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은 어떤 설명을 요하나 (2)

IV. 그 동안의 설명에 무엇이 부족했나

이 글 처음에 벌캄프의 수학적 해법을 이야기 하였는데,
그와 같은 맥락에서 - 오래 전부터 이런 경우 가끔 만났다 -
전문가를 만나면 그 분들 이런 얘기 가끔 하곤 했다.

바둑에서는 왜 그리 설명의 수준이 그 수준이냐.
자신 같으면 이 정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왜 그들은 그 동안의 설명에 아쉬움을 갖고 있었을까. 그리고 자신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반상에 대해서 제대로 된 기여를 거의 하지 못했을까.

이제 이 글은 그 이유를 밝힐 수 있을 거 같다.
이 글은 sign(기호)과 symbol(상징)의 구별에서 그 설명의 근거를 얻겠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다른 방식으로 더 큰 이해를 주시기 바란다.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 지식.

닫힌 세상(closed system)과 열린 세상(open system)으로 구별하지 않고 왜 기호와 상징으로 구별하는가. 그건 반상이 - 우리가 의미를 잡아채는 과정에서 - “은유적 언어”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은유적 언어만이 대국자로 하여금 모호하고 다양한 맥락을 개인의 의미로 포착해서 질서 짓게 하기 때문이다. 

1) 바둑의 설명(이해, 표현) 수준 셋과 기호, 상징

그랬다.
10급의 실력인 수학자 Berlkamp는 단지 기호만의 세계를 다루었기에
건조한 논리로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징의 세계에 가까운 것은 다룰 수 없었다.

      7도 (벌캄프의 수학적 해법이 적용되는 문제)

상징의 세계는 벌캄프의 세상을 넘어선 세계이다.
상징의 세계는 은유의 언어로 붙잡아야만 드러날 수 있기에
또 그것을 몸짓의 언어로 - 체화(體化)될 정도의 수준에서 - 다룰 수 있어야만 하기에,
그것은 벌캄프의 반상 이해 수준을 한참 넘어선 것이다.

2) 은유와 정보/ 상징과 기호

만약 반상이 정보가 넘치는 세계라면
반상은 상상력이 필요 없을 것이다.

만약 반상이 정보가 아주 없는 세계라면
우린 반상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할 것이다.

고마워할 일이다.
반상의 언어가 모호한 사실에 대해서.
반상이 은유의 세계를 통해 몸을 기탁하고 있음에 대해서.

좁게는 재미와 유쾌함이
넓게는 의미가

그래서 온다.
은유를 깊이 새길 이유가 되겠다.

행마는 살아있다.
행, 마.
한자로 써보시라. 과연 뛰어논다. 활달하다.

行馬.

반상의 설명 언어가 우리에게 충분한 이해를 주지 않고 있다는 그 사실은,
그 사실만큼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 감정과 상상을 통해 - 세계가 달리 있을 수 없다는 반상의 현실을 잘 증거한다. 감사!

반상을 단순하게 좁혀보자.
바둑은 기호와 상징이 다루어지고 표현되는 방식이 다른 세계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의 일상과 구별되는, 바둑만의 세계인 - 독특한 의미의 세계 - 까닭에 우린 반상에 들어가면 반상만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살아간다. 그 맥락 속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우린 반상을 이해할 수도 즐길 수도 없다.

다른 세상과는 다른 반상만의 맥락이 - 매우 모호하게 - 우리에게 전달되기에, 그것이 곧 반상을 우리가 상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되겠다. 예(藝)와 기(技)가 갈등하는 까닭이 되겠다.

포석단계에서는 기호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모호한 반상은 상징의 형식을 거쳐야만 은유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모호해야 비로소 의미가 주어지기에 그러하다. 의미는 다의적(多義的)으로 주어진다.

중반에서는 기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전히 제한적이다.

종반에서는 기호가 보다 큰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큰 끝내기에서도, 아니 어느 정도는 잔끝내기에서도 “두터운 끝내기” 그런 표현 쓰일 정도다.
Berlkamp가 발표했던 수학적 해법이 쓰일 수 있는 단계는 거의 끝 장면에서야 가능하다.

이리 말할 수 있다.

a) 반상의 상징세계는 점차 기호의 세상으로 변한다.
b) 반상과 달리 세상에서는 상징이 반드시 기호의 세계로 나아가거나 변화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음악 등 예술이 자신을 드러내는 세계는 상징적 의미의 세계이기에 기호로 분석되거나 결론지어지지 않는다.

반상은 나름의 상징 형식을 벗어날 수 없지만, 그래서 예술적 표현감을 느끼곤 하지만, 그러나 그 마무리는 기호가 대신한다는 그 사실. 그래서 예(藝)와 기(技)를 동시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문화는 그 본질이 이미지와 의미, 그리고 질서의 세계이다. 은유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상상된 자체가 질서인 세계이기에 연속성과 질서를 지향하지, 결론을 지향하지 않는다.

민족 감정에 의해 일부의 테두리가 정해지는 민족 개념, 국민국가의 개념 등도 상징의 세계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모호한 것을 의미로 제시하는 상징체계가 요청된다.

그러하다. 삶을 지탱하는 힘은, 사회를 유지하는 힘은, 역사를 기록하는 힘은 기호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호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의미가 삶을 지탱하게 한다. 단순한 기호에는 그런 힘이 없다.

길이 먼저가 아니라, 길을 은유하는 물과 바람이 먼저인 것이다.

3) 기호의 해독능력과 권위

단수 후 따내는 것은 초보적인 기호를 다루는 것. 
그러나 기호도 천차만별.
기호도 다루기가 무지 어렵다.

“발양론”은 고사하고 “현현기경” 그 한 권만 해도 얼마만큼의 숙련을 필요로 하는가. “기경중묘” 정도도 쉽지가 않다.

      8도 (발양론의 문제/ 이 어려운 것이 기호라니!)

      8-1도 (발양론의 답 중에서 하나)

      9도 (수책류 포석/ 이 장면이 상징적으로 이해되다니)

바둑에서는 수준이 높아질수록 상징을 갖고 놀 수 있다. 기호도 갖고 놀 수 있다.
기호와 상징을 뒤섞어서 편하게 갖고 놀 수 있다.

바둑에서 재밌는 것은,
상징은 차치하더라도 기호의 해독 능력이 부족하면 권위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신뢰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되나.
이치를 찾는 “방식”은 고사하고 설명의 대상에 대해 즉 “목표영역”의 자각과 구체화는 물론이고 문제의식마저 혼미하게 된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권위와 신뢰는 문화의 속성 중 하나이기에, 권위와 신뢰를 갖고 놀 수 있는 수준이 되면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기에 다음도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권위에 대한 의심, 그것으로 출발하지 않고서 과연 제대로 된 지식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까.

4) 언어의 본질과 설명

바둑의 역사를 돌아보면 다양한 설명방식을 반상에 구현하려고 했음을 알겠다.
대개의 경우 유비(類比)되는 세계로 반상을 해석하려고 시도했다.
천문학, 병법, 정치는 그 잘 알려진 영역.

그러나 실패했다. 왜?
반상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부족했던 탓이다.

뿐이랴. 단순히 이 분야를 저 분야로 대체하려고만 했다.
반상의 본질을 들여다보지 못한 상태에서 즉, 목표영역의 구체화가 불능한 상태에서
다르지 않겠거니 하는, 가벼운 희망만 있었던 것이다.
“희망과 기대”를 “참과 거짓”의 문제와 거리를 두어서 바라볼 힘은 갖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이 글이 주장하는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구별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정도로 가볍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해서 나눈 것이다. 예컨대 경제학의 언어 중 일부는 반상을 설명하는데 유용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당연히 사회에서 얻은 지식에 속한다. 단순화는 위험하지만 때로는 쓰고 싶은 것. 어느 정도 틀리더라도 할 필요가 있는 것이 단순화.

사회에서 얻은 것으로 설명하면 실패“한다.”
자연에서 얻은 것으로 설명하면 성공“할 수 있다.”

왜?

반상의 언어 탓이다.
반상 언어는 몸짓의 언어. 문화로 정제되지 않은 언어.

몸은 근원영역.
반상은 목표영역.

인위적인 사회체계, 사회적 질서에 의해 조정이 강요되지 않은, 그래서 정제되지 않은 언어.
그것이 반상의 언어.

의식의 반응체계가 특정한 형이상학적 존재가 아니라 몸에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상대가 빵 따낼 때 시원하다, 또는 아프다, 깨끗하다 등 다양한 반응을 내곤 한다.
두점머리 두드림 당할 때, 몸의 어딘가가 - 가슴인가 머리인가 - 아프다는 감각 있다.

이런 경험 하나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다.
4년 전,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걷는데 - 난생 처음으로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잠시 집중을 한 이후 - 앞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더니 양 볼을 당기는 거 아닌가. 그 순간 가슴에 쌓여져 있던 분노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빙그레 웃음 띤 얼굴이 되었다. 분노가 가슴에 쌓여있는 줄도 미처 몰랐었는데!

5) 천문학은 자연 아닌가

17세기 천문학자이자 전문기사였던 야스이 산테츠가 도샤쿠와의 1국에서 천원에 첫 수를 두었다. 반상은 천문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희망이자 자신감.
그러나 실패했다. 반상은 천문의 세계와는 큰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그 실패는 그의 한계일 수도
그 시대 천문학 발전 과정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이, 지나치게 구체적인 수법을 포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추상적인 수준에 그 목적을 머물도록 했다면 조금은 성공하지 않았을까.

      10도 (천문학의 반상 응용/실전)

실전처럼 두지 않고,
북극성 주변을 도는 돌은 북극성 주변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지면 왕의 위엄이 약화되듯이 그 힘을 잃는다, 고 착상했다면 어땠을까.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중간 쯤 되는 안목으로 말이다.
그러면 천원에 보다 가까운 4선과 5선에 둘 수 있었을까. 11도는 순전히 오늘의 안목이지만  - 그래도 세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관념의 끝자락이라도 얻을 수 있었을까. 가능한 이야기일까.

      11도 (그 천문학자는 이리 둘 수 없었을까)

11도 (그 천문학자는 이리 둘 수 없었을까)

“집”과 “天文”은 서로가 쉽게 가까이 하기 힘든 개념이다.

아니, 땅과 하늘, 그것이야말로 서로가 가까이 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러기에 땅과 하늘 사이에 빛도 있고 공기도 있으며 바람도 있지 않던가.
새들도 날고 있지 않던가.
거인이 어깨를 들어 하늘을 떠받쳐야만 우리 인간이 살아갈 공간이 성립되지 않던가.

6) 은유와 설명의 수준

만약
a) 우리가 반상의 표현언어를 자연과 몸에서 얻는다는, 그 은유적 본질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설명의 수준을 낮추면 - 반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서 -
그러면 가능하다. 상징과 기호를 다루는 실력이 부족하다 해도 설명을 하는 것이.

b)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반상의 언어,
그 언어가 어느 과학영역에서 비슷하게 사용되고 있는가?

그 영역을 발견하면, 그리고 그 영역이 언어뿐만 아니라 질서의 형성 방식에서도 비슷하다면  우린 그 영역에서 바둑을 설명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얻은 지식으로 인간을 설명하듯이, 경제의 지식으로 정치의 설명도 폭넓게 행하듯이. 반상에서도 효율이나 질서, 권력, 이런 개념들이 설명력을 높이듯이.

VI. 설명하려고 한다면

만약 반상을 설명하려고 하면 - Berlkamp와 같이 기호만의 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닌 한 -
무엇보다도 설명하려는 사람의 힘이 기호와 상징을 잘 갖고 놀 수준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 수준이 되어야 반상을 안다고 할 수 있고 반상을 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비로소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안다는 것의 의미일 것이다.

예시를 하나 들면, 21세기 오늘의 수준에서 프로의 수준, 즉 “안다”고 한 마디 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옆에서도 인정해줄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1) 세모와 네모를 한 눈에 잡을 수 있는 실력이 되어야 한다.
2) 3선과 4선의 차이를 편하게 인식할 정도 되어야 한다.
3) 반상의 언어를 기호와 상징으로 나눌 때, 그 어느 것에나 익숙한가?
  예를 들어, 사활이라는 영역, 그 기호에 충분한 통제력을 갖고 있는가.
  포석과 중반의 승부처에서 충분한 이론과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는가.
...

그 수준이 아니 되면 반상을 갖고 놀기는 힘들 것이다.
갖고 놀기 힘들면? 그러면 이론의 정립은 쉽지가 않다. 이론이란 갖고 노는 것을 기초로 하는 것.

이 글도 조심한다.
“프로 수준이 아니면 쉽지 않은데”라고 말해도 프로 수준이란 것이 문화적 기준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현상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또한 그 “프로”는 현대의 프로를 말하는 것도 아니며 어느 시대에서나 그 시대의 권위적 수준을 지칭한다.

물론 프로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상의 설명에 기여를 할 수 없다,
그리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에서는 아마추어가 만든 묘수풀이 문제집도 있는데 그 수준이 대단하다. 내용도 독특하고. 언젠가 한 번 소개하고플 정도로 뛰어난 안목과 수준을 갖고 있다.
“신포석법”을 공동 저술한 야스나가 하지메(安永 一) 선생의 경우도 언급되어야 하겠다. 선생의 중국 고대 바둑에 대한 저술도 쉽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긴, 선생은 한 때 프로였었다.

그러하다. 부인할 수 없다. 아마추어 10급만 되어도 새로운 포석이론을 제시할 수 있다. 15급도 가능하다. 논리를 제대로 사용하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다만, 반상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한 이후에 바둑의 설명을 다루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그 점을 무겁게 여기지 않았기에 그 동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실제로 반상에 적합한 이론을 제공하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바둑 이론의 발전이 전문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왔다는 역사적 사실은 실로 우연이 아닌 것이다. 도사쿠, 슈사쿠, 기타니, 오청원 등 우리의 귀에 친숙한 이름들.

반상에서 두는 것과 인식에서 자각하는 것은 크게 다르기에, 그 차이가 좁혀질수록 설명의 힘은 보다 쉽게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반상의 직접적인 설명보다 반상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를 설명하는 것도 좋은데 그 또한 설명을 다루는 길이 될 것이다.

예컨대 바둑史를 다룰 때 수법이나 인물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수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 시간이나 덤, 리그 제도, 도전기 제도 등 - 을 따로 다루어 독립된 바둑史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