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과 장문 은유 - 확장을 위하여(1)              

I. 심층적인 형태에 대해서

저번에 세모와 네모를 이야기할 때
그것이 반상의 심층적인 형태라고 이야기했다. 원형으로 부르고 싶다 했다.

“심층적인 형태,” “원형.”
이 표현에 대해서 약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심리학자 융(C. G. Jung)과 인문학자 엘리아데(M. Eliade) 이야기인데, 두 학자 모두 원형이라는 표현을 깊게 썼다.

그런데 엘리아데의 원형에 대해서 그의 독자 중 대부분이 융의 원형과 비슷한 관념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엘리아데도 뒷날 자신의 원형 관념이 다소 모호했던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다시 말하기를, 자신이 원형이라고 불렀던 것을 모델(model)이나 패러다임(paradigm)으로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글도 말해둘 필요가 있다.
세모와 네모는, 모델의 관념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심리적인 상징, 그 원형은 그 자체 형상이 없다. 고정된 형상이.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문화에 따라서 드러나는 모습은 다른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의 세모 네모는 그 원형으로서 존재하지만
역시 모델(model) 정도로 이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리적인 원형은 아닌 것이다.

조심스럽게 쓰겠다. 형상, 원형, 모델. 그런 개념에 대해서.

그러나 쉽지 않다. 생각이 돌아다니고, 또 아직까지 이런 종류의 이해를 위한 연구가 없었으니 이런 초고(草稿)에서 개념을 어느 하나로 꽉 잡아두는 것은 쉽지가 않다.
완성된 책으로 이 글의 주제를 선보였으면 이런 혼란은 좀 줄어들 터인데 아쉬운 점 없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좋은 점도 있으니, 여러분의 반응과 질정을 얻어서 보다 나은 개념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II. 안전과 공격/ 생존의 두 얼굴

세모와 네모가 기대는 조건은
안정(安定)과 안전(安全).
인간이 필요로 하는 조건이다.

그렇지만 안정과 안전만이 인간이 필요로 하는 전부는 아니다.
살아가려면 생존에 필요한 물자도 얻어야만 한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채집하는 시기가 있었고, 수렵하던 때가 있었으며, 농경하던 시간도 있었다.

특히 수렵과 농경.
이 두 조건이 인간의 본능을 형성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시간이었다고 하는데, 이 견해에는 대부분의 인류학자나 심리학자들이 동의하는가 싶다.

반상에는 그 어느 조건이 특히 깊게 배어 있을까.
바둑이 그 어느 전통에 깊이 빚지고 있는지는 잘라서 말하기 어렵다. 못하겠다.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수렵의 전통. 농경의 본능.
그 둘 다 가졌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바둑의 용어는 그 점을 약간이나마 지지해준다.

중국의 돌중심 세계관에서는 몸짓과 의도를 표현하는 개념이 많다. 鎭, 門, 覿 등.
일본의 집중심 세계관에서는, 대지(大地)의 형상을 표현하는 개념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田字, 一間, 目字 등.

굳이 수렵과 농경 그 두 세계관을 중심으로 나눈다면
돌 중심의 세계관에서는 수렵을, 집 중심의 세계관은 농경을 상대적으로 보다 더 반영하는 듯하다.

III. 공격 또는 습격, 반상에서는 좌우(左右)로

반상에 수렵의 본능이 남아 있다면 그건 어떤 식일까.
과연 반상에서 수렵에 핵심적인 언어, 그 수법이 있느냐?
있다.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수법의 반경이 대단히 넓고도 넓다.
농경에서는 찾기 힘든 것으로, 보통 전쟁의 모형으로 인식되어온 그런 것이다.

언어를 먼저 하나 보자.

      1도 ( 현현기경 문과 조)

1도는 “현현기경”에서 사용된 언어 용법이다.
우상귀 백1은 문(門)이라고 했다. 장문(掌門)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수법.
좌하귀 백2는 조(罩)라고 했다. 올가미(网 罒)라고 불리는 그 뜻.

이 두 개념이 수렵시대를 연상시킨다. 아니, 수렵의 전통을 남겨두고 있다. 살려두고 있다.

장문에 대해서는 한자가 달리 쓰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글은 掌門으로 본다.
문은 개폐(開閉)할 수 있는 것. 장(掌)은 손바닥. 손을 아니 쓰고 어찌 개폐를 논할 수 있나.
올가미 역시 그러하다.

올가미와 장문.
그 두 개의 단어에서
반상의 19로 그 망상 조직(grid), 格子 무늬, 그 조건을 생각할 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조건 하나는,
좌우(左右)이다.

왼쪽 길, 오른쪽 길.
이것이 수렵의 전통에서 얻어진 网(그리고 門)과 함께 반상에 반영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본능 중 하나를 표현할 수 있었다.

상대를 가두기 위해서는 좌우를 막아야 한다. 앞뒤도 막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얻는다. 그 대상, 수렵의 목적물을 잡을 수 있다.

즉, 장문은 동전의 양면처럼 네모와 동일한 조건을 강조한다. 그 조건은 左와 右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표1. 左右는 네모와 장문의 공통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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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 左右를 가로 막다
장문 - 左右를 폐(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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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도 (장문과 네모 - 급소는 좌우, 그 마주하는 곳)

2도에서 흑1은 그야말로 급소다. 실전에서는 흑1을 2-1도 흑1에 두어 백을 쉽게 탈출할 수 있도록 했었다.

      2-1도 (장문과 네모 - 실전 - 빗나간 급소)

그러하다. 장문과 네모가 서로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조건 하나는 左右를 핵심으로 한다는 그 사실이다. 열고 닫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좌우의 門의 개폐가 버릴 수 없는 조건임을 알 수 있다.

장문과 네모가 左右라는 그 기본적 조건을 - 그 어떤 다른 수법보다도 - 함께 공유한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장문이 네모의 거울 이미지로서 반상의 원형(모델)을 잘 대변하는 증거가 아닐까 욕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아니다.
무엇보다 안정과 안전은 고요한 측면(靜)을 강조한다. 고요하면 형상을 잡을 수 있다.
장문은 공격적이다. 움직이는 측면(動)을 강조한다. 움직이면 형상을 잡을 수 없다.

공격 본능.
반상에서 이 본능은 넓고도 깊게 남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본능이 장문에만 남겨진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무릇 공격이란 것은 반드시 장문에 국한되지 아니하며, 그 어느 수법도 공격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뒤에서 밝히듯이 그 어떤 의도도 그 자체 형상을 가진 존재가 아니기에 다른 모든 형상의 언어를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장문은 둘러싸서 사냥한다는 그 이미지를 그 어느 것보다도 잘 표현한다.

그러니까 안정과 안전을 도모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수비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요구되는 반상 언어의 원형이 세모와 네모였다면

공격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상대를 잡고자 주시하는 입장에서
요구되는 반상 언어의 원형은 형상으로 나타낼 수 없다.

공격은 일정한 형상에 의해 제약되지 않는다.
의도만이 있을 뿐이다. 그 의도에 적합한 것은 그 어느 형상이나 도구가 될 수 있다. 

잠시 행마와 맥에 대해 가벼운 개념 정의를 갖도록 하자.

표2. 행마와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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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마: 행마는 일정한 관계를 가진 돌 2개의 모양을 말한다.
맥: 어떤 수법의 결과가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증명의 수준에 이르렀      을 때 그 수법을 맥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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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정의는 아니다. 그러나 대략 그런 뜻이겠다.

예를 들면 - 3도 - 비진(飛鎭)은 행마에 해당되고, 비진(飛鎭)에 대해 상대가 응수하고(붙여서) 그에 대해 끼웠을 때, 그 서로의 대응은 맥이라고 하겠다.

      3도 (飛鎭 행마와 맥)

3도에서 백1은 飛鎭 행마다. 이 수 자체로부터는 결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흑2 백3은 다르다. 흑2는 “붙인다,” 그리 말한다. 어쩌면 흑2에 대해서는 아직 단정적인 결론을 얻는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흑2에 대해서 백이 백3으로 대응하느냐, 또는 A로 젖히느냐, 그에 따라 거의 뒷수순이 결정되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백3은 분명히 맥에 속한다. “끼운다”고 표현하니, “끼우는 맥”에 속하겠다. 뭔가 어색하지만 그리 쓴다.
다음 흑이 B 또는 C에 두는 것은 절대. 그 다음도 “거의” 결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백3은 맥에 해당되는 수법이라 할 수 있다.

IV. 모든 반상 언어는 그 착수가 직접 표현하는 그 너머를 가리킨다

“수법은 안목에 의해서 넓혀진다.”

누구나 동의하는 명제리라. 그러나 과연 저 명제를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을까?
그건 쉽지 않은 문제다. “안목”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게 길러진다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우선 표3.

표3. 의도와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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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도에는 형태 없고 형태에는 의도 없다.

2) 의도를 말할 때는 어떤 형태도 선택 가능하지만,
   형태를 말할 때엔 의도를 미리 결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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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2)는 비슷한 진술이다.
1)은 금언(金言)같은 형식으로 진술한 것이다.
예전에 “주역의 발견”을 쓴 후, 바둑에 대한 질문에 이리 답한 적 있었다.

“바둑에 주역 없고 주역에 바둑 없다.”
 
그런 식이다. 간략하고 편하다. 갖고 놀기 적합한 형식이다.
2)는 1)을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겠다.
“수법은 안목에 의해서 넓혀진다.”는 그 표현에서 “안목”을 “의도”로 바꾸면 다음과 같은 표현을 얻는다.

“수법은 의도에 의해서 넓혀진다.”

예를 들겠다. 4도는 멋진 삭감의 예를 하나 제시한 것이다.

      4도 (삭감의 의도와 결과)

4도를 보면서 설명하겠다.

1) 삭감을 한다. 우린 삭감의 형태를 본다. 삭감(削減)에서 削은 “자른다” 減은 “감하다,” “제한하다”의 뜻이다.

2) 결과는 무엇인가. 흑1 이후 재구성된 반상이다. 그 결과는 흑1이 두어지기 전 바로 그 장면에 비해 볼 때 뚜렷하다.

3) 흑1을 두게 만든 동기는 흑5까지의 결과에 대한 흑의 판단이다. 흑1 삭감 자체가 흑1을 두게 만들지는 않았다. 물론 흑1에 대한 백2 응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달리 응수해도 여기서는 결과가 비슷하게 나온다.
그러므로 삭감 이후가 삭감을 결정하게 된 행동의 원인이다.

4) 그렇다면 삭감이라고 부르는 그 수법 그 자체는 사물을 제대로 가리키지 못한다.
의미는 관계 또는 전체성과 관련해서야 주어지는 것이다.

5) 삭감이 실제 가리키고 있는 것은 행마 그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결론이다.

6) 말할 수 있다.
반상에서 모든 행마 그 자체는 그 행마의 결과 귀결되는 결과와 구별된다.

행마는 하나의 기호(sign)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가 반상에서 의식하고 의사소통의 도구로 삼는 것은 의미(상징 symbol)라고 칭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것이 언어에 앞서서 진행되는 - 언어를 포괄하여 - 비(非)언어적 사고의 핵심을 이룬다.

“‘날일자 행마’를 했다.”
그리 표현해도 그 자체는 거의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날일자 행마’로 밀어붙인다(또는 공격한다, 형태를 갖춘다 등)” 등으로 말하면 그건 정보가 된다. 의미 있는 정보가 된다.

삭감은 수단이다.
삭감의 행마, 삭감의 수법은 수단이 된다.
수단은 목적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보다 높은 효율을 가진 다른 수단으로 대체될 수도 있고 그 동안 쓰이지 않았던 쓰임새를 발견함으로써 스스로 쓰임새를 발전시킬 수도 있다.
행마 등 수법은 이러한 배경을 뒤로 해서 발전하고 변천한다.

의문이 온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이런 이야기.
너무나 당연한 이런 논리, 이런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앞서 말했듯이 모든 수법들은 반상 공간의 확장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 의도와 안목에 의해 - 발전하고 있다.

그 점을 어떻게 잘 드러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에서 중언부언 했는데, 과연 어떨까.

예를 하나 들겠다.

지난 백년.
반상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의 하나는 “장문”이라는 수법의 발전.
고전적인 사전적(辭典的)인 정의에 의하면 장문에 속하지 아니하는 수법.
그러나 “장문의 감각”을 사용한 수법.

오늘날 반상에는
“장문의 감각으로 반상을 구획한다(자른다).”는 그런 인식을 가져도 좋을 만한 그런 수법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장문은 아닌데 장문의 수법을 사용한다.
부분적인 장문에 대한 감각이 여간한 수준에 오르지 않고서는 얻기 힘든 그런 수법. 그런 수법이 반상에는 자주 등장한다.

그런 변화를 어떻게 하면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변화를 어떻게 하면 보다 손쉽고 의미있게 활용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