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는 무척 어두웠다. 모든 집기며 제단은 그대로였지만 싸늘한 기운이 엄습해 오는 게 이상했다. 박사주는 제단 옆으로 한 바퀴 돌아보다 구로다 회장을 발견했다.

“어찌된 일입니까?”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품속에서 급히 단약을 꺼내 구로다의 입에 물려주었다. 단약은 미처 뱉어낼 틈이 없이 사르르 녹아 목젖을 타고 넘어갔다.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득이한 조치였다.

“나는 한국에 빚이 많아. 떠나는 마당에 일부라도 그것을 갚지 않는다면 눈을 감지 못할 것이네. 자, 이걸 받게.”

구로다 회장은 한 장의 메모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P-0259>라는 넘버가 씌어 있었다.

“일본 대사관 지하에 감춰진 물건들이 움직였을 것이네. 아마 한 트럭 반은 될 게야. 대한(對韓) 사업에 차질이 생겼으니 신도교 본부로 옮기겠지. 나는 한평생을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죄를 짓고 살았네. 삼합회라는 단체를 만든 것도 어찌 보면 한국을 너무 사랑했던 탓에 저지른 행위로 보면 다행으로 생각하겠네만.”

단약 성분인지 구로다는 안정을 찾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따금 찾아드는 진통에 얼굴을 찡그리며 가슴을 두드렸다.

“내 생각엔 비행기편이 아닐까 싶네. 미우라 여행사를 이용하면 항공편은 금방이니까. 금괴는 한국인의 것이니까 박사주가 찾으시게. 그것들이 일본으로 건너가면 또다시 사람을 살육하는 도구로 사용될 걸세. 나는 그것을 원치 않거든.”

구로다는 갑자기 밭은기침을 몰아치듯 쏟아내더니 한 사발이나 되는 피를 토해 냈다. 이미 독물이 심장을 침범했는지 혈색은 까맣게 변해 있었다. 구로다는 헐떡였다.

“지금 수련장으로 가도 소용없네. 나를 명도의 일인자로 만든다는 구실 아래 지부장과 장로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까.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명목상으론 내가 책임지게 돼 있네. 그렇지만 신도교와 신도교 중책들을 살해하려는 것은 미우라가 세운 계획의 일부요. 그자는 내일이라도 일본 대사관으로 들어가면 한국 정부가 손을 쓸 수 없도록 참사관 임명장을 받아요. 그러니….”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피의 양이 더욱 많아졌다. 몇 번인가 몸을 떨고 나서 구로다는 절명했다. 탁원제가 뛰어든 것은 그때였다. 그는 몹시 흥분된 낯으로 소리쳤다.

“박부장님! 어디 계십니까? 서미애 씨를 찾았습니다.”

서미애는 빈사 직전에 빠져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열전도실과 건조실을 오가며 몸 안의 수분을 빼앗겼었다. 이날따라 거칠게 몰아치는 진눈개비 때문에 수련장의 전원이 차단된 것이 그녀와 하세가와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 탁원제가 심드렁하니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연회장 안엔 상당수의 처녀들도 목숨을 잃었던데요. 도대체 이 미친 집단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을 꾸민 겁니까?”

“글쎄, 구로다 회장의 말처럼 명도라고나 할까. 대일본제국의 번영을 위해 누군가의 피를 제단에 뿌려야 효험이 있다고 믿는 거겠지. 그것이 태양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으로 믿으니까.  그들의 신 ‘아마테라스’가 좋아한다고 믿겠지.

그들은 일단 밖으로 빠져나왔다. 소란스러운 웅성거림이 한층 가깝게 들려 왔다. 회색 빛으로 그을린 하늘 아래 수많은 차일들이 벌판을 덮고 있었다. 불빛은 대낮처럼 환했지만 군데군데 기름불이 타올랐다.

행사를 진행하는 귀빈석엔 미우라와 마순호 대령이 나란히 앉아 있고 신도교 사대 호법이 그 뒤를 엄호하고 서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반대쪽에 세운 관망대에서 촬영되고 있었다.

시간은 정오를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느 누가 그랬는지 이곳에서의 휴거가 오후 2시부터 일어난다고 신도 사이에 퍼져 있었다. 행사장의 분위기를 띄우는 진행자는 북소리에 맞추어 찬송가 259장을 열심히 불러 댔다. 그는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통성기도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일으켰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 수많은 죄업을 탕감하시려 독생자를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늘 이 자리에 오시어 여러분들을 영광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다시 두 번째 소절의 찬송가가 이어졌다 그쳤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난밤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어로서 계시를 주셨습니다. 자, 동쪽을 보십시오. 하늘에 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친필이십니다.”

캄캄한 동쪽 하늘에 밝은 빛살이 퍼져 올랐다. 그것은 이상한 형태의 그림이었다. 굳이 그것을 글씨라고 우긴다면 할 말이 없지만, 하늘에 쏘아 올린 레이저는 괴이했다. 그것을 신필(神筆)이라 한 것이다. 형태를 분간할 수 없는 모양이었지만 모여든 사람들은 자지러지도록 좋아했다. 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하늘을 향해 할렐루야를 연호했다.

다시 셋째 소절의 찬송이 이어졌다. 수만 명의 신도들이 한 목소리로 찬송을 마치자 이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신성(神聲)이 들려 왔다. 그것은 톱니가 어긋진 기계가 돌아가는 듯 알아듣기가 고약했다. 그러나 사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하고 영적인 신성함으로 해설해 나갔다.

“오늘 하나님께서 말하십니다. 시간이 점점 다가왔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나와 함께 하리라. 이제 너희는 나와 더불어 영원히 아버지 곁에 있으리라. 자,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시다. 주님께 경배와 찬양합시다!”

흥은 한층 고조되었다. 구원3파에서 가려 뽑힌 찬양대들은 북을 울리고 드럼을 치며 찬양했다. 그들에겐 눈비가 오는 것은 아무 장애도 되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주님에게 다가가는 것만이 소원이라는 듯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울부짖었다.

윤사달은 수양관 앞뜰에 도착한 후, 시종 주변을 탐색했다. 과연 이곳이 남악이며, 장차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또 하나의 도읍지가 될 것인지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수련장으로 돌아보고 한달음에 달려온 김순원의 얘기에 약간 의아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수련장에선 행사가 일찍 끝난 듯싶습니다. 잔치를 벌인 흔적은 있지만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하기야, 이렇게 행사가 진행 중인데 술을 마시고 있다면 정신이 나간 거지요. 그렇잖습니까?”

“김기자, 아무래도 이상해. 주위를 둘러봐. 지부장과 구원3파의 장로들이 내려왔다면 지금쯤은 교도들과 합세해 분위기에 젖었을 일 아닌가. 간부들은 한 사람도 보이질 않으니 분명 무슨 일이 있을 것이네.”

더구나 시간도 28일 자정이 아니라 오후 3시였다. 믿음이 강한 성도들이 신들림을 받아 하늘로 올라가는 ‘휴거’가 어떤 시간대를 맞추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후 3시를 말씀하셨다면 그렇게 순종하고 믿으면 그뿐이었다.

옷이 젖기 좋도록 비가 내렸다. 나이든 분들은 차일 안으로 들어가 차가운 2월의 진눈개비를 피했지만, 청장년들은 그런 것에 전연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시고 이내 신들림이 일어날 것을 염원했다.

북소리와 찬송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 가고 할렐루야를 연호하는 소리가 남악 뜰에 퍼져 나갔다. 시간은 어느새 2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구원3파의 장로와 지부장들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분명 그들 신변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불안한 생각들이 머리를 적셨다. 찬송은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