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자라면 ｢매란방 철학관｣의 그 여자 아니오! 나처럼 관매점(觀梅占)을 친다는?”

“그러니 얼마나 놀랐겠소. 제 아비의 땅을 10년간 임대했다니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었다니까. 날건달이나 진배없는 김경필이 농사짓기 싫어 그랬을 법도 하지만, 문제는 김송자가 무슨 목적으로 주말농장을 열었는가 하는 거였네.”

벽암은 그런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상황에서 늙은이들만 농사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농사를 지어 봐야 자재비와 인건비를 빼면 적자다. 그렇다고 농사짓기 싫어 묵혀 두면 땅을 버린다. 그럴 바엔 헐값에라도 타지인에게 임대하여 주말 농장 같은 걸 여는 게 지혜로운 판단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일에 김송자가 뛰어들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얽힌 매듭이 쉽게 풀릴 것 같은 생각은 없었다. 당시 사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었다.

“나는 종교란 것을 잘 모르지만서두, 옛날엔 비닐하우스에 남묘호렝게교(日蓮正宗)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거든요. 그러더니만 작년부터는 주야장천 할렐루야만 찾습디다. 참말로 이상하더라니께요.”

“할렐루야를 찾아요?”

이제껏 잔잔한 미소를 띠던 게이꼬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충격을 받았을 때처럼 일시적으로 경직된 듯한 낯빛이었다. 그녀는 한 방울의 어설픈 미소를 떨구고 서둘러 제갈길로 떠나 버렸다.

벽암은 서울에 온 후 종교 문제 연구소 채일병 소장에게서 남묘호렝게교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남묘호렝게교는 불교의 한 갈래인 일련 정종(日蓮正宗)이라 부릅니다. 1930년 마찌구찌 투스네사부로라는 사람에 의해 창가 학회(創價學會)란 이름으로 설립됐는데, 당시엔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어요. 신도 수도 고작 스물한 명이었구요.”

일본정부는 일본 내 모든 종교를 단일 명칭인 신도교(神道敎)로 통일하려 종교인들과 접촉을 시도했었으나 유독 이 종교만이 다른 교에 비해 정통성을 주장하며 사사건건 정부 시책을 걸고 넘어졌다.

일본정부는 1940년 교도들을 모두 체포했다. 그들 가운데 열아홉 명은 신도교로 돌아가 석방되었지만 지도자였던 마찌구찌는 고집을 피우다 끝내 감옥에서 죽었다. 결국 조세이 토다만 살아남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전도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 73년말 집계로 신도 수는 700만 명이 넘어서는 빠른 성장률을 보여 79년 현재 1천만 명 선에 육박했으리란 가정이 섰다. 그러나 벽암이 말하고자 하는 취지는 다른 곳에 있었다.

“자네들도 신문 방송을 통해 그런 말을 들었을 거네.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이상한 말이 떠돌기 시작했네. 전라도 어딘가에 있는 남악을 찾아내면 돈을 벌 수 있다느니, 그곳 어딘가에 촌락을 이루면 전라도 대통령이 나온다는 말이 그것이네. 이를테면 남악의 주인이 누군가에 따라 통치자의 위상이 달라진다는 거지. 일본인들이 전라도를 찾는 것은 대한민국 안에 또 하나의 일본을 건설하려 든다는 소문도 있네.”

그런 점에서 최근에 입국한 사람들의 면면을 세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음을 채일병은 강조했다. 그 가운데 밑줄을 그을 수 있는  인물이 히라다(平田)였다. 한때 적군파에서 활동했으며 지금은 신도교의 중책을 맡고 있는 요주의 인물 1호였다. 채일병은 그 점을 지적했다.

“일본에는 여러 종교 집단이 있습니다만, 신도는 아주 오래됐습니다. 굳이 시기를 분류하자면 AD. 552년까지 유추할 수 있으니까요. 일본의 신도에 대해 노스(John B. Noss)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인들은 오래 전부터 자신들의 나라를 신성한 것으로 믿어 왔다는 거죠. 자기네들 외엔 신성한 나라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일본만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의 중추국이 될 수 있다는 억지를 부리죠. 그래서 나라 이름을 ‘태양으로부터 기원한다’는 뜻의 닙본(Nippon)이라 한 거구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만 해도 일본 어린이들은 흥미로운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이 숭배하는 천황은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이라는 주입식 교육이다.

이 아마테라스가 일본을 통치할 수 있는 신적 권위를 황실에 부여해 주었다는 전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믿음은 비약하여 일본인이야말로 신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으로 낙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