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한국에 가면 마호(魔壺)라는 걸 찾아주기 원했어요. 사람들은 그것을 ‘귀신 단지’라 하더군요. 나는 한국에 올 때마다 여러 경로로 그것을 찾았지만, 이 일에 매달린 사람들은 소식을 준다는 말만을 남기고 실종됐어요. 아내가 죽은 후 스스로 무당이 되어 사람들의 혼백을 내 몸에 가둬보려 했지만 그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었소. 나의 몸부림은 결국 지금에 이르러 무위로 돌아갔지만.”

구로다는 굳이 아내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한국을 떠나올 때 앉은뱅이 신세를 면치 못하던 아들의 쾌유를 비는 굿을 여러 차례 했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신통력을 물려받은 것은 조카인 구로다 다쓰오였다. 그는 미우라를 움직여 신도원을 만들고 이곳에 수양관을 세운 것인데…, 생각해보면 모든 게 부질없는 한 자락의 꿈이라는 것이다. 무슨 생각인지 구로다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어디 봅시다. 박사주의 영력(靈力)이 귀신을 움직인다 들었는데 과연 그런지 한 번 봅시다.”

구로다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자세를 취하더니 웅얼웅얼 주문을 외어댔다. 그의 몸에서 희미한 기류가 피어올랐다. 비릿한 냄새가 주위에 번져흐르며 커다란 구렁이의 환영이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일우의 몸에서도 안개와 같은 기운이 새어나왔다. 그것은 여우의 환영이었다.

두 영물은 허공에서 얽히며 드잡이질을 쳤다. 서로 물고 뜯고 상대를 할퀴더니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버렸다. 안개와 같은 기운이 사라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미우라의 명을 받은 직원들이 달려온 것은 채 5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들은 구로다를 의무실로 옮기고, 박사주는 지하 3층에 있는 뇌옥에 던져놓았다. 누군가 혼겁하며 그를 불렀다.

“부장님, 웬일이십니까?”

탁원제였다. 그는 옆에 있는 김순옥을 돌아보며 박사주의 가슴 쪽에 귀를 가져갔다. 그 순간, 희미하나마 속삭이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탁기자, 나는 괜찮아. 소란 피우지 말고 그냥 두게.”

참으로 세상일이란 알 수 없다고 한숨을 뿌렸다. 같은 하늘 아래 머리를 함께 하고 살 수 없다고 믿은 원수 중의 원수인 구로다, 그 구로다 회장이 벽암(碧岩)의 양부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단번에 요절낼 수 있었지만 귀만 약간 물어뜯은 것은 벽암에 대한 잔정 때문이었다.

박사주가 일어나 앉았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편하게 만들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소? 그리고 여긴 두 사람뿐이오?”

“예에. 저희들이 신도원에서 이곳으로 온 지 얼마 안 됩니다. 갑자기 옮겨오는 바람에 목숨은 구했습니다만, 오랫동안 햇빛을 못봐선지 몸이 말이 아닙니다.”

“생체 미이라를 만든 방을 아는가.”

“생체 미이라요? 그런 방이 있다는 건 못 들었는데요.”

박사주는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들려주고 나서 동목인 문제로 넘어갔다.

“사실은 저도 그 부분에 대해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신도원에 갔을 때 분명히 허련 선생님을 뵙고 송원장님이 주신 신패를 보여줬거든요.”

“신패?”

“붉은 바탕에 청사가 똬리 치는 모습이었어요.”

박사주는 품속에서 홍사패를 꺼내들었다. 탁원제가 반색했다.

“맞아요, 부장님. 이거에요. 이것을 보여주었는데 어떻게 일이 잘못됐는지 모르겠어요.”

“자네가 보기엔 정말 허련 선생 같았는가?”

“틀림없었어요.”

“그럴 리 있는가. 허련 선생은 신도원에 들어와 얼마간 이용을 당하시다 목숨을 잃었네. 그분이 건조실험으로 생체 미이라가 됐다는 파일이 있었거든. 흐음, 이제야 알 것 같아. 그들은 사람들을 납치해 그들이 말하는 경전을 만든 후 모두 살해했을 것이네. 이것은 구로다 회장이 아니라 미우라란 자의 소행일 거야.

김순원 기자가 그러더구만, 사람의 몸은 22프로가 수분이므로 60킬로그램이 나가는 사람일지라도 일주일만 건조실험을 하면 13.2킬로그램으로 체중이 줄어진다는 거야.”

“그래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말한 미이라지.”

“왜 미이라를 만들었을까요?”

“명도(明圖)야. 원한에 쌓인 주검을 가까이 하면 그 원귀를 자신의 몸에 집어넣어 영력(靈力)을 높일 수 있다는 해괴한 이론 때문이지. 남도 지방에서는 오래 전부터 어린아이를 굶겨 죽여 태자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네. 아마 그와 같은 맥락일걸세.”

“그렇다고 그 많은 사람을?”

“그 자들은 죽은 분들의 얼굴 본을 떠 인피면구(人皮面俱)를 만들었을 것이야. 목소리야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알 수 없질 않은가. 자네가 홍사패를 들고 갔으니 그것이 나를 납치한 히라다(平田)의 것이라는 건 단번에 알았을 터이고.”

김순옥의 표정도 새파랗게 굳어졌다.

“그럼, 저의 부모님도 그런 변을 당했을까요?”

“자세힌 알 수 없지만, 십중팔구 그랬을 거요. 얼마 전 김순원 기자와 그들의 컴퓨터에 침입해 자료를 열람했는데, ｢매란방 철학관｣의 김송자 모친 강유선 씨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었어요. 여러 가지 형태로 목숨을 빼앗겼을 터이지만, 건조실험만으로 108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이었어요.”

“….”

“그동안 무얼 먹고 지냈는가?”

“이곳으로 옮겨진 후 먹은 것은 물뿐입니다.”

탁원제는 자신들의 뒤쪽을 가리켰다. 약간 젖은 듯한 그곳은 갈라진 바위틈에서 물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저곳에 찢어진 옷을 놓아두면 물이 배어들거든요. 그걸 빨아 마시며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대부분 누워 지냈습니다만, 오늘 부장님을 만나니 이렇게 힘이 솟습니다.”

“그랬었구만,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갈 궁리를 하세.”

“나가요? 어떻게요?”

“나가는 방법이야 많지. 어떤 방법으로 나가야 가장 안전한가가 문제지. 아마 미우라는 내가 죽지 않은 걸 알고 있을 거야. 내가 어찌 나오는지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고. 허허허, 이 사람아 그래도 세간에는 나를 박사주라고 불러. 좀 더 고상하겐 와룡선생이라고 해. 아시겠는가?”

박사주는 전연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하게 껄껄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