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의 산책 - 실력자의 아픔과 영광 - 덤이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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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6월 17일) - 포석의 산책 - 실력자의 아픔과 영광 - 덤이 없었기에
6월 16일의 오후 7시 47분
요즘 기분이 상쾌할 때가 많다.
우뢰가 지나가고, 비 뿌리는 때가 자주 있어 더위를 식혀주니 그런 듯하다.
지금 비 내린다.
어느새 논에 벼 한 소식 자랐다.
덕분에 먼 산 여울지지 않으니, 아쉬운 맘 없지 않지만 내 어쩌랴.
진경 眞境이다.
1938년 슈사이 명인 은퇴기 결정전에 덤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1939년 일본 본인방전에 4집 덤을 적용했다.
만약 덤이 애초부터 있었다면?
애초부터는 아니더라도, 1930년대 신포석 시대 이전에 있었다면?
신포석은 탄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치수고치기 10번기와 같은 드라마는 없었을 것이다.
오청원의 뛰어남도 일부밖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만 같다.
덤이 없었던 시대에는, 실력자라도 고단자가 될수록 괴로워진다.
덤 없이 상대의 선착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겨우 4집 정도의 덤을 갖고 뭘 그리 심각하냐고? 나도 그리 생각한다. 그러나 덤이 없는 선 先바둑에서는 초반 포석부터가 다르다. 차분히 지켜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 여간해서 지지 않는다.
오청원도 술회했다.
五段이 되니까 백을 잡고 둘 때가 많았다. 그러면 이기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고민했다. 초반에 상대의 선착의 효과를 이겨내는 포석을 구상하느라 애먹었다.
실력자는 모호한 안개 속에서 승부를 가리고 싶다. 너와 내가 알고 있는 그런 세계 속에서는 승부를 이겨내기란 꽤 힘들다. 상대가 익숙하지 않은 그런 세계 속에서 승부를 결해야만 한다. 모호한 반상을 만들어야만 한다.
포석의 고뇌는 실력자의 번뇌.
다행히 승부의 시간을 구별하는 것은 실력자만의 안목.
책 같은 것이 널리 발간되지 않은 시대에는 바둑의 정보가 모두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우스개 같지만, 3류 무협지에서는 비급이 주인공의 재주보다도 더욱 중요하다. 허황된 설정? 아니다. 비록 3류 무협지에서도 그것은 절대로 허황된 설정이 아니다. 1류 무협지는 어떤데? 1류 무협지도 다르지 않다.
개인의 재능과 인류 역사의 의미, 사회적 조건의 절제, 플롯의 구조, …, 우리 모두의 고민이다. 무협지 작가만의 고민이 아니다.
반상의 정보가 널리 공유될 때 실력자는 괴롭다. 프로의 세계에서 그 누가 만만하던가. 아차! 방심하는 순간에 승부는 허공에 뜬다. 하물며 백을 잡고, 덤도 없다면!
덤이 있었더라면,
오청원도 기타니도 그리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약간의 실력 차이만 있어도 승부는 쉽게 가려진다. 실력의 차이가 있다고 가정하면 10국 중에 8국 이상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 차이가 있다면 실력의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8할의 승부를 갖는다?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리. 요즘 프로 세계에서 누가 8할의 승률을 갖던가? 없다. 7할 5푼이면 충분히 타이틀 보유자가 될 수 있다. 가벼운 통계치인 듯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단순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의미있는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충분한 조건이요, 정보다.
실력의 차이를 승부로 쉽게 드러내는 방식이 존재할 때 우리는 그 방식을 공정하다고 부른다. 그것이 바둑의 세계에서 공정하다는 의미.
공정하지 못한 조건 아래에서는?
덤이 없다면 고단자에게 불리한 조건이 따라 온다. 9단은 초단을 석점 접어야 한다. 그랬다.
어떻게 이겨내는가?
앞서 말했듯이 하수 下手를 모호한 세상으로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런 세상이래야 下手가 모르는 복잡한 주제를 등장시킬 수 있다.
신포석은 모호한 세상을 여는 하나의 열쇠였다. 비록 나중에 그것이 질서가 되어서 다시 한 번 고수 高手는 괴로워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나 다행히 20세기 역사는 高手에게 유리한 역사.
신포석이 완성되고 보다 넓은 세상이 펼쳐졌을 때 덤이 때맞추어 등장했던 것이다.
어쩌면, 덤이란 것은 高手들이 주장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드러내서 주장한 사실 史實은 내 알지 못하지만. 없었던 듯도 하지만. 덤 성립 때의 논쟁을 내 어디 찾아 읽은 적도 있는데, 高手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치수고치기 10번기는 덤 없던 시대의 마지막 산물.
덤이 승부 바둑에 적용된지 20년 쯤 되었을 때 사라질 운명을 걸머진 시간의 유물.
10번기 바둑이 찬연한 빛을 발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 판의 바둑도 드라마틱할 수 있는데, 10국의 전제 하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란!
오청원이 10번기를 모두 이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당연히 있었던 것이다.
오청원은 신포석을 창안한 실력자.
덤 있는 바둑이라도 유리할 터인데, 하물며 덤 없는 바둑의 승부에서랴!
더욱이 그것이 열 판 중에서 7승 3패만 되어도 이기는 것임에랴.
8승 2패를 얻어도 실력 차이를 뚜렷이 주장할 수 없는 것이 인간사 승부 실제인 것인데!
4승 6패도 졌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숫자라는 것의 마술!
덤이 없었을 때
실력자의 방황이 드러난 곳이 있었다.
실력자가 떠나야만 했던 모험의 길이 있었다.
그 모험의 종착지가 다행히 큰 대륙의 발견으로 귀착된 적이 있었다.
포석의 재구성.
무질서를 통한 새로운 질서의 창조.
그 세계.
신포석.
밤이다.
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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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oice1 |
｜ 2005-07-14 오후 7:27: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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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오늘은 막걸리 한 잔에 일찍 주무시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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