 말을 아낌없이 전해줬었다.


“여러분,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노가대 십장이 정치를 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부수고 찧고 헤칩니다. 그러기에 정치는 정치를 아는 ‘꾼’이 해야 합니다. 정치학을 배우고 사회학을 부전공으로 삼아, 항상 주위를 돌아보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감’이란 끈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합니다. 슬플 땐 함께 울고 기쁨을 같이할 이웃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무슨 일에나 돈, , 돈입니다. 돈이면 다 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입니다. 돈만 아는 자들이 정치판에 끼어들었으니 매사에 돈, , 돈하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자면, 산중에서 갑자기 쏟아진 급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산으로 갔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물이 불어났습니다. 평범하게 보이던 골짝에 급류가 넘실거려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어렵게 됐습니다. 어쩌는 게 좋겠습니까. 나는 여자지만, 호랑이를 잡겠다는 목적이라면 앞으로 나가겠습니다. 여러분은 어쩌시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녀가 여자였다는 게 생각났다. 그녀는 이십 대의 팽팽한 젊음을 정치판에 내던졌고 이후 그녀가 피 터지는 싸움을 계속한다는 소문을 상당히 세월이 흐른 지금도 심심찮게 뉴스면에서 듣긴 했었다. 그런 그녀가 이십 대의 나에겐 함께 인생을 논하는 동반자이자 친구인 ‘바다 위의 꿈’이었다.

정치판에 남지 못하고 떠나게 됐을 때 그녀는 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었다.


“어이, 동지. 지금은 자네하고 연애 계속할 여유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기 탁자 위의 꽃바구니 보낼 거야. 알았어? 저것 그래도 뜻이 있는 거니까 무슨 뜻인지 풀어보고 찾아와야 해!


그 말을 들은 지 벌써 30년이 지난 것 같다. 한때는 세상의 급류에 발을 담근 채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었지만 그것이 지금껏 추억으로 내 마음에 자라왔었다. 나는 꽃바구닐 이리 저리 눈여겨보다 한마딜 언뜻 토해냈다.


“어쩌라구?


도대체 꽃바구니에 ‘서시’를 담아 보낸 의도가 어디 있는지에 머릿속이 출렁댔다. 책상 한쪽 모서리에 바구니를 올리고 망연히 바라보자 문득 이상한 생각이 다가왔다.

꽃 모양의 배열된 형태에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집 가까이 문을 연 꽃가게에 안개꽃 한 다발을 주문하자 언제나 웃는 낯인 순희 씨가 배달해왔다. 서른이 넘은 그녀는 꽃바구닐 보고 고개를 갸웃대더니 자신의 생각을 내놓았다.


“저 바구니의 꽃은 꽂힌 배열이 삼각형이에요. 상당히 정성을 들였는데요.


   그녀가 돌아간 뒤에도 나는 그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삼각형이라, 삼각형이라···. 그러고 보니 30년 전인가 그때도 삼각형에 대해 애를 끓인 적이 있었다. 그것은 북악(北岳)에 대한 말이 나오면서였다.


북악은 북악산으로 백악산을 가리킨다. 화강암으로 기반을 이룬 이 산은 높이가 342미터로 인왕산을 비롯해 낙산 · 남산 등과 더불어 서울의 분지를 둘러싸고 있어 옛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을 기점으로 경복궁에서 보면 북쪽에 위치했기에 붙여진 이름이 ‘북악’이다.


북악을 머리로 삼아 이 나라 정궁 경복궁이 들어섰는데 그 앞에 조선총독부라는 일자(日字) 건물을 지어 지맥의 흐름을 차단하고 서울시청을 ‘굽은 형태()’로 설계해 천 년 만 년 일본이 다스리겠다고 대일본(大日本)이란 형태를 만들었다. 이것이 지리학자들이 본 풍수침략의 형태다.

팔 벌린 큰 대자(大字) 모습인 북악은 종전의 미술관 자리가 일자(日字) 형태를 이뤘으며 서울시청 구조가 본() 자 형태어서 다분히 인위적이었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있었다.


“북악이 있으니 당연히 남쪽 지방에 남악(南岳)이 있어야 한다. 남악의 진혈을 찾는 이가 대통령이 된다!


그럴 것이다. 우리들은 반신반의 속에 남악을 찾아 나섰지만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결국 ‘남악탐정대’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왔는데, 훗날 DJ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렇게 보면 남악을 찾았다는 말이 된다.
아니 DJ가 남악을 찾은 것이다. 30년이 지나고 DJ도 세상을 떠난 지금 ‘바다 위의 꿈’이 저 꽃바구닐 보낸 건 무슨 뜻일까? 더구나 꽃바구니 배합이 삼각형이라 했다.


‘삼각형이라···.

나는 곰곰 생각에 빠져들었다. 남악이라 했으니 혹여 삼각형과 관계있는 건 아닐까. 꽃바구니에 적힌 글귀 중에 삼달점(三達点)이라 한 건 ‘달()’이 들어간 지명이 아닐까.


1910년인가 미륵사지 가람배치에 대해 일본학자들이 깊은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고 있다. 지난 74년과 75년 사이엔 원광대학교가 연구에 착수해 성과를 거두었지만 미륵사지를 세운 전체적인 연구는 미흡했다.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다음으로 거론된 곳이 충청도 계룡산이었다. 오래 전부터 도읍지로 회자된 건 사실이지만 이곳이 도읍지가 된다면 남악이 아닌 중악(中岳)이어서 제외시켰다.


‘남악은 남쪽의 도읍지니 아마도 전라도일 것이다. 흐음, 전라도라···.


그러고 보니 일제 때부터 전해오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전라도에 남악이 성립하기 위해선 금거북이에 해당하는 최대의 명승지를 찾아야 한다.

일본의 풍수전문가 무리야마지준(村山智順)은 그곳을 무안의 승달산(僧達山), 목포의 유달산(儒達山), 해남의 두륜산(頭輪山)이라 보고 그곳을 연결해 삼각형을 만들었었다. 그러나 무라야마 지준은 세 곳을 잇는 꼭짓점을 톡톡 두드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론상으론 여기야. 그런데 아무 것도 없어. 아무리 봐야 도성이 들어설 장소가 아닌 바닷속이닌까. 삼달산(三達山)이라 한 것은 ‘달()이란 단어 셋이 들어가는 곳이잖아. 그러나 두 개 밖에 없으니 이달산(二達山)이지.


이러한 의문을 품은 채 세월은 또 수십 년을 지나쳐왔다. 나는 <대한민국전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DJ는 아마 세 산의 특성을 연구했을 거야. 무안의 승달산은 글자 그대로 불교를 나타내고, 목포의 유달산이 유교를 나타낸다면, 이번엔 당연히 나타나야 하는 게 도교다. 그렇게 보면 선달산(仙達山)이어야 하는데···.


그러나 선달산이란 지명은 없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그 점을 반문했다.


‘일본의 풍수사들이 승달산과 유달산, 그리고 두륜산을 꼽은 건 어떤 이유일까?


그건 우리의 역사서 때문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엔 두륜산의 서쪽자락이 선은산(仙隱山)이란 기록이 있다. 게다가 대흥사라는 명찰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세 산을 잇대 작도하면 꼭짓점은 바다에 떨어졌다. 다시 <대한민국전도>로 시선을 돌렸을 때 특이한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영암군 미암면에 위치한 선황산(仙皇山)이었다. 이 지명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대한민국전도엔 나타나지 않은 곳이었다.


영암군과 무안군의 문화에 대해 검토해 봤지만 그런 지명은 없었다. 그런데도 쉽게 뜻을 접을 수 없어 무안군, 영암군, 강진군, 해남군, 화순군을 같은 비율로 지도에 입력시켜 붉은 사인펜으로 점과 점을 선으로 연결하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삼각형의 중심점은 무안군 삼향면의 남악리(南岳里) 마을이었다. 삼각형을 이룬 중앙엔 검게 칠한 삼각형(▲)이 있고 그 옆에 오룡산(五龍山)이라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달()은 모든 것의 으뜸이란 뜻을 품고 있는 숨겨진 단어였다.


나는 급히 남악리 마을의 오룡산 아래를 찾아갔다. ‘바다 위의 꿈’이 보낸 꽃바구니에 ‘저승꽃이 핀 곳에서 사자를 만난다’고 했으니 바로 그 장소를 찾아간 것이다. 내가 오만가지 생각으로 혼란스런 머릴 흔들며 찾아간 곳엔 납골당(納骨堂)이 있었다.


‘납골당?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조바심치며 안으로 들어가 한참을 걸었을 때, 우리에게 정치를 가르친 정책실장 이수련(李水蓮)이란 여인의 영정 사진 아래 한 무더기의 안개꽃이 놓여 있었다. 그 앞엔 서른이 못돼 뵈는 여인이 고갤 숙이고 있었다. 희미한 중얼거림이 그녀에게서 새어나왔다.


‘엄마! 아빠는 오지 않았어. 엄마가 죽기 전 장담했지만 아빠는 삼각형의 비밀을 풀지 못했나봐. 그러나···, 그러나 난 기다릴 거야. 아빠가 날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녀가 울먹이며 기도하는 것처럼 어느새 내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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