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자는 생전 처음 와 보는 호텔 구조에 기가 질렸다. 프런트에서 알려준 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 520호실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겨우 스물이 될까 말까 싶은 앳된 처녀가 그를 맞이했다. 의아스러워 하는 그녀를 향해 청송자는 더듬거렸다.

“저, 할머니가 이걸 갖다 드리라고 해서요.”

그녀는 금방 목욕을 끝냈는지 실내복을 입은 채 젖은 머리를 터번처럼 흰 타올로 감고 있었다. 청송자를 소파로 안내하고 나서 그녀는 붉은 빛이 도는 술을 한잔 따라 주었다.

“저는 술을 못하는데요.”

청송자가 거절하자 그녀가 까르르 웃었다. 하얀 덧니가 유난히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건 술이 아니라 약이에요. 시중 판매를 않거든요. ｢옥방회춘주｣라고 들어보셨어요? 이건요, 총각들이 먹으면 무슨 일을 해도 피곤한 줄 모르구요. 결혼한 사람이 마시면 크게 효험을 본데요. 말이 그렇지 사실은 강장주거든요. 내가 보기엔 아저씨도 결혼 안한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녀가 건네준 잔을 받으며 설마 죽겠느냐 싶어 훌쩍 입안에 털어 넣었다. 다시 한잔만 더 하라는 간청을 물리치지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마신 것이 여섯 잔이나 되었다. 이젠 건너편에 앉은 여인이 도저히 남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한두 잔 술을 마시다 보니 이상하게 몸안 깊숙한 곳에서 불길이 살아 돋았다.

이러한 청송자의 속내를 알아차리기라고 한 듯 그녀는 농염한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가늘게 여몄던 실내복의 매듭을 풀어 버리고 이상야릇한 폼으로 술을 홀짝였다. 속살이 보일 듯 말 듯한 차림새에서 이젠 한쪽으로 밀려난 속옷 사이로 갈색빛 도는 건포도 같은 유두가 빠끔히 엿보였다. 이따금 선정적으로 몸을 비틀 때마다 풍만한 젖가슴이 매미껍질 같은 옷속에서 출렁거렸다.

청송자는 먹이를 본 독수리처럼 덮쳐갔다. 여인은 슬쩍 한쪽으로 몸을 틀더니 상대의 손을 침대 쪽으로 이끌었다. 침대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있는 브이티알 스위치를 검지 끝으로 누른 후 무너지듯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비디오 화면에선 즉시 숨가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주간지에서나 들었던 포르노 테이프이었다. 비디오 속의 발성(發聲)으로 보아 흑인들의 것은 아니었고, 대만 쪽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였다. 비대한 몸집의 남자와 연약한 여인의 성희(性戱)는 자극적이었다.

테이프를 틀자 마자 여인은 순식간에 요염한 포즈를 취하며 청송자를 이끌었다. 그녀는 색에 주린 아귀였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새벽이 올 때까지 날뛰며 놓아주지 않았다. 청송자의 심벌이 위축될 때마다 한 알씩 물려준 단약은 생명수가 되어 그의 몸에 활력을 심어 주었다.

청송자가 연체동물처럼 흐물거리는 육신을 가까스로 일으킨 것은 다음날 정오였다. 프런트에서 체킹 하는 전화를 받고서야 그는 정신이 들었다. 이미 여인은 돌아가 버리고 침대 머리맡엔 달랑 전화번호만 메모되어 있었다. 그는 그곳으로 전화를 넣었다.

“오호호호, 그래 잘 주무셨수, 재미는 좋았구?”

“정말 할머니 손녀딸 맞아요.”

“왜 그러슈, 꼭 자기가 낳아야만 자식인가. 아침에 그 아이가 녹화 테이프 가져왔기에 한 번 봤더니 총각 참 대단합디다. 어쩌면 그렇게 좌충우돌이오. 우리 영감도 살았을 적엔 그 정돈 아니었는데. 참으로 부럽수.”

청송자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분명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하는데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 노파의 말이 맹랑했다.

“이제 일어난 것 같은데 어서 집으로 돌아가 항생제나 좀 드슈. 아니지, 그것만 가지고 되겠수. 진통제도 먹어야지. 하여튼 억울한 생각이 들면 이쪽으로 전화하슈. 알았소, 총각!”

청송자는 별 이상한 사람 다 보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간밤에 일어났던 일들이 한 자락의 꿈같았다. 혹시 저런 여자가 색녀(色女)인가? 청학동을 떠나올 때 부친은 그런 말을 했었다.

“도시에는 유한마담이라는 흡혈 곤충이 있다. 그 곤충은 등에처럼 사내에게 빌붙어 피를 빨고 사는 흡혈 곤충이다. 마음에 드는 사내를 만나면 술잔 속에 강력한 흥분제를 녹여 놓고 남자의 진액을 탈취하듯 소모시키는 그런 계집이지. 이런 때엔 지체 없이 한약방을 찾아가 지황전(地黃煎)을 써야 뒤탈이 없다.”

혹시 하는 불안감에 한약방으로 달려갔다. 그는 머리가 벗겨진 한의사의 진맥을 받기도 전에 지황전을 처방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허허, 이보시오. 진맥을 해야 하는데 처방부터 내린단 말이오? 머리 모양으로 봐선 어디 깊은 산속에서 내려온 모양인데, 이곳에 왔으면 내 진맥을 받고 처방전을 받는 게 예의요. 아시겠소 총각?”

진맥하던 한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황전은 지나친 섹스로 인한 후유증에 필요한 처방이다. 그러나 댕기머리 총각의 병증은 급성 매독이었다. 대머리 한의사는 즉시 청송자를 일으킨 다음 아랫도리를 까발렸다. 마지못해 바지를 내린 청송자의 잠지에선 누런 고름이 질질 흘러내렸다.

“허어, 이렇게 되도록 병원에 가지 않고 뭣한 거요. 거참, 용하우. 잠지가 이 모양인데 기력 돋우려고 처방전을 들고 와요. 한의원 개업 이래 당신 같은 환잔 첨이유! 진료비는 안 받을 테니 어서 나가시오.”

청송자는 완전히 사색이 돼 버렸다. 그는 한약방을 나설 때 대머리 한의사가 푸접스럽게 던져 준 말을 잊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목숨을 구하고 싶으면 잠지를 자르게. 여차하다간 총각 목숨까지 위태로워져.”

 
그는 점집에 돌아와서도 일절 손님을 받지 않았다. 가끔 급할 때 써먹은 ‘면벽(面壁) 수행’에 들어갔다는 핑계를 달았다. 고통이 찾아온 건 저녁 무렵이었다. 잠지에선 점점 짙은 농이 빠져나왔다. 면도날로 전신을 긁어 대는 듯한 고통이 몰아칠 때엔 바닥에 드러누워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억울하면 전화하라는 할머니의 말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다이얼을 돌리자 애동그라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왜 전화가 오지 않나 했다니까. 이것 봐, 총각. 은밀히 종합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봐. 내 어제 물어 봤더니 손녀딸이 그러더라구. 어떻게 몸을 굴렸는지 몰라도 글쎄 급성 매독과 에이즈라지 뭐유.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모르고 숨넘어가는 것보다 알고 죽는 게 낫잖아. 그래야 몽달귀신이 안될 거구.”

“아, 아…니 이것 보세요.”

“나와 무슨 원수가 졌느냐 묻고 싶지?”

“그래요, 나와 철천지원수가 졌어요.”

“오호호호, 원수는 무슨. 총각이 복이 많아 그런 거지 뭐. 믿어지지 않으면 병원에 가 봐. 싫든 좋든 이삼 일 후엔 단단한 놈을 잘라야 할 거야.”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고통 속에 하루 더 지내면서 원망하라구. 이것 봐, 댕기머리 총각, 하산한 것을 원망해. 아시겠수?”

달칵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걸었지만 통화중이라는 신호만이 빽빽거렸다. 도대체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지리산에서 내려온 후 어느 누구와도 원한 산 일이 없었다. 그는 무심코 점괘를 뿌려 보았다. 점사가 미묘했다.

희희낙락(喜喜樂樂)

부지포사(不知褒姒)

‘희희낙락하여 포사가 악녀인 줄을 모른다’는 뜻이다. 포사는 중국 주황실의 12대 제왕 희궁날의 부인이다. 한때의 여흥으로 여산에서 봉화불을 올려, 제후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가 빈 걸음으로 돌아가게 한 죄로 참화를 입은 여인이다.

항상 그녀 곁에는 아첨하는 신하가 있었고 질탕한 음악과 황음한 놀이가 준비되었다. 포사는 야만족의 침입으로 나라가 무너지자 전리품으로 넘겨졌다. 이것은 그녀 스스로가 뿌린 자업자득이었다. 이러한 포사의 점괘가 떨어지자 청송자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묘한 기분에 젖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