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박사주는 품안에서 반 뼘 남짓한 삼각기를 꺼내놓았다. 깃발은 모두 마흔아홉 개였다. 그것은 돌이 지난 어린애들이 가지고 놀기에 적당해 보였다. 그는 웃는 낯으로 말했다.

“옛날 공명 선생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오장원에서 일곱 등불 밝히고 북두칠성 연명경(北斗七星延命經)을 외었었네. 그러나 그의 재주를 천신이 시기해 뜻을 이루지 못했었지.”

탁원제는 도무지 모를 소리라는 듯 두 눈을 말똥거리며 곁에 있는 김순옥이를 돌아보았다. 박사주의 말소리가 무심하게 떨어졌다.

“자네 중국 영화 좋아했었지? 중국 영화에 강시(疆屍)라는 게 나오지. 죽어있는 시신을 불러일으키는 법술 말이야. 또 어느 나라의 종족은 좀비라는 것도 있어. 좀비 역시 영혼이 달아난 주검을 불러일으키는 법술이지. 믿기지 않은 그런 일들이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이 또한 놀랄 일 아닌가.”

“글쎄…요.”

“이번엔 내가 공명선생으로부터 배운 법술을 써볼 것이네.”

“예에?”

“특별한 건 아니야. 누구든 [육임(六壬)] · [태을신수(太乙神數)] · [기문둔갑(奇門遁甲)]을 익히면 가볍게 쓸 수 있네. 뭐랄까, 흩어진 구슬을 꿰는 것이라고나 할까. 옆에서 지켜보면 흥미 있을 거야. 내가 이곳으로 온 건 그 법술을 쓰기 위해서니까.”

문득 박사주는 손길을 멈추었다.

“가만, 내 참고 삼아 말해 주겠네. 이곳 남악수양관은 건물 형태가 일(日) 자를 이루고 있네. 지하 3층이 마지막으로 알고 있지만 내 생각은 그게 아니야. 모르긴 해도 이 땅 밑엔 상당량의 기름이 준비돼 있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큰일을 저지르려는 거지. 그것이 ‘케이 투 프로젝트’안에 포함되었는지 모르지만.”

일단 삼각기를 이쪽저쪽으로 꽂아나갔다. 북두칠성 형태로 꽂힌 것은 모두 마흔여섯 개였다. 그리고 나서 가장 아래쪽에 널찍한 공간을 만들며 삼각형으로 기를 꽂아두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경거망동을 삼가게. 비명을 지르거나 우왕좌왕 해선 안 돼.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선 내가 말해 주겠네. 아시겠는가?”

일단 정좌의 자세로 들어가 웅얼웅얼 주문을 외어댔다. 몸에서 피어오른 하얀 기류는 순식간에 쇠창살 밖으로 빠져나갔다. 대략 3분여가 흘렀을 때였다. 한 무리 쥐의 행렬이 몰려들었다. 쥐들은 삼각기가 꽂아진 안쪽을 통과하여 널찍하게 공간을 만든 삼각형 안으로 들어와 하나씩 자리 잡았다. 박사주는 쥐들이 있는 곳에 한주먹의 푸른색 알약을 놓아두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쥐들은 그것을 집어먹고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웅얼대던 주문을 그치고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손바닥으로 쓸어 담더니 다시 삼각기를 모두 뽑아 품안에 집어넣고 두 눈이 휘둥그레진 두 사람 쪽으로 돌아앉았다.

“이건 별거 아니오. 땅꾼이 뱀을 부리는 기술에 비한다면 아주 하찮은 것이지. 가만, 내가 송원장에게 김순옥이라 들었는데 맞습니까?”

김순옥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지금부터 일어난 일을 잘 기억했다가 논픽션을 써 봐요. 분명 센세이션을 일으킬 거요. 음, 논픽션 제목은 ｢특종｣이 좋겠소. 김순옥 씨는 분명 좋은 글을 쓸 겁니다.”

갑자기 문이 열리는 바람에 세 사람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뜻밖에 지하 뇌옥으로 끌려온 사람은 게이꼬였다. 그녀를 본 순간 누구보다 놀란 것은 탁원제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을 필요도 없이 그녀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박선생님이 나가신 후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하세가와를 찾아갔어요. 그 사람은 무라야마 그룹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학자답게 모든 생활이 깨끗한 분이셨거든요. 본국에 있을 때 저의 조부님과도 왕래도 있었구요.”

그는 자신이 삼합회 간부들에게 속았다는 것을 탄식했다. 평소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며 평생을 살고 싶은 나라로 꼽았다. 그런 이유로 자신이 삼합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최경조 교수와 서신을 교환하며 우의를 다졌었다고 탄식했다.

“그 분도 지리학 교수셨거든요. 언젠가 여러분들은 그런 기사를 읽으셨을 거예요. 일본은 머지않아 지각 변동을 일으켜 바다 밑으로 침몰한다는 기사를요. 그건 하세가와 교수의 이론이었어요. 그 분은 대학 교수가 될 때까지 학자금을 무라야마 연구소에서 지원 받았기 때문에 장래의 꿈을 접고 이곳으로 선회하신 거죠.”

하세가와의 후회는 다른 게 아니었다. 머지않아 일본이 바닷 속으로 가라앉을 때, 그래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일정 하에서부터 구전되어 오던 남악(南岳)의 위치를 찾아 나섰다. 십수 년의 고생 끝에 찾아낸 남악, 이곳엔 뜻밖에도 거대한 수양관이 서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미 삼합회에서는 남악의 소재지를 알고 있었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세가와는 분통을 터뜨렸다.

“이미 남악에 신도교 수양관을 세워놓은 상황인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한 이유가 어딨는가를 따진 거죠. 그런데 어느 누구도 답변을 줄 수가 없었어요. 이곳에 건물이 서게 된 것은 오래됐지만 어느 누가 수양관을 만들었는가는 자료에 없었거든요.”

말도 되지 않은 일이라고 소리 지르고 하세가와는 일본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물지도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을 찾기 위해 미우라는 다시 하세가와를 불러들였다. 그는 다시 지도에 몰입하여 금구(金溝) 어디에 있는 절 터에서 금괴를 찾아냈다.

하세가와의 후회는 다른 게 아니었다. 찾아낸 금괴의 용도가 무엇이었느냐였다. 한국의 저명한 석학들을 납치하거나 이상한 책자를 만들어 유포시키고, 한국의 재래 종교를 포섭하여 엉뚱한 길로 이끌어가는, 정도(正道)라고는 할 수 없는 사업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를 질겁하게 한 것은 건조 실험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생체 미라를 만들려는 계획을 듣는 순간 그는 질겁하여 반대했다. 이곳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모르고 있다는 경고였다.

“이 문제를 세계인권연맹인가 하는 곳에 자료를 보내려고 준비 중이었나 봐요. 그것이 들통 난 거죠. 덩달아 나까지 이곳으로 끌려왔지만, 미우라의 빈정거림처럼 그 분을 정말 건조실험에 처할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