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다를 대동하고 윤사달이 남악으로 내려가고 있을 무렵, 남악리에는 색다른 행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청장년 층들이 애용하던 수련장은 남악 수양관에서 4킬로 남짓 안으로 들어갔다. 직선거리를 산정하면 잘 해야 2킬로 정도였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은 꼬불꼬불하여 상당히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구로다 회장을 비롯해 각 지부의 책임자들과 장로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경이었다. 햇살은 따사로웠지만 바람 끝은 만만치 않게 물기를 머금었다.
신도교들이 입는 복장을 하고 곱게 치장한 여인들은 연도에 늘어서 수련장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을 환영했다. 그들은 곧장 실내에 꾸며진 연회장으로 안내되었다. 어지간한 호수를 방불케하는 중앙 분수대에서는 보기에도 시원스럽게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잠시 동안의 소란이 그치고 착석하자 구로다의 인사말이 떨어졌다.
“그동안 우리들은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사소한 분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서로 간에 묵은 것은 풀어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기 위해 마련된 한차원 높은 화해의 장입니다. 모처럼 마련한 이 자리에 보다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희들의 춤이 악사들의 반주에 맞춰 흥겹게 어울어졌다. 행사가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미우라는 구로다의 귓전에 속삭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회장님께서 명도(明圖)를 원하신다면 제가 신명을 바쳐 그런 자리를 만들까 싶습니다만.”
“명도라? 또다시 애꿎은 사람을 죽이란 말인가?”
“회장님, 어차피 대한(對韓) 사업은 중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쌓아왔던 모든 것은 내일로 막을 내립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사업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아직은 공이오구 팀이 한국에 잔류해 있고, 또한 ‘호시 구미(星組)’ 조직이 살아있으니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구로다의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우린 최선을 다했습니다. 회장님 가문에서도 수백년 전부터 대일본제국을 위해 신명을 바쳐 일해 왔습니다. 우리는 회장님이 이끄시는 대로 삼합회를 움직이며 크고 작은 일에 온힘을 경주했습니다. 이제 어떤 결론을 맞이한다 해도 여한은 없습니다.”
“…….”
“삼합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삼합회라….”
구로다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삼합회. 자신은 그동안 한국인에게 무엇을 했는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미우라는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넣으며 흐르는 듯한 달변으로 구로다를 회유했다.
“시미즈 그룹에서는 한국인의 생활패턴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인에게 마약과 도박과 섹스를 가르쳤습니다. 동남아를 거점으로 움직이던 ‘호시 구미’가 부산항에 대량의 마약을 하선시켰고, 빠징코와 구슬치기 · 전자 경마를 통해 일을 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줬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동남아에 수출하던 성기구를 들여와 한국인의 성의식을 무디게 만든 공도 적지 않습니다.”
“으음.”
“훈장감으로 말하면 무라야마 역사연구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구로다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런 것을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모를 리 없었다. 조선총독부 비호를 받고 조선의 땅을 얼마나 몸살 나게 했는가. 그 공으로 말한다면 단연 압권일 수 있었다. 미우라의 회유는 계속되었다.
“앞으로의 대한(對韓) 전략을 위해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면 그때는 지금이라고 봅니다. 지금 각 지부장과 구원3파의 장로들이 우리와 헤어진다면 결국 그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역이용할 게 뻔합니다. 그것을 막고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선 회장님이나 제가 희생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구로다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희생하는 것이라면 나 혼자 족하네. 그동안 우리에게 희생된 영령 앞에 속죄하는 것이라면 굳이 자네가 끼어들 필요는 없겠지.”
“회장님, 명도(明圖)를 하십시오. 그 방법만이 신도교의 위대함을 알리는 방법입니다.”
“지금 김시우는 어디 있는가?”
“모종의 계획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삼합회의 전통이 끊기지 않고 한국 땅에 신도교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일을 대신해야만 합니다. 어차피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저들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그럴 바엔 아예 헌납 형태를 빌어 저들에게 던져버리는 것이 시간을 버는 일입니다.”
구로다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숨겨놓은 금덩이를 본국으로 옮기는 문제였다.
“그래, 금괴는 어찌 하려는 겐가?”
“옮기는 중입니다.”
“쉽게 옮길 수 있단 말인가?”
“편법을 썼습니다. 그 일 때문에 김시우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회장님이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어떻게 마무리를 짓느냡니다. 그렇기에 회장님이 명도(明圖)를 하시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것입니다.”
“알았네, 자네 뜻을 따르지.”
“감사합니다, 회장님. 본국에서도 회장님의 영단에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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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