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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기사론/ 2008 신예 중의 신예, 김기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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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기사론/ 2008 신예 중의 신예, 김기용 (2)
2009-01-22     프린트스크랩
▲ 사진/ 월간바둑 이주배

마라톤은 장거리 경주이다. 42.195㎞를 달릴 수 있는 지구력과 강한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도 단거리 선수에 못지않은 순발력도 요구되는 종목이다. 바둑이 그렇다.

‘마라토너스 하이(marathoner's high)'라는 말이 있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한계상황을 겪게 되는 고비가 있다고 한다. 너무 고통스러워 당장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런 순간. 그런데 이 고비를 넘기면 다시 자신감이 생겨 계속 달릴 수 있다는 이론이다.

신인왕전은 프로기사에게 바로 이 마라토너스 하이와 같은 지점이다. 도약하느냐, 주저앉느냐. 프로바둑의 승부세계는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이지만 그 성패는 입단과 이후 신예시절의 5년여 기간에서 대부분 판가름 난다. 5년 내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그렇고 그런 기사로 떠밀려 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프로바둑 인생에서 첫번째 마주치는 고비는 입단 관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비표를 한 장 나눠받은 것에 불과하다. 정작 심장이 터질 듯한 숨가쁜 경쟁은 이때부터이다. 특히 정상급 기량을 갖춘 신예들이 바글거리는 요즘, 메이저 기전을 석권하는 것보다 신예기전에서 한번 우승하기가 훨씬 힘들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무명의 신인왕을 주목하는 이유

지난해 봄 비씨카드배 신인왕에 오르기 직전까지만 해도 “김기용(金起用)이 누군지 아세요?”라고 물으면 웬만한 바둑마니아도 즉각 “프로4단 김기용”을 답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신인왕이 되며 유명세를 약간 타긴 했으나 여전히 모르는 바둑팬이 더 많을 것이다. 이는 바둑밥을 먹는 필자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고백하거니와-.

비씨카드배 신인왕을 우승한 직후 한국기원 기사실에서 그를 인터뷰하기로 하고 프로필을 뒤져보았을 때, 오마나! 2004년 5월 14일 입단한 입단 5년차 기사라는 사실에 저으기 놀란 적이 있다. 이름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보니 막연히 입단한 지 얼마 안된 기사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탓이다.

신예기전을 우승한 기사 중에 원성진 9단(2006년 비씨카드배, 입단 10년차에 우승)이나 이세돌 9단(입단 7년차, 2001년 오스람코리아배), 박영훈 9단(입단 7년차, 2005년 비씨카드배), 조한승 9단(입단 7년차, 2001년 비씨카드배) 같이 ‘늦깎이 신인왕' 소리를 들은 기사가 있긴 하나 이들은 신인왕 타이틀 접수가 다소 늦었을 뿐 이 이전에 국내외 기전에서 이미 괄목할만한 활약을 펼친 바 있는 재목들이었다. 입단 5년째에 신인왕에 오른 목진석 9단(1998년 비씨카드배), 안조영 9단(1997년 SK가스배), 박정상 9단(2006년 오스람코리아배) 등도 마찬가지다.

김기용 4단도 활약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입단 2년째인 2005년 10기 LG배 본선무대(32강)에 얼굴을 내밀었고 2007년 12회 삼성화재배 본선1회전에서 조치훈 9단을 꺾고 당당히 16강에 오른 바 있다.

 

하지만 앞에 열거한 선배 신인왕들에 비하면 강한 인상을 심어줄만한 것이 못된다. 이것이 지금껏 그를 무명기사로 여기게 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2008신인왕 김기용을 주목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가 걸어온 바둑인생도 그렇고 그의 바둑(기풍)도 그렇고, 그는 늦게 발동이 걸리는 '슬로우 스타터(Slow Starter)'라는 사실이다. 킥 앤 러시(Kick & Rush)의 '패스트 스타터(Fast Starter)'가 아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 형의 기재라는 얘기다.

재주가 뛰어나도 때를 늦게 만나 뒤늦게 꽃을 피우는 이가 있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나중에 빛을 보는 이가 있다. 김기용의 재주는 주머니 속의 송곳 같지는 않으나 부단한 담금질로 점차 단단해져 가는 그런 류이다.

일류기사들이 정상에 이르는 단계를 보면-이창호 9단같이 굴곡 없이 가파른 사선(斜線)으로 상승한 경우는 열외로 치고-입단 직후 반짝 치고 올라갔다가 다시 일정 기간 뜸을 들이다 정상궤도에 이르는 N자 그래프 유형이 있는가 하면 곧장 주목을 끌진 못했더라도 천천히 조금씩 상승곡선을 그리는 계단형 유형이 있다. 김기용 4단은 후자에 속한다.

대기만성의 슬로우 스타터

김기용의 별명은 ‘영감'이다. 스물두 살 새파란 젊은이에게 ‘영감'이라니, 본인이 마음에 들어할 리가 없다. 하지만 미안한 얘기지만, 보면 볼수록 누가 지었는지 참으로 절묘한 별명이란 생각이 든다.

그의 행동거지는 결코 민첩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창호처럼 느릿느릿 팔자걸음을 걷는다거나 둔탁한 이미지가 아니다. 일단 176㎝의 키에 57kg의 호리호리한 몸매는 굼떠 보이는 것과는 매칭이 잘 안된다. 그렇다. 그는 단지 조용할 뿐이다. 있는 듯 없는 듯 그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다 보니 영감처럼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말수가 없다. 그렇다고 ‘침묵의 사나이' 김동엽 9단처럼 숫제 입을 다물고 있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다.

인터뷰하기 전 누군가 “성격이 영감탱이라 취재하기 꽤나 힘들 것”이라고 지레 겁을 주기에 눌변인 줄 여겨 단단히 전열을 다잡고 만났더니 청산유수는 아니더라도 따박따박한 목성으로 논리정연한 답을 잘만 내놓는 통에 삼베바지에 방귀 새는 양 긴장이 풀어졌다. 먼저 말문을 열지는 않되 질문에 “예, 아니오”만 되풀이하는 단답형 인터뷰이(interviewee)가 아니었다. 그저 과묵할 뿐, 이러한 묵직함이 그를 더욱 신중한 늙은이로 보이게 한 것이다.

바둑도 영락없이 그의 성격을 따랐다. 아니 반대로 성격이 바둑을 따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는 영감처럼 바둑을 둔다는 것이다. 일단 초반은 설렁설렁 둔다. 어려운 대목이 나와도 별 고민 없이 스윽슥 쉬운 길을 택한다. 새롭고 색다른 길은 가급적 사절이다. 남들이 답사한 검증된 길이 있다면 설령 그것의 득실이 분명치 않다 해도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이래도 한판 저래도 한판이라는 듯 마치 사전수전 다 겪은 여든 노인네의 처신 같아 보인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가르친 스승 허장회 9단조차 혀를 내두른 포커페이스다.

“어릴 때부터 표정이 없었어요. 무표정의 본보기가 바로 기용이라 할 만큼 희노애락의 표정이 없었지요. 바둑을 둘 때도 분명 꿍심은 없지 않은 듯한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요. 물어봐도 대답도 잘 안하고….”

김기용은 바둑을 좀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처음 배운 건 7세(초등1) 때였으나 프로가 되겠다며 작심하고 본격적으로 파고든 건 초등학교 5학년 2학기부터였다. 아버지 김형태(57) 씨가 직업군인이다 보니 이사가 잦았다. 그때는 안동에 살 때였는데 옆집에 사는 3학년 형을 따라 바둑학원에 갔다가 배우게 되었다. 3급을 두는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일부러 가르친 것은 아니고 학원등록도 하지 않은 녀석이 스스로 옆집 형을 졸졸 따라갔다가 재미있다며 배운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배우다 대전 근처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잠시 쉬다가 3학년 때쯤 대전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때 많이 가르쳐 주었던 안승창 선생은 안영길 6단의 삼촌이었다. 이때 빨리 늘어 1급으로 통했다. 4학년(1995년) 때 오리온배 어린이바둑대회 최강부에 나가 준우승도 하였다. 결승에서 겨룬 상대가 동갑나기 송태곤 9단. 김기용은 어떻게 하다보니 최강부 결승에까지 용케 오른 자신에 견주면 일찍부터 프로를 지망한 송태곤의 실력은 견고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회고한다.

김기용의 어머니 황순희(54) 씨는 이때의 1년을 가장 안타까워한다. 프로기사 자식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했을 고민이겠지만 혹 프로지망을 꿈꾸는 아이의 부모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오리온배 준우승이 계기가 된 건 사실입니다. 지방 아이가 전국대회 준우승을 하자 주위에서 기재가 있다며 얼른 서울로 보내라고 조언했지만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태권도장 보내듯이 그렇게 보냈을 때이고 자주 이사를 다니다 보니 배우다 말다 하기도 했고…. 특별히 프로로 키우겠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지요. 지방에 사니 여건도 어려웠고요…. 어린 자식을 떠나보내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물쭈물 결정을 하지

어릴 적(94년) 바둑대회에 나갔을 때의 모습.

못한 그 1년이 무척 아쉽습니다. 그때 바로 했어야 했는데…. 프로기사 생활에 대해 잘 몰랐고 기용이가 공부도 잘했기에 바둑으로 진로를 잡는 건 기회를 줄이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피아노에 소질도 있었고 수학도 뛰어났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프로기사 엄마들을 만나보니 바둑 잘두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그랬더라고요. 우리 아이만 그런 줄 알았더니…. (웃음)”
독기가 부족하다
서울로 올라온 게 5학년 2학기. 허장회도장에 와보니 자기보다 나이 어린 애들이 많은 것에 놀랐다. 또래에 비하면 한 박자 늦은 시작이었다. 생일(2월 24일)이 이른 1986년생이라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갔기 덕에 1985년생 소띠들이 친구고 1986년생들에겐 형으로 불렸다. 소띠라면 최철한(97년 입단)-원성진(98년 입단)-박영훈(99년 입단) ‘송아지 삼총사'와 동년배라는 얘기인데, 김기용이 바둑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 이들은 이미 앞서거니 뒤서거니 입단하고 있을 때이니 얼마나 늦었는지 알 수 있다. 86년생 송태곤도 98년 박영훈과 함께 입단했다. 2004년 김기용이 가까스로 프로 면장을 받을 때 이들은 이미 타이틀을 몇 개씩 가지고 있었다.

허장회도장에서 동문수학한 85년생 김환수 2단과 김동희 2단은 김기용과 함께 삼총사로 불렸다. 그런데 김기용은 이들보다도 입단이 1년 늦다. 셋은 모두 연구생 1년 연장기간에 입단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김기용은 바둑명문 허장회도장 출신이다. 스승 허장회 9단은 김기용이 바둑을 쉽게 잘 두는 데 비해 세밀한 부분, 쥐어짜고 이런 부분, 독기가 부족해 입단이 늦어졌다고 말한다.

(허장회 9단) “연구생이 1조가 적체된 지금이야 고2, 고3 입단은 흔한 일이지만 그때는 늦은 편이었지요. 3총사 중 성적은 기용이가 제일 위였는데 입단은 제일 약한 동희-환수-기용 순으로 하더군요. 입단이 늦어 고민과 갈등이 많았지만 희한하게도 그다지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실력을 믿었거든요.”

쉽게 잘 두는 데 비해 세밀한 부분, 쥐어짜고 이런 부분이 부족해 입단이 늦어졌다고 스승은 분석했다. 조훈현이나 이세돌은 천재다. 그것도 고압전류가 파바박 흐르고 섬광이 번쩍번쩍 튀는 천재형이다. 일필휘지 스타일로 작곡한 모차르트 같은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유창혁도 천재형임에 분명하나 뭔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지 못한 채 이들을 넘어서지 못하고 주저앉은 느낌이다.

이들에 비하면 조치훈의 바둑은 ‘쥐어짜는 스타일'이다. 진돗개처럼 물고 늘어지고 한 방울의 영감까지 쥐어짜는 치열함과 열정, 뚝심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박영훈이나 박정상이 조치훈 스타일이다. 악상을 다듬고 또 다듬고 마흔 살이 되어서야 교향곡 1번을 내놓은 브람스 타입에 가깝다.

연구생시절 박영훈과 입단을 다투던 박정상은 한 살 적은 박영훈에게 입단을 빼앗기자 그 길로 삭발을 해버렸다. 시퍼렇게 날이 선 독기와 오기를 가슴에 품고 대들었기에 박정상은 2007년 다크호스에조차 거론되지 않았지만 19회 후지쯔배를 석권할 수 있었다. 김기용에게 절실한 대목이다. 스승 허장회 9단의 주문은 계속된다.

“기용이는 속기파죠. 빨리 둔다는 것은 감각이 날카롭고 수를 빨리 본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승부에선 이것만으론 안됩니다. 조치훈이나 박영훈처럼 물고 늘어지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박정상이 입단은 조금 늦었어도 독하게 공부하고 독하게 바둑을 두었기에 세계대회를 우승할 수 있었지요. 기량이나 기재가 뛰어나니 어쩌니 해도 가만히 보면 끝에 가서 이기는 쪽은 독기가 뚝뚝 묻어나는 정상이나 영훈이지요.

기용이는 기재와 기량이 뛰어난 데 비해 독기가 부족한 게 아쉬웠어요. 쪼는 스타일이 아니죠. 이 점은 함께 공부했던 박정상이와 곧잘 비교되었지요. 바둑이 유불리를 떠나 발톱을 세울 때는 세워야하고, 방패를 버려야할 때는 버리고 창을 쥐어야 할 때가 있죠. 무른 게 흠이었는데 프로가 된 뒤 경험이 쌓이며 눈이 뜨였는지 많이 나아졌더군요. 이런 점이 보완되면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를 겁니다.”



[장면1] 제18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결승1국
김승재 초단
김기용 4단

<2008. 3. 10, 169수 끝, 흑 불계승>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배석이다. 2006년 12월 벌어진 11회 삼성화재배 준결승1국 이창호 9단(백)과 백홍석 5단(당시)이 둔 바둑과 40수까지 똑같은 포석이 재현되었다. 백이 이긴 바둑이므로 흑으로선 다른 길을 생각해봄직한데 김기용 4단은 굳이 나쁠 게 없다 생각했는지 거침없이 두어나갔다. 이처럼 김기용은 굳이 재주를 부리거나 화려한 수를 찾지 않는다. 나쁘지 않다면 굳이 변화를 구하지도 않는다.

흑▲로 밀었을 때 백이 1로 모자를 씌워 삭감에 나서자 흑4, 6, 16으로 우변을 굳힌다. 골치 아프게 둘 게 뭐 있느냐는 듯 일단 착점 하나만큼은 시원시원하다. 여기까지는 흑의 실리가 돋보인다.


[장면2]

[장면2]는 이어지는 실전. 백1에 흑2는 잡겠다는 필살기다. 백도 곧장 움직이는 게 여의치 않자 바깥쪽(백3)에서 동태를 살폈고 흑4의 급소도 뛰어든 백 한점의 준동을 묶으려는 수다. 문제는 백5 때 흑6으로 슬며시 물러선 수. 왜 [1도] 흑2로 강력하게 대처하지 않았는지. 이것은 백△가 준동할 여지도 확실히 없애고 있다.


[1도]

실전(장면2) 흑6의 물러터진 한수 탓에 이하 백19까지, 흑은 이리저리 당하고 좌변은 좌변대로 세력을 살려주고 말았다. 졸지에 가시밭길로 접어들었다. 김기용의 약점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퇴출후보에서 신인왕까지

김기용은 2004년 일반인입단대회를 통해 입단했다. 만 18세를 넘겨 연구생 1년 연장에 돌입한 처지였지만 이미 내신입단을 예약한 상태(2위와 40점의 차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출전한 입단대회였고 마침내 200번째 프로기사로 자리할 수 있었다. 열 번 넘게 도전한 끝에 맛보는 기쁨이라 상당히 감격스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했다고 한다.

-연구생 내신 1위라 당연히 입단할 사람이 입단했다는 반응이었지만 초반 2패를 당해 위험한 순간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결국 진시영에 이어 차석으로 입단했는데 큰승부에 의외로 긴장을 많이 하고 부담을 많이 느끼는 타입인가 봅니다. 입단할 무렵 또래인 송아지 3총사는 벌써 세계무대를 누비는 활약상을 보이고 있었지요. 자극이 되진 않았나요?

“허도장에서 선후배와 어울리면서부터 많이 나아졌지만 어릴 땐 웃지도 않고 무척 내성적이었어요. 누구와 치고받고 싸워본 적도 없습니다. 긴장과 부담을 많이 느꼈던 것은 이런 성격 탓이었을 겁니다. 송아지 3총사는 같은 또래이기는 해도 이미 한참 선배격이고 당장 입단할 수 있을지 못할지 내 코가 석 자인 때라 의식할 여가가 없었습니다.”

김기용은 입단 이듬해인 2005년 3월, 프로데뷔 8개월 만에 10회 LG배 본선에 진출했다. 첫 본선 코를 곧장 세계대회로 뚫어버린 것이다. 예선2회전에서 당시 잘 나가던 ‘작은 이창호' ‘노인'이란 별명을 가진 중국의 펑첸(彭筌) 7단을 날려 이목을 끌기도 했으나 이뿐, 이후 지면에 이름을 올릴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05년에 34승 16패를 거두며 한해에 두 번 승단(3월 2단, 12월 3단)하기도 하였으나 2006년에는 신예기전인 비씨카드배 8강에 오른 것이 고작이었다. 성적도 23승 25패로 패점이 더 많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기용을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2007년에 들어서며 일단 국내 최대기전인 강원랜드배 명인전 본선리그에 당당히 진출했다. 그리고 2007한국바둑리그에 광주Kixx의 6지명으로 선발되어 6승 5패를 거두었다. 3회 원익배 십단전 본선에도 올랐다. 그러고선 12회 삼성화재배 본선에 명함을 내밀면서 클라이맥스. 삼성화재배 통합예선4회전에서 중국이 내세우고 있는 차세대 주자 저우루이양(周睿羊) 5단에게 호된 맛을 보여주었다. 저우루이양은 2006년(천원전)과 2007년(명인전) 중국의 일인자 구리(古力) 9단과 벌써부터 타이틀을 다투고 있는 17세 소년기사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김기용이란 이름 석자에 관심을 보인 계기는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열린 본선1회전에서 조치훈 9단을 꺾고 16강에 오른 일일 것이다. 개막식 대진추첨에서 김기용은 조치훈을 상대로 지명했다. “어릴 때부터 존경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고 조치훈 9단도 “그게 사실이라면 그 표시로 내일 바둑은 져줘야 한다”고 응수해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김기용은 프로입단 뒤 가장 기뻤던 판으로 조치훈전을 꼽으면서도 “거의 졌던 바둑이었는데 조사범님께서 초읽기에 몰려 실수하시는 바람에 이겼던 판”이라며 부끄러워했다. 쫄지(?) 않았느냐는 짓궂은 질문에 “제한시간도 짧아졌고 전에 보니 계속 신예들에게도 지는 모습을 보여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두면 둘수록 뭔가 압박감을 느끼고 내 마음대로 안되고 끌려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김기용은 2007년 12회 삼성화재배 본선1회전에서 조치훈 9단을 꺾고 16강에 오르면서 세인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2007년 42승 28패. 입단 이래 최고 성적이다. 랭킹도 22위까지 올라갔다. 이 상승세를 타고 2008년 3월에는 김승재 초단(당시)을 2-0으로 제압하고 18기 비씨카드배를 석권하며 신인왕 자리도 차지했다. 신예들끼리 다투는 제한기전이기는 하지만 첫 우승이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무명이나 다름없던 승부사가 지난해 화산 폭발하듯 용솟음치며 주목받는 검투사로 등장했다. 처음부터 화려한 조명과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기대주가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한 아웃사이더의 진주(進駐)이기에 그의 동선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승부세계라는 무대에는 각본이 없다. 각본 없는 무대에 주역과 조연이 따로 정해져 있을 리 없다. 이기는 자가 주연이요 지는 자 조연일 뿐이다.  

모든 것이 늦은 김기용이다. 네 살 어린 강동윤(2002년 입단)이나 김지석(2003년 입단)보다 늦었지만 이제 입단 6년차면 엔진을 힘차게 가속해야할 시기다. 서봉수 9단은 젊은 시절 공책에 “이겨야한다”는 문장을 빼곡히 쓰며 전의를 불태웠다고 한다. 주변에서 독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한다. 입단하기까지도 그렇고 입단 이후도 관심을 끌만한 성적을 못냈다. 이를 ‘독기'와 연관 지어 풀이하는 사람이 많은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저는 기세를 타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독하지 못하다는 말도 인정합니다. 자라면서 남하고 싸워본 적도 없지요. 반상 승부의 속성 자체가 치고받고 싸우는 것일진대 뭔가 지독스런 독기, 근성 같은 게 있어야 하는 데 그런 게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솔직히 입단하고 나서 처음엔 많이 어려웠어요. 프로의 벽이랄까. 연구생들 간의 경쟁이 아무리 치열하다 해도 아무래도 실력 차가 조금은 있거든요, 그런데 프로들은 그런 게 거의 없어요. 누구든 한칼이 있어 유명하지 않은 상대라 할지라도 힘들었습니다. 설령 입단 초기에 반짝 떴다 하더라도 기세 같은 걸 잘 못 타는 스타일이라 승승장구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신인왕이 목표가 아니다

사실 입단 이듬해 세계기전인 LG배 본선에 불쑥 얼굴을 내밀었고 기세를 탔다면 한상훈처럼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었다. 부싯돌이 불을 일으키고 못 일으키는 건 찰나의 순간 아닌가. 입단 이후의 행적에 대해 어머니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착하고 순한 아이이긴 해도 이기겠다는 욕심은 있지요. 남들이 말하는 독기는 몰라도 고집은 대단하답니다. (웃음) 아주 감성적인 아이였습니다. 말을 한창 배울 3~4세 때 ‘엄마 별이 추워하는 거 같아'라고 말해 어머, 얘가 시인이 되려나 보다 생각했지요. 입단한 지 1년도 안돼 LG배 본선에 나갔고 승단도 바로 했지요. 입단 직후 성적은 좋았습니다. 다만 그 뒤에 안 좋아져 군입대까지 고려할 정도였지요. 제가 보기에도 공부를 안하고 풀어져 있었어요. 1년 정도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더니 2006년 여름쯤 다시 파고들기 시작하더군요.”

공부의 고삐를 잠시 늦추었다는 얘기다. 절친한 허영호 6단에게 김기용 바둑의 장단점을 물어보았다. 허영호는 같은 86년생이나 학교 끗발(?)에서 한 학년 밀려 김기용을 ‘형'으로 호칭하는 친구다. 그러나 입단 끗발은 무려 세 해나 빠른 선배다.

“실수해도 절대 당황하지 않는 게 강점입니다. 보통은 얼굴에 보이거든요. 그러면서 상대의 실수를 캐치하는 감이 탁월하지요. 냉정 침착하게 자기 카드(표정)는 절대 안 보여주고 상대의 카드를 속속들이 읽는 독심술이 엉큼할 정도지요. 속기파입니다. 처음엔 무지 쉽게 빨리 둡니다. 아는 길을 택하니 자연 처음엔 형세가 빡빡하지요. 그러나 뒤로 갈수록 힘을 냅니다. 중반 수읽기가 빠릅니다. 어려운 장면을 만나도 마치 콜럼부스가 달걀 깨는 식으로 알기 쉽게 둡니다. 수읽기가 빠르다는 것은 핵심을 잡아내는 감각이 좋다는 거지요.”

-후반에 힘을 내는 스타일이라면 두터운 바둑을 운영한다는 뜻인가?

“꼭 두터워야만 후반이 강한 건 아닙니다. 쉽게 둔다는 건 엷을 수도 있지요. 두텁다기보다도 후반 노림이 있는 바둑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될 겁니다. 노림은 수읽기가 뒷받침되어야겠지요.”

-종반에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라면 이창호 9단이 대표적인데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이창호 9단의 별명도 ‘애늙은이' 아니었습니까. 둘 다 영감, 노인 같은 노회한 바둑이란 얘기인데….

“이창호 사범님은 후반 정교함과 계산력으로 바둑을 뒤엎는 역전형이죠. 따라서 당장 바둑이 나빠도 나중 기회를 노리며 참습니다. 기용이 형 또한 장기전에 능한 바둑임에 분명하나 형세가 나쁘면 치고 나가는 타입이죠. 초반은 속기로 쉽게 두고 중후반을 노리는 전략이지요. 같은 후반이 강한 스타일이라도 이 점이 다릅니다.” 우리가 앞서 1편에서 보았던 박정환 3단과의 SK가스배 신예프로10걸전 결승3국이 그랬다. 

-동료이자 친구로서 조언을 해준다면?

“냉정함만으로는 일류가 될 수 없습니다.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수읽기나 전투, 계산력은 다들 발군입니다. 실력 차가 좁혀질수록 초반 창의적인 반면운영이 승부를 가늠할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제가 종종 앞으로는 초반부터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두라 코치(?)합니다만 그거 잘 안따르더군요. 잘 안되는 건지 아니면 고집인지 신념인지…. 하하.”


[장면3] 2007 KB국민은행 한국리그
홍민표 5단
김기용 4단

<2007. 8. 26, 165수 끝, 흑 불계승>

김기용은 2007년 바둑리그에서는 광주 Kixx의 6지명으로 나와 반타작(6승5패)을 올리며 식스맨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2008년 울산 디아채로 팀을 옮기고선 4승10패로 부진했다. 3월 비씨카드배를 우승한 직후 4월부터 벌어진 한국리그인지라 상당한 활약을 기대했으나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지 초반 8연패를 당하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반대로 7연승을 달리던 제일화재의 류동완 초단은 바둑리그의 신데렐라맨으로 떠올랐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의 8연승을 저지한 기사가 그때까지 8연패의 늪에 허덕이던 김기용 4단이었다는 점. 아무리 컨디션이 나빠도 이처럼 한방을 지닌 솜씨인지라 특히 신예기사들이 겁을 내는 기사다. 2008년 세 개의 신예기전 중 2개를 차지한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바둑은 2007년 바둑리그 가운데 한판이다. 김기용의 전광석화 같은 수읽기 솜씨를 한번 보자. 가만히 국면을 보면 좌우로 중앙을 가로지른 백대마가 아직 미생이다. 그렇다고 사는 데 급급해서는 이기기 힘든 형세다. 백1이 맥점. 좌상변 흑의 엷음을 최대한 추궁하며 백대마를 살리겠다는 얘기다. 다음 A로 이어 ▲한 점을 잡는 수와 위쪽 흑 대마와 수상전을 벌이는 수를 맞보고 있다. 흑의 위기일발!

딱따구리처럼 속사포로 쪼아대는 초읽기 속에서 김기용이 찾아낸 기가 막힌 맥점이 흑4. 이에 백A로 잇는 수는 없다. 위쪽 흑과의 수상전도 흑4가 타이트하게 백을 조이고 있어 딱 한수 부족이다. 기가 막힌다는 말이 절로 새어나온다.

[장면4] 흑4 다음 백A나 B로 몰아 수상전을 벌어야 하는데 흑▲ 때문에 딱 한수 부족이다. 이후 백은 시간 연장을 하며 수를 읽었으나 뒤집을 묘수가 없자 결국 흑18 때 돌을 거뒀다.

   
[장면4]

후반에 승부를 보는 바둑은 그 무엇보다 형세판단이 받쳐줘야 할 듯싶은데 김기용 자신은 그게 엄청 약하다고 말한다. 수읽기도 약하단다. 자신의 바둑은 전투형은 아니고 그저 침착하고 무난한 형이라고 분류한다. 다 약하다? 분명 엄살인데 원체 과묵한 사람이 수줍움을 타며 진지하게 말을 하니 조금도 엄살 같아 보이지 않는다.

-독기도 부족하다, 형세판단도 약하다, 수읽기도 형편없다 하니 그럼 이 험악한 승부세계에서 요새 어떻게, 무엇으로 이기고 있는 건지? 뭔가 장점이 있으니 이기는 거 아니겠느냐?  

“별로 이긴 게 없는 거 같은데요…. 제 바둑의 요즘 기사들에게 수읽기는 기본입니다. 이 단계에서 더 세져야한다는 얘기지요. 저보다 더 센 지석이나 이런 애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일단 그 부분이 세고(갖춰 놓고) 다른 부분을 보완하면 한층 업그레이드가 되겠지요. 제 바둑의 장점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다 평범한 거 같습니다.”

-평균점은 된다는 얘기로 이해하면 되나요?

“평균점이 된다가 아니라…, 다 평범하다는 말인데….”

문득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流水不爭先)'는 바둑철학을 지녔던 일본의 다카가와(高川格) 본인방의 평범류가 생각났다. 화마(火魔)보다 무서운 것이 수마(水魔)라 했다. 물은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한갓 ‘물'일 수도 있고 어마어마한 수력발전을 일으킬 수 있는 자원일 수도 있다. 물은 형태가 없다. 자유롭기에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결정된다. 어찌 보면 김기용 바둑의 근원은 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이 그저 싱거운 물로만 머물 때 그것은 독기 없는 물바둑이다. 그러나 잠시의 게릴라성 폭우에도 삽시간에 불어난 물이 도로를 삼키듯 힘이 붙은 물은 더는 물바둑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주워갈까봐 밤을 잔뜩 줍는 태몽을 꾸고 낳은 아이. 주머니가 모자랄 정도로 타이틀을 많이 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겨울 사막을 낙타처럼 터벅터벅 횡단해온 김기용의 물바둑이 이 봄, 물이 한창 오르고 있기에.

과거 조치훈이 “5단이 되어 얼마나 기쁘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당시는 고단자의 기준점이 5단이었음) “5단이 되기 위해서 일본에 온 것이 아니다”고 당차게 밝힌 그 의욕처럼 김기용의 의지도 분명하다.  “내 목표는 신인왕이 아니다!” (끝)

新기사론, 김기용편 (1) 보기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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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선공팔 |  2009-01-24 오후 12:00: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는 단지 조용할 뿐이다. 있는 듯 없는 듯 그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다 보니 영감처럼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말수가 없다.>

잘 읽엇습니다. ^^  
AKARI |  2009-01-24 오후 12:01:3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AKARI |  2009-01-24 오후 12:05:5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김기용사범님의 별명이 ......정말요?

첫번째 사진에는 ..
참으로 청순하면서도 ..
붉은입술이..
묘(?)하게 섹시(?)하신데요.

..갈수록 동안이 되실겁니다 힘을 내세요.ㅋ  
후지산 |  2009-01-27 오전 10:39:1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언제 읽어도 묵직하고 에리한 글 잘 읽었습니다.  
꺼멍알 |  2009-01-31 오후 2:33:5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후지산도 무너뜨리 제목임은 틀림없으니 더욱더 공부해서 큰 산으로 한국바둑의 버팀목으로 성장 해주길...._()_  
돌부처쎈돌 |  2009-02-10 오후 11:33:2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유수부쟁선
流水不爭先

감사히 읽었습니다.
아울러
김기용 사범님의 더 큰 성장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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