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은원 관계가 없는데도 이런 일이 생긴 건 반드시 곡절이 있다는 생각을 갖자 일단 하룻밤을 어렵게 넘기고 전화를 걸었다.

“오호호호, 증말 잘 견뎌 줘 고맙수. 그래 몸은 별고 무량하신가 총각?”

“한 가지 묻겠습니다.”

“그래 뭐유?”

“처음부터 나를 겨냥해 일을 꾸민 것이지요?”

“저런, 저런. 그런 말이 어딨누. 내가 좀 도움 받으려고 그랬지. 아참, 우리 손녀딸이 총각을 만나러 갔다가 잠이 들었길래 그냥 온 모양이야. 편지함 뒤지면 총각한테 가는 우편물이 있을 거야. 거길 보면 참고가 될 만한 기사가 있을 거구. 총각, 그걸 본 다음 통화하자구, 그럼.”

청성자는 아래층으로 달려가 편지함을 뒤졌다. 우표는 붙지 않았지만 점집으로 온 서류봉투가 있었다. 내용은 특별한 게 아니라 매독과 에이즈의 증상에 관한 것이었다. 몸에 나타나기 시작한 반점이나 발열 증세가 어쩌면 그렇게 비슷할 수 없었다. 청송자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좋습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내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게 정말이유 총각.”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렇담 이렇게 해. 내일 당신네 사장을 만나러 온 신사분이 있을 거야. 그분의 점괘를 좋게 내. 알았어? 그렇게만 하면 치료약과 해독약을 주겠네. 물론 단번에 낫는 건 아니야. 한 달 이상은 먹어야 하니까 서툰 짓은 안 하는 게 좋아.”

“매독이나 에이즈도 낫는단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총각은 에이즈 감염은 아니야. 그건 안심해. 사실 그렇잖아. 우리가 처방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런 약을 쓰겠어. 병이 있는 곳에 치료약이 있지. 조금도 걱정 말고 그렇게 하라구. 알았어? 총각이 그렇게 해준다면 보너스도 있어. 기대해 봐요.”

수화기를 놓고 곰곰 생각해 보니 근자에 사장님(마순호)을 찾아온 인물은 김시우뿐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관상학적으로 그의 얼굴은 범죄자의 온상이었다. 그런 자는 언제고 큰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고금의 점괘로 나와 있었다. 이른바 반골(叛骨)이다.

23일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 마순호는 점집으로 돌아왔다. 연락을 받은 김시우가 30분 늦게 도착했다. 시간이 없다고 믿은 탓인지 마순호는 서둘렀다.

“이보시오, 김상무. 갔던 일은 마무리됐습니까?”

“신도원에 대한 임대차 계약서부터 폐기시켰습니다. 그리고 방배동 카페 골목에 있는 쵸이스라는 모텔은 사모님 앞으로 등기 이전 서류를 준비시켰습니다. 그 다음으로 아따미(熱海) 음식점에 관해서인데…, 이곳은 외부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점차 시간을 봐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육원각은…시미즈 그룹의 지분이 섞여 있으므로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순호는 희색이 만면했다.

“그렇게 많은 걸 우리에게 줘 버리면 장차 어떻게 할 셈이오? 흙만 먹고 살자는 것은 아닐 텐데.”

“한동안은 나서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 점 구로다 회장님이나 미우라 사장님의 생각도 똑같습니다. 마순호 대령님의 차명계좌엔 준비된 자금이 입금될 것입니다만 별도의 선물로는 순금 한 관이 고기 상자에 포장된 채 자택으로 배달될 거구요.”

“그렇구만, 그래요. 가만, 어디 오늘은 관상을 제대로 한 번 봅시다. 도대체 우리가 웬수가 될지 아니면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될 지 전연 모르는 일이잖소.”

마순호는 이내 청송자를 불러들였다.

“내가 가장 아끼는 분일세. 서둘지 말고 천천히 관상을 좀 살피시게.”

댕기머리 총각 청송자는 평소와는 달리 향수를 뿌린 듯 냄새가 강렬했다. 마순호가 약간 언짢은 표정을 짓긴 했으나 이내 즐거운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한동안 상대를 노려보던 청송자는 내심 탄식을 터뜨렸다.

‘허어, 오관(五官)을 살피고 또 살펴도 세상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은 아니다. 어찌 저런 자를 위해 내가 거짓으로 상법을 말한단 말인가. 허, 어쩔거나. 내 부모님의 뜻이 하늘에 닿았는데 그 뜻을 저버린다면 필시 나를 자식으로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님을 위해 궤사를 할 수밖에.’

청송자는 한동안 김시우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에 점괘가 흘러갔다.

“이분은 지난번에 왔을 때와는 달리 귀하고 부귀롭습니다. 세세한 것을 말씀 드린다 하여 아실 것도 아니니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아주 귀하고 복된 상입니다.”

안면을 환히 펴던 김시우가 일순간 굳어졌다. 그것은 청송자가 슬쩍 붙인 뒷수쇄 때문이었다.

“모든 상법은 하나에서 시작되지만 하나로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선한 행위는 선한 인연을 낳는 것이니 모름지기 덕을 쌓는 게 중요합니다.”

청송자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물러났다. 그렇다면 김시우의 관상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우선은 채청관(採聽官)이라 불리는 귀(耳)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관상학적으로 귀는 크고 작은 것보다는 윤곽이 분명한 것을 귀히 여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김시우의 귀는 ‘쥐의 귀(鼠耳)’다.

이것은 위쪽으로 높이 올라붙은 형상인데, 마치 쥐의 아래가 깎인 듯한 인상이 짙다. 이런 귀를 가진 사람은 남의 눈을 속이길 잘 한다. 언제나 원하는 먹잇감을 찾아다니지만 말년은 덧없고 쓸쓸하게 보낼 운수다.

그런 반면 마순호의 귀는, 귀의 윗부분이 눈썹보다 높지만 아래엔 수두가 없고 얇다. 이러한 귀를 ‘화살깃 귀’인 전우이(箭羽耳)라 하는데 대체로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상이다.

눈썹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눈썹은 높이 나고 드물고 깨끗하게 윤기가 살아 있으면 좋다. 그러나 김시우는 눈썹이 거친데다 눈을 누르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런 눈썹을 귀미(鬼眉)라 하는데, 관상학적으로 마음씨가 흉하고 거짓말을 잘하며 기회만 있으면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한다.

또한 눈을 보면 더욱 한심스럽다. 눈이란 마음의 창이니 대체로 흑백이 분명해야 한다. 평범하면서도 좋은 눈을 작안(雀眼)이라 한다. 이 눈은 눈 위로 쌍꺼풀이 보이며 눈동자가 검다. 성격적으로 무난하며 마음씨도 원만하다. 이에 반해 김시우는 눈빛이 흐릿하고 약간 구름이 낀 듯하며 자세히 보면 붉은 테가 있다. 이른바 꿩과의 새인 ‘자고 안(鷓鴣眼)’이다. 매사에 마음 깊이가 안개를 더듬는 듯 분간키 어려운 스타일이다.

코는 어떤가? 아마 점입가경이란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코는 본시 콧등이 곧고 준두가 가지런해야 한다. 또한 난대와 정위가 튼튼해야 좋은 코로 여긴다.

김시우의 코는 어떤가? 바로 응취비(鷹嘴鼻)였다. 형태상으로 본다면 콧대가 튀어나오고 살이 없다. 코끝은 뾰족하고 굽었으며, 입쪽으론 마치 매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코의 형상이 응취비다. 성격적으로는 무척 간악하다는 것이 관상학적인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입이다. 입술은 어떤 것이 좋은가? 이렇게 묻는다면 그 해답은 간단하다. 입술은 첫째 붉어야 한다. 그리고 윗입술이나 아랫입술이 다같이 두툼하고 윤기가 있어야 귀히 여긴다.

김시우의 경우는 저구(猪口)다. 입 모양이 크며 윗입술이 길고 두둑하며 아랫입술의 끝이 뾰족한 것을 말한다. 이런 입술은 󰡔서유기󰡕의 저팔계처럼 상대를 비방하길 좋아한다.

이렇듯 오관을 놓고 평한다면 김시우는 둘도 없이 사악하고 흉악한 위인이다. 그런 자를 더 없이 좋다는 것으로 점사를 풀어냈으니 청송자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가 밀실에서 나가자 마순호는 품속에서 큼지막한 봉투를 꺼내 놓았다.

“여기에 든 것은 내 친필이네. 무슨 일이든 문제가 생기면 이걸 보여주고 내게 전화하게. 그리하면 자네의 움직임을 막을 사람은 없을 것이야. 그리구…, 모처럼 김상무 부탁이니 내가 28일 집회에 참가 하겠네. 다음날이 3.1절이니 아무래도 출발은 식이 끝나자마자 해야 될 듯 싶네.”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은혠 두고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그 무슨 소리. 그 동안 김상무가 우리 일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준 게 어딘데요. 하하하, 한 형제처럼 지내게 됐으니 서로 의지하며 좋은 시절의 노래나 불러 봅시다.”

“그럼요, 그렇구 말구요. 나는 죽으나 사나 마대령님의 신발 끈을 매겠습니다. 시생을 버리지 마시고 제발 거둬 주십시오.”

“하하하하, 농이 과하시오 김상무. 자, 우리의 내일을 위해 건배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