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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의 산책 - 현실이 인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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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4월 12일)
포석의 산책 - 현실이 인도하다
새벽 4시 59분.
언제부턴가 주변을 보면 유목민의 삶을 바둑으로, 농경민족의 삶을 체스나 장기로 비교하곤 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런가.
바둑은 그런 식으로 두어지는가. 그래서 그리 이해되고 표현되는가.
유목민과 바둑돌은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가.
질 들뢰즈인가? 프랑스 철학자.
그의 글에서 그런 얘기를 읽은 적도 있다.
별 거 아니다.
비유로 그쳐야 하리.
비유도 맞는 비유일까? 아니다. 그리 보지 않는다.
이름 있다고 곧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며, 권위가 있다고 곧 제대로 된 이해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기가 더욱 더 유목민의 생활과 닮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그런 길이 있다. 하늘에서 툭툭 떨어지듯 여기 저기 불쑥 불쑥 나타나는 그런 말 馬도 있고 코끼리 象도 있으며, 차 車도 있다.
바둑은 험난하다. 여기 저기 돌을 흩뿌릴 수는 있지만, 그건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이 바둑돌을 가지고 놀 때 그러하다.
기수법
바둑이 창안된 이후 시간을 한참 지난 때에 나온 것이지만,
기수법 起手法을 하나 보자. 현현기경에 나온 것이다.
행마의 방식을 말해주는 그림이다. 벌릴 때는 상변의 흑돌●처럼 두칸씩 벌리는 것을 법도로 보았고, 중앙으로 뛸 때는 하변의 흑돌▲처럼 한칸씩 둔다고 했다.
전쟁을 하는데 있어 길 없이 다니는 것보다 더한 위험은 없다. 지도 없는 것보다 더한 무모함은 없다. 함께 하지 않는 것보다 더한 불안은 없다.
오늘날 바둑은 집이 많아야 이기는 게임으로 알려졌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상대의 항복을 받아야 땅이라도 한 조각 얻는 것이 그 언제나의 전쟁이었다.
한 번 붙어보라.
사석 捨石작전?
하하. 그거야 고수 高手도 하기 힘든 것이다. 제갈량 정도 되면 약간 하리.
바둑의 발전사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그런 고수 - 돌을 별거 아닌 것으로 가볍게 버릴 줄 아는 그런 고수는 훨씬 뒤에 나타났을 것이다. 중국의 천년 전 기보만 보아도, 돌을 과감히 버리는 국수는 거의 없다.
지키는 것이 초점이며, 자기의 돌을 군대 이끌 듯이 차분히 연결하는 것이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
성도부사선자도
하나 볼까.
성도부사선자도 成都府四仙子圖
네 명의 국수 國手가 바둑을 두었다. 연기 連棋이다.
잠깐 설명을 해야겠다.
흑3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흑1과 함께 원병을 온 군대의 일부이다.
백4는 좌우 두칸씩 벌릴 여유를 가진 것이다. 정착이 아니라, 군대의 진영을 정돈하는 것이다. 흑19 또한 그러하다.
흑7이, 백22가, 협공 당할 때 어떻게 군대를 이끌고 탈출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백10은 무엇일까. 흑19 백20 흑21로 협공 당하니, 뜻 없이 길 없이 툭 떨어진 군대인가? 아니다. 백10은 하변 백4 백6으로 구축된 같은 군대의 요격병이다. 우하귀 흑을 공격하는 부대이다.
굳이 설명한다면, 이런 식의 설명이 훨씬 바둑의 이치에 적합하다.
묘사를 해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애초에 바둑이 창안될 때는 달랐다?
그럴 리가 없다.
자연은 두려운 것.
전쟁에서 두려운 것이 두 개 있으니, 하나는 자연지형이요 다른 하나는 적군이다.
먼 고대 古代에서 있을 법한 군대의 심리를 생각해보자.
어디선가 언제쯤 자신의 군대와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지만, 그만 그 약속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고 하자. 산속에 갇혀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정보가 있나? 전화기도 없다. 봉화 烽火? 그건 적에게 우리 여기 갇혀 있소, 잡아가시오. 가르쳐주는 것과 진배 없다.
불현듯 어디로 사라지듯 뛰쳐나갈 그런 군대는 없다.
징기스칸의 군대처럼 말을 자유롭게 다룰 줄 알게 된 것은 훗날이다. 몽고 이전에 훈 Hun족이 있었다.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이 되었던 바로 그 민족. 당시의 유럽인들은 공포에 젖었으리. 그 공포감이 질 들뢰즈에게 남겨져 있었으리. 하하. 지나친가? 그래도 하하.
그러나 그것도 바둑의 성립에서 한참이나 지난 일이다. 천년은 지났으리.
전쟁이라는 현실에서는 공포와 불안이 지배한다.
바로 그런 때, 인간이 취하는 대응 방식이 바둑에 표현되었다.
바둑은 고대인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을 오늘날도 상당 부분 간직하고 있다.
전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이해가 바둑의 길을 상당부분 만들어주었으리.
오늘날 우리의 바둑에도 그 이해 理解가 깊이 남겨져 있다.
흔적 이상이다.
그래서 고마운 게 하나 있으니,
전쟁을 모형으로 했다는 그 자체가 바둑을 우리가 어떻게 두어가야 좋은가에 대해서 큰 인도 引導를 주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방식이 존재한다.
그 이해한 바 방식을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을 바둑에 응용한다.
그리고!
그 응용이 가능했다!
사실이다.
특정 문화가 특정 게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게임은 수 천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자신을 낳은 고대 문화를 여전히 잘 표현하고 있고.
동방이 푸르게 밝아온다.
신새벽이다.
05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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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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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글은 아주 상쾌하면서, 생각을 명쾌하게 해주는 무엇이 있습니다. 결국은 사람의 일이니 사람을 벗어나지 않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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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전쟁은 평면적일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 툭 하고 날아드는 "치중" 은 매우 입체적인듯 하군요 마치 장기의 포(包)처럼 하긴 고대에도 활이나 돌을 던지는 기구가 있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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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치중은 뭔가 좀 특별한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시킴의 규칙은 이해 하기가 어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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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신세계 |
｜ 2005-04-15 오후 11:31: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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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정말로 저같은 사람도 쉽게 알수있을 정도의 설명이네요... 명확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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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塵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