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서울로 이사하였습니다. 도회지로의 유턴. 5년 전 한국기원을 그만두며 미련 없이 정리했던 도회지의 삶을 다시 종종걸음 치며 누비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시골인가 봅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천방지축 뛰어놀기만 하던 둘째 녀석의 전학 풍경이 눈물겹습니다. 공부하고는 담벼락을 쌓았던 녀석이 “시골아이들은 도시학교에 가면 ‘잽'도 안된다”, “꼴찌나 면하면 다행”이라는 친구들의 엄포에 공포를 느꼈음인지 며칠 교과서를 들여다본다 싶더니 전학을 이틀 앞두고 본 수학시험에서 난생 처음 100점을 맞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백조의 노래였던가요? ^^ 때를 놓치지 않고 담임선생님은 무지막지 공부만 시킨다는 도회학교로 떠나는 제자의 기를 살려주려 반 아이들이 다 듣도록 큰소리로 한마디 하십니다.
“이를 어쩌나! 우리학교가 서울대에 들어갈 인재를 한명 떠나보내네~.”

잘 가라 잘 있거라, 눈물을 찔끔거리며 악수와 포옹이 어우러진 신파조의 작별인사를 마치고 둘째 녀석이 엄마의 손을 잡고 교문을 나섭니다. 떠나는 친구를 먼발치로 바라보며 급우들이 교정에 선 채 손을 흔들며 외치는데 그 한마디가 또 가관입니다.
“영우야~! 우리 서울대에서 다시 만나자~!”


서울대는 아니지만 ^^ 바티즌 여러분과 다시 만났습니다.
조석으로 따뜻한 차 한 잔이 간절해지는 계절. 그리하여 이 시간 향 진한 커피를 한 잔 내리고 오래 사귄 친구를 대하듯 여러분과 잠시 제 이야기 한 자락을 열어 보일까 합니다. 같잖은 하소연일 수도 있고 시답잖은 수다일 수도 있으며 요점 잃은 독백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마-악 볼품없는 제 점방에 이렇듯 귀한 걸음주신 귀하를 맞았고 이전 제가 머물던 곳에서 엄동설한(嚴冬雪寒) 각중에 보따리를 싼 지 2년여 만에 다시 고정 칼럼란을 갖게 되었으니 한 회분쯤은 개인적인 요설(饒舌)을 늘어놓아도 용서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20년이 되었군요. 장고도 10년을 치면 제 소리를 낸다는데 하물며 20년이나 바둑밥을 먹고서도 제 청 하나 뽑아내지 못한 채 여즉 변성기에 머물고 있는 음치입니다. 이 모양이니 명색이 20년 동안이나 바둑글을 끄적거렸다는 놈이 단행본 한 권 내지 못한 딱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서당개 3년이면 풍월 정도는 읊는다 했습니다. 그간의 세월이 적지 않은 터수이고 보면 쓴 글도 그럭저럭되고 그 가운데 리바이벌하거나 리메이크해 다시 선보여도 크게 면박받지 않겠다 싶은 것도 더러 있는 듯싶어 이참에 하나씩 다듬어 올려볼까 합니다. 종이책은 글렀으니 e-book이라도 한권 편집한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이런 의중을 헤아리시어 혹여 재수록하는 글이 있다 하여 너무 핀잔을 놓지 마셨으면 합니다. ―.―;;

[정용진칼럼]은 크게 <新기사론> <바둑수첩> <만화> 세 꼭지로 나누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과욕을 부린 것일 테지만 여력이 닿으면 20년 동안 지켜봐왔던 바둑사의 현장을 인터넷시대에 걸맞은 포맷으로 새롭게 구성해보고 싶습니다. 이름하여 <멀티 관전기>. 여기에 자유 소재로 쓰는 <잡설>도 하나쯤 추가해 볼 참입니다. <新기사론>은 2007년 8월호부터 월간바둑에 먼저 연재를 시작한 것을 시차를 두고 다시 소개하는 형식이기는 하나 종이 잡지에서 항상 부딪히는 ‘지면 사정'을 온라인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므로 잡지 원고보다는 훨씬 폭넓은 내용이 담길 것입니다. 내력벽은 건들지 않되 내부 인테리어는 상당 부분 새롭게 구성한 리메이크 연재라 해도 무방합니다.

<바둑수첩>은 제가 그간 각종 매체에 썼던 바둑글은 물론 새롭게 쓰는 시론 등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만화>는 월간바둑 편집장 시절 연재했던 ‘정용진의 바둑수첩'을 모은 것입니다. 일단 예전 것을 하나씩 소개한 뒤 김정택 화백과 다시 조인하여 새 작품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대략 칼럼의 아우트라인을 설명드렸습니다만, 실은 제가 하고 싶은 프롤로그는 여기부터입니다. 사이버 세상에서 바티즌 여러분과 주로 바둑 이야기를 나눌 코너이니만큼 첫 운(韻)을 우리나라 인터넷바둑 실상에 대해서부터 떼고 싶기 때문입니다. 미리 밝혔지만 음치가 내는 요설일 수도 있다 하였습니다. 듣기에 따라 채신머리없이 징징대는 소리로만 들릴 수도 있으니 바쁘신 분은 여기까지만 읽으시길 권합니다.

외화내빈(外華內貧). 한국바둑계의 속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강정처럼 겉은 꿀과 물엿으로 발라 여전히 먹음직스러워 보이나 속은 비어 있는 신세랄까. 얼마전까지 열풍을 일으켰던 스타크래프트 게임만 해도 요즘 10~20대들은 쳐다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순하면서 재미있는 것들로 넘쳐나는 시대에 누가 골치 아프게 머리를 쓰는 전략게임에 매달리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새로운 애호가를 양산하지 못한 채 10년 전 주력 마니아층이 그대로 나이만 먹은 거죠. e-스포츠의 총아로 당당하게 등장했던 스타크래프트도 이럴진대 바둑을 생각하면 눈앞이 더 아득해집니다. 지금은 바둑 애호가의 주 연령대가 50대로 올라가버렸으니까요. 이 상태라면 완전히 실버게임으로 굳어질 것입니다. 일본의 공개해설장을 가득 메운 백발성성한 노인들 얘기를 할 때가 엊그제였는데 이제는 남의 집 후사를 걱정해줄 처지가 아닙니다. 그쪽은 그래도 유료 공개해설장도 열심히 찾고 인터넷바둑을 두더라도 유료로 즐기는 걸 당연시하는 풍토가 조성돼 있으니 우리보다 나은 편입니다. 우리 바둑을 바라보노라면 시대변화의 물살에 휩쓸려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종국에는 선술집에서 창을 하는 작부의 신세로까지 전락하고마는 서편제의 송화가 떠오릅니다. 판소리의 예를 들 것도 없습니다. 세계 챔피언이 되면 오색 꽃종이 뿌려지는 가운데 카퍼레이드를 펼쳤던 프로복싱, 천하장사에 오르면 어화모를 쓰고 꽃가마 타던 프로씨름의 영화가 불과 얼마 전까지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습니다. 우리 바둑도 이렇게 "환~장"하도록 좋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둑은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입니다. 배우기가 쉽지 않고(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실력이 빨리 늘지 않으며 그 묘미를 제대로 맛보려면 기력이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합니다. 음악 분야를 예로 들면 클래식과 비슷합니다. 대중음악이나 뮤지컬에 비해 클래식은 골치 아프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 공부가 필요한, 아는 만큼 보이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유구한 전통이나 시간을 요한다는 점도 바둑과 흡사합니다. 교향곡 한 곡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최소한 30분은 잡아야 합니다. 처음엔 고리타분하고 딱딱하며 장시간 온몸을 배배꼬게 하는 음악이지만 그 진미를 느끼는 순간부터 푹 빠지게 되는 것이 클래식입니다.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의 공통점이기는 하지만, 바둑이나 클래식이나 한번 빠지면 오래갑니다. 생명력이 길다는 것이지요. 진입장벽이 높다고는 하나 이는 일반론일 뿐 클래식은 입문단계에서 곧장 그 매력에 홀딱 빠지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곡에 대한 정보는 물론 악보를 읽을 줄 모르거나 악기 하나 다룰 줄 몰라도 음악을 감상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들어서 감흥을 느끼면 그게 최고의 감상입니다. 이런 면에서 바둑은 클래식보다 더 불행합니다. 바둑은 둘 줄 모르면 즐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리없는 진화, 인터넷바둑 이러한 클래식도 시대가 갈수록 변방으로 밀려나면서 대중화의 돌파구를 찾는 데 여간 절치부심하는 게 아닙니다. 클래식 본류에서 파생된 크로스오버니 세미클래식이니 하는 장르도 좀더 대중에게 쉽고 부드럽게 다가서기 위한 방편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아쉽게도 바둑은 이런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게 없습니다. 오목이나 9줄, 13줄 바둑을 바둑의 크로스오버로 보기엔 무리겠지요. 저는 이런 시각에서 인터넷바둑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기사를 보니 뮤지컬이 국내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 문화 분야라고 합니다. 올해 추정한 뮤지컬 매출액은 1500억 원. 4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커졌답니다. 오페라에서 파생된 장르가 뮤지컬과 발레라 할 때, 클래식한 오페라에서 진화한 뮤지컬의 대중성을 부러운 마음으로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물론 오페라와 뮤지컬의 혈연을 이제는 사촌지간으로 묶을 수 없을 만큼 각자 독립된 장르로 자리했지만, 뮤지컬과 같이, 클래식한 바둑의 유전자를 복제한 진화물은 나올 수 없는 것일까, 하는 답답한 마음에 주절거려 보는 견강부회(牽强附會)입니다. 이러한 심정에서 더욱 인터넷바둑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인터넷바둑은 기존 오프라인 바둑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접근의 용이성, 장소의 비제약성, 실시간 쌍방향성 등의 장점을 내세워 새로운 문화 유형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초기 진입단계입니다만 앞으로 어떤 모델로 진화할지 알 수 없습니다. 단점도 적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양길에 접어든 클래식한 바둑을 구원할 수 있는 희망을 인터넷바둑에서 찾고 싶습니다. 크로스오버, 세미클래식한 바둑의 창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바둑의 진입장벽이 낮아지지 않는 한 인터넷바둑의 진입장벽 또한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장점은 일단 보급(접근)적인 측면을 크게 도울 것입니다. 젊은 세대들에게 낯섦(거부감)을 상당히 해소시켜 줄 것입니다(바둑을 둘 줄 몰라도 이창호, 이세돌 팬클럽에 가입해 열광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에게서 그 일단을 봅니다). 생각이 바뀌면 문화가 바뀌며 문화가 바뀌면 본질도 변하는 것입니다. 게임의 룰도 아직은 속기화 측면으로만 빠른 적응을 보이고 있을 따름이지만 언제 어떤 아이디어가 나와 어떤 식으로 진화할지 단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둑에 관한 한 인터넷바둑은 아직 초기 유전자 형성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바둑은 배우는 데 진입장벽이 높아 애호가를 확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터넷바둑의 확산과 발전이 미래 바둑의 희망이라 주장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넷바둑의 사업적인 측면은 어떨까요? 이쯤에서 인터넷바둑업체의 고충을 잠시 토로해야겠습니다. 게임으로 만족하기에는 너무 특별한 바둑 인터넷바둑 개발의 진입장벽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너도나도 바둑게임을 만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만만히 보고 뛰어들었다가 큰코다치고 꼬리를 내리는 곳이 인터넷바둑업계입니다. 우선 게임으로서의 완성도의 문제입니다. 인공지능 분야가 크게 발전하지 않는 한 바둑의 룰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없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여러분께서 한번쯤은 시달렸음직한 계가거부가 그것이지요. 바둑을 다 두었어도 상대가 계가에 동의하지 않으면 게임을 원활하게 마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고스톱, 포커 같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보드게임과 달리 유일하게 운영자를 두어야하는 게 바둑입니다. 하루 수만 명이 접속하는 사이트라면 운영팀을 꾸리는 비용이 장난이 아닙니다. 또 한가지, 보드게임 가운데 사용자들의 콘텐츠에 대한 요구가 바둑만큼 강한 곳은 없습니다. 사이버오로의 홈페이지는 곧 바둑웹진입니다. 일간지 급은 못 되지만 웬만한 주간지 규모의 취재팀을 운용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게임(대국실)적인 요소 외에 콘텐츠에 대한 기대치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 인터넷바둑이지요. 고스톱 포커에는 콘텐츠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바둑게임에는 다양하고 신속한 콘텐츠를 요구하는 까닭은? 고스톱 포커와 달리 유독 바둑게임에 다양하고 유익한 콘텐츠가 절실히 요구되는 까닭은 바둑이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인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커뮤니티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바둑은 게임의 속성을 띠고 있으면서도 그 어떤 게임에서도 볼 수 없는 강한 문화적 아우라(Aura)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존력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하나 경쟁력에서는 단점이기도 합니다. 게임과 문화(혹은 정신) 양면을 다 신경써야 하기에 그만큼 투자 부담이 큽니다. 지금으로선 시장 잠재성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 바둑사이트들의 수익구조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지경입니다. 게임포털업체들이 고스톱 단 한 종목만으로 하루 억대의 매출을 올릴 때 인터넷바둑업체들은 한 달 내내 발버둥쳐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대다수입니다. 인터넷바둑 선두주자였던 네오스톤조차 순수 바둑사이트로서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현재 그나마 현상유지 내지는 약간의 흑자를 보는 데라고는 대형 게임포털업체에서 운영하는 바둑사이트이거나 거대 자본을 내세운 한두 곳 정도지요. 바둑으로 번 돈을 바둑에 재투자하지 않는다면? 국내 바둑사이트를 크게 나누면 두 가지 유형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바둑게임을 단일 품목으로 한 ‘순수(Only) 바둑사이트'이고 또 하나는 게임포털업체에서 수많은 게임의 하나로 갖추어 놓은 바둑사이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순수'라는 용어로 분류하였을 뿐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양쪽 다 이윤을 내고자 만든 사이트지요. 다만 이윤창출이라는 목표가 같다 하여도 태생적으로 바둑 하나에 목을 매달고 태어난 바둑 전용사이트와 ‘여러 게임 중의 하나'로 운용되는 바둑사이트 사이에는 동종으로 섞을 수 없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가령 게임포털사이트에서의 바둑게임의 용도는 메인이라기보다 구색 갖추기의 성격이 짙습니다. 포커나 고스톱을 치러온 사용자가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바둑 한 판을 찾을 때 바둑게임이 없다면 경쟁 게임포털로 갈 테니까 사용자를 붙들어두기 위해서라도 애호가가 만만치 않은 바둑을 개발해 놓아야 합니다. 이른바 계륵(鷄肋) 같은 것이지요. 거꾸로 바둑게임으로 유입한 사용자가 바둑 자체에서는 지갑을 열지 않더라도 여타 게임에서 돈을 쓰게 함으로써 바둑의 적자폭을 메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에 견주면 바둑이 ‘계륵'이 아닌 ‘몸통'일 수밖에 없고 ‘이것 아니면 저것'에서라도 본전을 뽑을 대체재를 갖고 있지 못한 순수 바둑사이트는 불리합니다. 자금과 규모 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순수 바둑사이트는 죽으나 사나 바둑을 주력군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더군다나 한국기원이 대주주인 사이버오로의 경우는 바둑을 등한시할 수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태생적으로, 구조적으로 망하지 않는 한 바둑에 올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구색용 바둑사이트는 입장이 다릅니다. 이른바 ‘삐끼 효과'가 별로라거나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면 투자도 없습니다. 이것이 기업의 논리지요. 바둑문화에 대한 굴레를 쓰지 않았기에 아니다 싶으면 언제나 판을 접을 수 있는 게 다른 점입니다. 결코 막연한 추정이나 경쟁업체의 발목이나 잡으려는 흑색선전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본논리를 몸소 뼈저리게 겪었기에 하는 말입니다. 20년간 바둑 콘텐츠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해온 사람으로서 그 누구보다 바둑관련 업체가 호황을 누리기를 갈망합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바둑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는 곳이라면 하나같이 고맙고 잘 되기를 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물만 빨아먹기 위한 단기투자여서는 곤란합니다. 바둑으로 얻은 수익은 바둑에 재투자되어야 바둑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한번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부자 사이트들일수록 정작 바둑문화에 대한 투자에는 인색합니다. 그저 생색내기에 그치거나 아예 콘텐츠랄 것도 없는 곳도 있지요. 이유는 뻔합니다. 수지가 맞지 않거나 투자 대비 효과가 적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이트의 경우 실제 정회원(유료가입) 매출보다 대국실에서 올리는 베팅 아이템 수입이 훨씬 높다보니 콘텐츠 무용론까지 대두되었고 지금은 황금 거위 배를 째듯 베팅대회에만 치중하는 느낌입니다. 안타까운 노릇입니다만 수익구조만 놓고 볼 때 인터넷사이트의 명맥을 유지시켜 주는 효자 아이템이 베팅이다 보니 그토록 ‘안티, 클린'을 목청껏 외쳐도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직 이만한 수익모델을 찾아내지 못한 것은 저희의 부끄러움입니다. ‘도찐개찐'이라고,  사이버오로도 이에 자유롭지 못함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바둑문화 콘텐츠를 가벼이 여기게 된 근본적인 요인은 사이트의 탄생 배경이 다르고 따라서 지향하는 바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일부 베팅바둑의 부작용에 대해 개탄하면서도 많은 애호가가 이것도 바둑문화의 한 단면으로 이해하고 수용해주시고 있는 것은 인터넷바둑계의 열악한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한 수입이 바둑문화를 일굴 불쏘시개로 사용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터넷바둑이야말로 머지않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콘텐츠가 사라지고 대국만 존재하는 인터넷바둑은 한갓 게임으로 구실할 뿐입니다. 시냇물이 마르면 반드시 강바닥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공짜 서비스와 커피 한잔 값 저는 인터넷바둑에서 희망을 보고 무한한 기대를 가져봅니다. 이러한 욕심이 일종의 ‘애국심과도 같은 의무감'을 인터넷바둑사이트에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울러 바티즌 여러분께도 호소하고 싶습니다. 때론 바둑애호가들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특히 ‘대가 지불'에 인색하고 ‘공짜'만 바라는 대목에서는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마음이 얼마나 부질없는 하소연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밖에 안되는 돈일지라도 고객은 철저하게 ‘자기 필요'에 따라 선택할 뿐이니까요. 지금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점방(사이트) 점원으로서의 시각일 뿐 고객에게 동정심이나 의무감 같은 것은 두 번째 고려 요소일 것입니다. 실익을 따지는 고객의 냉엄한 잣대를 원망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인터넷바둑'이라는 바다에서 물장구치고 헤엄치고 기우들과 수담을 나누며 다양한 바둑정보를 보고 강좌를 들으며 오래오래 바둑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으시다면, 이것이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도와주는 것이라면, 샘이 마르지 않도록 그리하여 시내와 강물이 마르지 않도록 바둑정신과 바둑문화를 지키고 일굴 공동책임이 있습니다. 단지 바둑을 사랑한 그 하나의 원죄(?)만으로도.     * 거리에서 기원(棋院) 간판을 찾기가 모래밭에서 바늘찾기보다 힘들어졌습니다. 이제 제가 아는 기우들은 다들 인터넷바둑을 둡니다. 설마하니 모든 바둑사이트마저 다 사라질 날이 오겠습니까만 기원처럼 수지가 맞지 않으면 온라인기원도 손을 털 수밖에 없겠지요. 그 옛날 기원마다 비치되어 있던 바둑잡지도 가을 낙엽처럼 뚝뚝 부수가 줄어들어 이제는 그 존폐를 걱정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한 단어로 쉽게 정리해버립니다. 지금 사이버오로는 대부분의 콘텐츠를 무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유료로 전환한다 한들 그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어디서나 쉽게, 공짜로 볼 수 있는 정보”라며 무차별성과 수준 낮은 퀄리티로는 고객의 지갑을 절대 열 수 없다고 호되게 질타합니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이 쉬워 보이는 콘텐츠, 고작 이 정도의 수준밖에 안되는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데도 적지 않은 인력, 지금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돈이 들어갑니다. 흑자를 내기 이전에는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의 구조로 돌리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힘에 부칠 때는 우리도 다른 사이트들처럼 놓아버릴까 하는 유혹에 잠시 젖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개똥 같은 수준이나마 콘텐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래도 악착 같이 끈을 놓지 않은 바둑사이트가 끝까지 하나쯤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여러분께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대한민국 인터넷바둑을 대표할 사이버오로 같은 바둑사이트 하나쯤 키워주시는 것도 바둑애호가로서 바둑발전에 한 삽 뜨는 일 아니겠습니까. ^^;; 당장은 아닙니다만 조만간 연재소설이나 칼럼 등 일부 콘텐츠를 정회원 서비스로 돌릴 예정입니다(미리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먼저 유료 가치가 있든 없든 제 칼럼부터 단행할 참입니다. 수천 수만 건의 조회수보다는 수십 건의 정회원 조회수가 사이버오로를 유지하고 더 나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동력이 됩니다. 따라서 단 한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더라도 지금은 단 한 건의 정회원 결제가 더 간절한 때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 바둑문화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본 칼럼은 진정 바둑발전을 걱정하고 바둑문화에 애정을 가진 바티즌들이 무시로 걸음하는 사랑방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