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거리. 그중에서도 가장 번화가인 코스모스 백화점 건너편에 자리한 ｢칼디｣의 2층에 자리 잡은 점집엔 그런대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정오를 넘기기 10여 분 전이었지만 다섯 명의 손님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점사를 일러 받고 나오는 시각은 대략 5분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표정은 아주 만족한 낯빛이었다.

히라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윤사달은 안으로 들어갔다. 점상을 마주보고 좌정하자 청송자는 죽간이 든 통을 앞으로 내밀었다.

“운수를 아시려면 죽첨(竹籤)하셔야 합니다.”

윤사달이 하나를 뽑아 앞에 놓았다. 수(囚)자였다. 뜻밖이라는 듯 청송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윤사달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놀랍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인장께선 참으로 좋은 오관(五官)을 지니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참으로 보기 드문 상이십니다. 오관에 대해 하나씩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금형의 귀(金耳)’입니다. 이러한 귀는 부귀와 공명이 넘쳐납니다. 한평생 학처럼 고절하게 사실 수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게 옥의 팁니다만.”

청송자는 덧붙였다.

“본래는 있었으나 어떤 악연으로 변을 당하신 게 분명합니다.”

윤사달은 추임새를 놓았다.

“아하,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눈은 어떻습니까?”

“용안(龍眼)이십니다.”

“용안?”

“마음먹기에 따라 부귀를 누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한데도 부귀를 초개같이 여기시는 형상이십니다.”

윤사달이 소리 없이 하하 웃었다.

“다음으로는 코를 들 수 있습니다. 노인장의 코는 마치 쓸개를 매달아놓은 듯한 현담비(懸膽鼻)입니다. 역시 부귀가 손안에 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입술은 말을 할 때 이가 밖으로 드러나거나 보이지 않으며 위와 아래가 알맞게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관상학적으로 방구(方口)지요. 시생이 익힌 관상법으론 일찍이 노인장만큼 좋은 상은 본 적이 없습니다.”

“허어, 그리 말하니 기분은 좋소이다만, 사는 것이 즐겁지 않으니 무슨 연윤지 모르겠소이다.”

“별말씀 다 하십니다. 노인장께서 뽑으신 죽간은 수(囚)잡니다. 이것은 국(囗)과 인(人)으로 파자를 할 수 있으니 곧 ‘나라 안에 제일 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시는 일이 무엇인진 모르나 과히 독보적이랄 수 있습니다.”

의당 즐거워해야 할 윤사달의 낯빛이 시무룩해졌다. 의외라는 듯 청송자가 물었다.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언짢은 일이라기보다 지난밤 꿈을 꾸었지 뭡니까?”

“무슨 꿈을 꾸셨습니까?”

“신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꿈길이 고약했어요. 어딘지는 모르지만 길을 가고 있는데 개 두 마리가 사람의 말로서 싸우지 뭡니까. 너무 황당하고 놀라워 개싸움을 말리려는데 너무 사납게 날뛰는 바람에 꿈을 깼답니다. 도대체 이 꿈의 내용이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청송자의 표정이 심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꿈은 노인의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이렇듯 좋은 상(相)을 가진 분이 그처럼 해괴한 꿈을 꾸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낯빛이었다.

두 마리의 개. 그것은 견(犭)과 견(犬)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 개들이 사람의 말을 하며 싸웠으니 犭+言+犬=獄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개들이 말을 하며 싸운 것은 가까운 장래에 감옥에 간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꿈의 내용이 심각해도 노인의 관상으로는 그런 기미를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뭔가? 다시 한번 청송자는 생각을 다듬고 나서 정중하게 물었다.

“노인장, 개들이 사람의 말로 다투며 싸울 때에 어느 누가 지나갔습니까? 시생의 생각으론 감옥에 갈 사람은 지나가는 행인인 듯싶습니다만.”

“어허, 그래요? 그렇다면 큰일 아니오?”

“무슨 말씀이신지.”

“이런 말을 해서 어쩔지 모르겠소만, 내 꿈길을 찾아온 행인은 댕기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선생의 모습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 행인은 분명 선생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청송자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물러앉더니 그 자리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그는 단아하게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자리에 앉았다.

“어른을 알아 뵙지 못하고 작은 재주를 자랑했습니다. 어르신께서 어여삐 보아 주십시오.”

이렇게 되면 윤사달은 더 이상 신분을 감출 수만은 없게 되었다.

“사실은 알아볼 게 있어 왔소.”

“무엇이든지 물어보십시오.”

“이곳에 점집을 열게 된 건 마순호 대령의 힘이라고 들었소만.”

“아직도 그분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선생이 나의 관상을 보아줬으니 나 또한 선생의 관상을 보아주리다. 보아하니 선생의 눈가에 그늘이 내려앉았으니 분명 몸 안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라 보오만…, 어떻소?”

“…….”

“어찌 말이 없으신가?”

“어르신의 말씀과 같습니다.”

“분명 상서롭지 못한 일을 당했을 것이오. 아마, 그 일로 인해 좋지 않은 점괘를 내놓았을 것이고?”

“그렇…습니다.”

“그건 선생의 잘못이 아니오.”

“예에?”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가 덫을 놓았으니 어느 누구라도 그 덫에 걸렸을 것이오. 어떻습니까, 덫에 걸린 상처가? 분명 사내의 이름을 나타낼 장소에 이상이 생긴 거지요?”

“청송자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 자신 청학동을 떠나올 때 품었던 꿈 자락이 한 번의 실수로 어긋나 버렸다는 탄식이었다.

“이젠 걱정할 일 아니오. 내가 선생의 병을 치료해 주리다. 그 대신 하루 전이나 이틀 전, 사장이라는 분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을 것이오. 그가 누군지 말해 주겠소?”

“말해 드리고 말고요. 그분은 이틀 전에 한 번 왔었습니다. 사장님(마순호)한테 물었더니 김시우란 분으로 어느 회사의 자금당담 상무란 말을 들었습니다. 첫날 보았던 그분의 관상은 세상에 들도 없는 사악한 기운은 모두 담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장님께 그분의 좋지 못한 관상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그날 저녁 밤거리 구경을 나갔다가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해 병을 얻었습니다.”

“그 다음에 왔을 땐 어땠습니까?”

“그 사람이 오기 전 전화를 받았습니다.”

청송자는 점상 아래에서 메모지를 꺼내주었다. 그곳은 아따미 음식점의 전화번호였다. 청송자는 그날 밤 있었던 모든 일들을 주섬주섬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나중에 왔을 때엔 김시우란 자의 관상을 좋게 말할 수밖에 없었겠소.”

“제가 어리석은 탓입니다. 사장님께서 그 자의 관상을 다시 한 번 보라 하셨지요. 저의 점사를 듣고 그자와 거래할 계산이었나 봅니다. 그 당시엔 내 몸이 아주 엉망이었거든요. 그래서 제 한목숨 구하기 위해 부득이 궤사(詭辭)를 말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어르신, 제 몸이 온전해질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청학동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봅시다. 점괘를 일러준 후 두 사람은 어땠습니까? 무언가 주고받지 않았었나요?”

“얼핏 들은 바론 통행증 같은 거로 생각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장님 이름을 대면 무조건 통과시켜 줄 거라고 들었거든요.”

“참으로 고맙소. 선생 덕분에 도둑을 잡게 됐습니다.”

윤사달은 고의춤에 두른 붉은 주머니 안에서 단약 세 알을 꺼내 건네주었다. 그것은 매독에 특효약인 이종준의 처방으로 알려진 ｢신선태을자금단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