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미 밀실에 대좌한 김시우와 미우라는 심각한 낯으로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그것은 박사주가 그들의 심장부인 회장 부속실 컴퓨터에 들어와 멋대로 자료를 뽑아간 예기치 못한 돌발 사태 때문이었다.

“그들이 함부로 기사화 시키지 못하는 건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증거로 제시될 수 있는 물건이 없기 때문일겁니다. 얼마 전 신도원을 조사하고 돌아갔다는 춘천 지역 교령의 보고도 있으니 저쪽에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에 대한 방비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본국에선 훈령을 보내왔네. 구로다 회장은 호흡이 남은 채 본국에 와선 안 된다는 게야. 이건 회주의 명령일세. 한 사람의 죽음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일처리를 그리하는 게 최선이라는 게지. 그렇게 하자면 우선은 구원3파를 움직여 사회를 소동시키고 그에 대한 책임으로 구로다 회장이 스스로 자진한다는 시나리오가 이 시점에선 최선의 방법일세.”

“하지만.”

“물론 구로다 회장이 말을 듣지 않겠지. 허나 지금의 시점에선 방도가 없잖은가? 난국을 수습할 묘책이 없는데 시간만 죽인다면 나중엔 수습 불가능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네. 그러니 내 말대로 하세.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그 방법 외에 없네.”

삼합회 회주겸 신도교 교주는 구로다 회장의 삼촌이었다. 집안 내력 탓이겠지만 구로다 회장보다는 열다섯 살이나 아래였다. 미우라는 덧붙였다.

“그 동안 우리가 대한(對韓) 사업에 얼마나 힘을 기울여 왔는가.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 각 분야에 침투해 신흥종교인 신도교가 뿌리 내린 것은 다시 생각해 봐도 대단한 작업이었네. 그러던 것을 구로다 회장이 내한하면서 모든 일이 뒤죽박죽 돼 버렸어. 어찌 되었건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파장이 커. 그러니 내 생각엔….”

미우라는 더욱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 일에 관련된 자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 한꺼번에 처릴 하자는 말일세.”

“예에?”

“미우라 회장이 제거된다고 보면 총령은 자네가 유력하겠지. 나는 너무 노출됐기에 전체를 다스린다는 건 쉽지 않아. 이번에 시음용으로 제작한 옥방회춘주(玉房回春酒) 말일세. 그것을 몇십 병만 따로 만들어 오게.”

“술에 독을 풀자는 건가요?”

“별수 없잖은가. 자네나 나는 품안에 해독약이 있으니 마음 쓸 일은 없을 터이고.”

“즉시 추진하죠.”

이미 길거리엔 도방(道房) 꾼들이 쫘악 깔려 있었다. 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거나 혹은 일대일로 행인들에게 접근하여 구원3파로 끌어들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말세에 이르렀으니 구원을 받아 신들림을 하자는 속삭임이었다. 신도교 본당과 지부가 굳게 문을 닫아 건 상황에서 도방 꾼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곧 언론에 포착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 박사주는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사교가 득세할 때면 나라에 큰 일이 벌어졌네. 지금은 모든 게 확실한 상황이 아니야. 이런 때 사교가 날뛰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집단행동을 예시하거든. 그렇지 않고서야 물 맞은 개미처럼 길거리로 쏟아져 소동할 필요가 어딨겠어.”

김순원의 물음이 시들했다.

“그렇다고 두고 볼 수만은 없잖습니까?”

“두고 보자는 게 아닐세. 저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번 일을 해결하려 들겠지. 길거리에 널려 있는 도방꾼들은 하나둘 삼남으로 떠나고 있질 않는가. 춘천 본당에서 대규모 집회를 갖지 못했으니 분명 남악에서 갖게 될 걸세. 자네는 그 동안 기사 작성이나 마무리 짓게. 오죽 선생이나 벽암, 육관도사는 얼굴이 알려졌으니 이번 일은 내가 나서야겠네. 내겐 홍사패가 있지 않은가.”

“언제 떠나시려구요.”

“내일이라도 당장! 김기자도 그리 알고 일을 추진하는 게 좋겠어.”

남악 수양관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엔 이름뿐이지만 청소년 수련장이 있었다. 이곳엔 인공으로 호수를 만들고 조경 공사를 그럴듯하게 꾸며 평소엔 신도교 각 지부에서 정신교육이나 수련 회장으로 이용한 곳이었다. 아직은 쌀쌀한 2월 중순이었지만 남도 지방다운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아 각 지부에서 온 48명의 지부장과 구원 3파의 대표격인 36명의 장로들이 도착 즉시 그곳을 돌아보았다. 수양관 안에 마련된 예배소에 모인 이들에게 구로다 회장은 상황이 좋지 않은 점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 동안 대한(對韓) 사업을 성실히 추진해 온 결과 이곳 남악리에 우리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한국 안에 또 하나의 일본을 건설하는데 차질이 없었음은 여러분도 잘 알 겁니다. 한국에 갑작스런 정치의 이상 기류가 형성되는 바람에 예기치 않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음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그 동안 여러분의 노고가 컷음에도 본부에서는 단 한 번도 여러분을 한자리에 모시지 못한 것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해 오던 중 오늘밤은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맘껏 회포를 푸시고 내일의 집회에 참석해 주기 바랍니다.”

구로다는 특유의 제스처로 신령을 부른 다음 내일의 집회에 아마테라스의 도움이 있기를 신에게 기원했다. 의식이 끝나자 기다리고 있던 방녀(芳女)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들은 마음에 맞는 사내들을 찾아 분방하게 움직였다.

“저는 게이꼬(京子)라 합니다. 얼마 전 만난 기억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