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싣는 만화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월간바둑]과 자매지인 [월간바둑가이드]에 ‘정용진의 바둑수첩'이란 꼭지명으로 매달 연재했던 것들입니다. 원래는 [월간바둑가이드]에서 시작했다가 자매지가 폐간되면서 [월간바둑]으로 옮겨 연재한 것인데 제가 스토리를 쓰고 당시 서울신문사에 다니던 김정택 화백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스토리는 1994년부터 5년 간 스포츠서울에 주간 연재했던 ‘정용진의 바둑수첩'을 토대로 재구성하거나 그때그때 바둑계의 이슈와 시의적절한 소재를 다뤘지만 이 방면의 경험이 없어 꽤나 고생했던 생각이 생생합니다. 다행이 김정택 화백의 그림이 노련하게 뒷받침해주어 꽤 인기를 끌 수 있었습니다.

전 바둑마니아들이 읽는 바둑전문지보다 일반 독자들이 많이 접하는 매체에  글을 쓰는 게 훨씬 어렵습니다. 되도록 바둑용어를 줄이고 바둑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용진의 바둑수첩'을 연재할 때 ‘인간 리트머스 시험지(?)'로 이용한 것이 제 아내였습니다. 초고를 바둑을 잘 모르는 아내에게 먼저 보여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그제야 신문사로 송고하였지요.

사실 이 수법은 당대(唐代)의 시인 백거이의 고사(古事)를 주워듣고 모방한 것입니다. 백거이는 시를 짓고 나서 가장 먼저 이웃집 노파에게 읽어주었다고 하는데 일자무식인 그 노파가 이해를 하면 발표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고쳐 썼다고 합니다. 그의 시가 평이(平易)한 시어를 쓰면서도 깊은 감명을 주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이왕 예전 얘기를 꺼냈으니 개운치 않은 기억입니다만 이 만화에 얽힌 숨은 일화 하나 더 끄집어내고 넘어가지요. 그때 [월간바둑]지의 자체 조사에서 이 만화의 인기는 늘 1등을 달렸습니다. 본시 만화란 장르가 내용이 조금 뒤떨어져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것에 힘입은 바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속된말로 시청률이 톱을 기록하고 있었음에도 어느날 비명횡사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윗선의 강압에 의해 중단되었다는 뜻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코미디지만, 아래 제 캐리커처가 문제의 발단이자 빌미였습니다. 만화 제목이 ‘정용진의 바둑수첩'이고 중간중간 해설 지문이 많이 들어가는 스토리라인이다 보니 만화가가 부득이 저를 내레이터를 넣어 컷을 처리했는데 이것이 저를 싫어하던 일부 인사들의 눈에 밟혔나 봅니다. 편집장이란 놈이 잡지를 개인 홍보지로 이용하고 있다는 게 중도하차의 이유였습니다. 구의원에라도 출마할 꿈을 갖고 있었다면 조금은 덜 억울했을 겁니다. 하긴 캐리커처를 보면 밥맛(?) 떨어지게 생기긴 했습니다. ^^;;

지금 다시 보아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작품을 골라 매주 한두 편씩 올릴 예정이지만 여러분이 보시기에도 ‘개인용 전단지' 냄새가 난다 싶다면 즉시 하차하겠습니다. 김정택 화백과 다시한번 콤비를 이뤄 후속 연재를 하고픈 마음도 있습니다만 그럴 능력과 여건이 주어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