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3파는 열두 명의 장로나 수석 장로 제도가 똑같잖소?”

“그렇죠. 열두 명의 장로 회의를 통해 종단이 움직이고, 수석 장로의 말 한마디가 카리스마적인 힘을 갖는다면 이건 이단이며 사교(邪敎) 스타일이죠. 구원3파는 자기네들만이 신성시여기는 그림이 있어요. 음, 뭐랄까. 믿음이 강한 자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하느님으로부터 들림을 받는다’는 특별한 믿음이죠. 그래서인지 구원3파의 사무실엔 하늘로 들림 받아 올라가는 그림이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거든요. 날개 달린 천사들은 들림 받아 오는 무리들을 이쪽저쪽으로 안내를 하구요.”

김순원은 그러한 그림부터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자처럼 예쁘게 그려진 천사. 천사는 새처럼 커다란 날개를 등에 달았다. 과연 이러한 그림이 성경적으로 맞는 것인가?

어림없는 말이다. 천사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 그렇다면 중성인가? 이렇게 묻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우리가 구분 짓는 성(性)이란 지상에서의 생물적 속성에 불과하며 영(靈)은 성을 초월한 존재다. 그런 점에서 김순원은 이단들이 요란한 그림으로 치장하는 건 사교가 갖는 혹세무민의 속성 탓이라 꼬집었다.

“구원파 신도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이 종파가 위험한 것은 사교만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죠. 겉으로는 열두 장로가 회의를 통해 모든 일을 의논한다지만, 그건 명분일 뿐이죠. 사실 모든 일이 수석 장로 손에서 결정 나거든요. 수석 장로의 생각이 건전치 못하다면 교인 전체가 이상해질 수 있다는 거죠.”

“그런 점을 김기잔 언제부터 알았어요?”

“꽤 됐어요. 언젠가 말씀드렸을 거예요. 선배 기자들이 추적해 가는 문제가 있다구요. 바로 구원파 같은 사교들의 움직임이죠. 세상을 구원하는 건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하며 구원파에 입교해 헌금을 뭉텅뭉텅 내야만 세상을 제도할 큰 능력을 준다는 논리는 흥미 있잖아요. 사실 이런 건 별거 아니에요. 문제는 이런 교리 뒤에 깔린 복선이죠.”

김순원은 그 동안 조사해 왔던 내용을 다각도로 펼쳐 들었다. 물론 구원파 문제만은 아니었다.

“구원3파는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하면서 결코 기독교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교리와 너무나 다른, 혼음(混淫)에 대한 지저분한 논리를 합리화시키는 부분이 나오기 때문이죠. 이 교파의 문제점은 장로 회의에 있지만, 분명 누군가에 의해 지시를 받는다는 느낌이 다분하거든요. 경찰이 은밀히 내사에 들어갔다지만 소득이 있을지는 미지수예요.”

구원파로 알려진 이 종단에서는 말세의 구원을 앞세우며 대규모 전도(傳道)에 나섰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2월 25일을 기해 1차적인 신들림이 일어난다는 주장이었다. 그 장소는 메시아로부터의 계시가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것도 김순원은 덧붙였다.

박사주는 붉은색 띠가 붙은 테이프를 카세트에 꽂았다. 이내 문태일 소장의 육성 녹음이 풀어졌다.

<구원3파가 교세 확장에 나설 때 사용하던 무기는 바로 ‘천국의 언어’였습니다. 나는 종교 문제를 연구할 당시 그런 질문을 받았었지만, 과연 천국엔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이라 했는데 바로 이 천사가 한 말이 천국의 말이라고 봅니다. 그런가 하면 누가복음 16장 19절로 31절까지에 거지 나사로의 얘기에서 부자와 아브라함의 대화도 천사의 얘기가 될 것입니다.
많은 종교 연구가들은 천사의 말이 히브리말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추정일 따름이죠. 내가 생각하기로 천국의 언어는 세상에서 알고 있는 단어나 또는 카세트테이프 같은 것으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알 수 있는 그런 언어일 것입니다.>

카세트를 끄고 나서 박사주는,

“문소장의 주장은 다른 게 아닙니다. 바로 구원3파가 내세우는 천국 복음이란 것이 잘못됐다는 거죠. 그들은 천사의 말을 기록한 책자를 판매하는가 하면, 그 말이 [성경]보다 우위를 점하여 교인들을 엉뚱한 곳으로 끌어간다는 겁니다. 이른바 2월 25일의 휴거 설이지요. 문소장은 그걸 걱정하고 있었어요.”

“사실 종교단체의 집단적인 행동은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거든요. 문제는 교리 해석을 잘못했다는 것보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신빙성이 없고 믿음이 덜 가는 얘기를 믿고 신봉한다는 거죠. 더구나 도덕적인 규범이 파괴되고 믿음 안에서 혼음(混淫)을 강조하여 나와 너, 너와 나의 구분을 갖지 않게 하는 위험한 교리를 접목시켰다면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문태일 소장은 우려를 나타냈다. 박사주는 다시 카세트 스위치를 눌렀다.

<구원파니 방주파니 하는 종파의 교도들은 분명 누군가에 의해 조정받고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은 부분들을 한결같이 믿고 의지하려는 몸부림은 차마 보고 있기 민망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이 문제를 굳이 마상섭 대령에게 의뢰한 것은 특별한 이유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 그것은 집단행동이었다. 평생 모은 재산을 헌납하고 신의 부름을 받아 하늘로 둥둥 떠올라 간다는 꿈이 현실로 부서졌을 때 어떤 소란이 일어나겠는가? 하나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좀더 기다려야 한다는 여유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속았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충분히 집단  행동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박사주는 슬쩍 방향을 틀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잠시 접어 둡시다. 우선 김기자가 만난 심문기 씨에 대해 들어봅시다. 특별한 얘기가 있었습니까?”

“그 사람 스스로 죽는다는 문제에 대해 초연했어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는 표정이 아니었거든요. 그 사람이 그러더라구요. 머지않아 ‘케이 투(K-2)’ 프로젝트가 발동된답니다.”

“케이 투?”

“상상할 수 없는 대사건이라고 했어요.”

“나도 자네가 오기 전 그 문제에 대해 전화를 받았네. 저번에 침입한 히라다(平田) 말일세. 그 자를 오죽 선생님이 취조한 모양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자들이 취조한다고 될 위인들입니까?”

“방법이 있었겠지. 내 짐작엔 침술(針術)을 이용했을 것이네. 십이경맥에 침을 꽂고 고문하는 방법은 고대의 비방에서 자주 애용됐거든. 아마 그런 비방을 이용했을 것이야.

오죽 선생님은 두 가지 소득을 얻었다는구먼. 하나는 그 자의 몸에 지닌 홍사패(紅蛇牌)였네. 붉은 바탕에 푸른색 뱀이 치달아 오르는 모습이 새겨진 그 패는 신도교 교령에 해당되는 직급이라 했네. 본당이나 수양관의 1급지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아주 소중한 것이었네. 바로 이거야.”

박사주는 점상 위에 홍사패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케이 투(K-2)’ 프로젝트라 했다. 이 프로젝트의 관리 책임자는 쓰노다 기꾸오로 재일교포 2세인 김시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