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은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묵묵히 앉아 있던 사내가  운을 뗐다.

“저는 나중에 들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그런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넋이 빠질 정도였으니까요. 바로 생체 미라였거든요.”

“생체 미라요?”

“아주 끔찍한 일이죠.”

“그런 실험을 서울 본당에서 한 겁니까?”

“그전까진 신도원에서 했지요. 지금은 그곳을 빼앗겼으니 남악 수양관에서 하겠지만요.”

“지금두요?”

“지금이라고 달라질 게 뭐 있습니까. 그들의 움직임이 하나씩 밝혀지니 오히려 더 날뛰겠지요. 오래 전부터 신도원에서는 사람을 도구로 실험하고 있었어요.”

“그 실험으로 태자귀(太子鬼)인가 명돈(明圖)가로 상대의 혼을 받아들이기 위해섭니까?”

“그렇지요. 실험은 혹독할수록 신통력을 가져온다 했으니 아무래도 악랄한 방법을 찾아냈겠지요.”

한때 자신도 그 무리들과 합세했던 놀이에 대해 털어놓았다. 납치해 온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천천히 괴롭히며 죽이는 실험이었다.

“실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아 실험을 비롯하여 단수 실험, 감전 실험, 열탕 실험, 건조 실험 등등이죠. 이러한 실험은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칩니다.”

“기아 실험은 어떤 겁니까?”

“먹을 것을 전연 주지 않고 물만 먹입니다. 이렇게 고통을 주며 얼마나 사는가를 실험하죠. 선생님, 사람이 물만 마시면 최소한 60일에서 70일은 살거든요. 그런가 하면 다른 방에선 단수 실험이 한창이죠. 이것은 기아 실험의 반댑니다. 먹을 것을 주는 대신, 물을 주지 않는 거죠. 이렇게 했을 때 닷새째에는 얼굴이 붓고 일주일이 되었을 때엔 피를 토하며 죽었거든요.”

그렇다면 감전 실험은 어떤 것인가? 이것은 사람을 전기의자에 앉힌 다음 전기의 강도를 높인다. 그렇게 되면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새까맣게 타 버린다. 열탕 실험은 펄펄 끓는 물에 사람을 집어넣어 화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내, 그것으로 죽기까지 얼마나 지탱하는가를 살피는 실험이다.

마지막으로 건조 실험이다. 108개의 동목인과 관계있는 실험이라고 심문기는 말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을 의자에 묶은 채 건조실에 놓아두는 실험이다. 뜨거운 바람을 쏘이면 땀을 비 오듯 쏟게 되는데 건조실에 있으므로 순식간에 말라 버린다. 몸 안의 수분이 마르는 건 대략 15분이다.

그런 다음 점차 수분이 빠져나가 나중에는 미라가 돼 버린다. 체중이 60킬로인 사람이 건조 실험에 들어가면 결국 22％에 해당하는 13.2킬로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의 몸은 78％가 수분임이 증명된 셈이다.

이것은 관동군 화학부 제516부대에서 보내 온 자료에 의한 것으로, 분명한 이유는 삼합회 소속 간부들이 일본에서 온 무당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무당들은 예지력과 예언력을 기르기 위해 남녀의 혼백을 자신의 몸에 집어넣는 절차를 밟는다.

그것이 앞서 말한 명도(明圖)였다. 어린아이를 굶겨 죽여 그 영(靈)의 소리로 점치는 것으로, 보다 신통력 있는 무당이 되려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살해해야 한다는 섬뜩한 이유가 꼬리표를 붙었다. 그러고 보면 강유선 씨의 고유 번호인 0000067은 신패가 아닌 동목인일 가능성이 커졌다.

“제가 기자 선생을 만나려 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서울 본당에 있는 직원들 얘기로는 머지않아 ‘케이 투(K-2)’ 프로젝트가 발동된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대사건이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게 뭔지 기자 선생께서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스럽게 흔들리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날 때 비틀거렸다. 얼른 부축하는 김순원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난 뒷문 쪽으로 갑니다. 이곳에 있다가 몸을 피하십시오. 어차피 죽은 목숨이니 삶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은 없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당해도 미안해할 것은 없습니다.”

심문기는 신발 끈을 조이고 나서 뒷문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의 움직임과 함께 전후좌우에서 젊은이들이 그를 향해 다가가자 김순원은 정문을 향해 재빨리 뛰어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박사주가 정색을 하며 맞아들였다. 황극경세원 안엔 그와 민주아뿐이었다. 그의 앞에 놓인 점상(占床)에는 소포로 우송된 내용물이 있었다. 두 개의 테이프였다.

“웬 테이픕니까?”

“문소장이 보낸 것이오. 그 사람이 죽기 전 몇 마디 남긴 건데 나중에 김기자한테 주리다. 그것보다 ‘구원파’라는 기독교 단체를 아시오?”

“두 달 전, 선배 기자 분이 취재한 적 있어요. 왜요, 뭐를 알고 싶으신데요?”

“그 종파의 특성이 어떤 겁니까?”

“제가 알기론 기독교 단체에선 이단으로 판정한 지 오래거든요. 이 종파는 다른 이름으로 ‘구원 3파’라 하는데요. 신필(神筆) · 신시(神示) · 신성(神聲) 중 하나에 포함되어야 구원파라 할 수 있답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겠군요.”

“구원파는 오래 전부터 교파가 있었다기 보다 몇 년 전후 급조됐거든요. 신필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현신 하시어 하루 동안 일어날 여러 일들을 직접 글로 써 준다는 거죠. 물론 한글은 아닙니다. 아무리 봐도 알아보기 힘든 부호나 다름없는데 그들 말을 빌리면 하느님 나라의 글이라는 거죠.”

“흐음.”

“이 교파는 목사나 교주가 따로 없어요. 열두 명의 장로가 회의를 갖고 거기에서 의결된 대로 운영해 나갑니다. 물론 대다수 일은 수석 장로의 말 한 마디에 결정되지만요.”

신시(神示)라는 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현신이다. 모든 사람들이 마리아의 현신을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열두 명의 장로나 대표인 수석 장로만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신성(神聲)은 메시아의 말씀을 직접 듣고 전하는 것이다.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장차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수석 장로에게 하느님이 초단파 채널을 통해 직접 명령하는 것으로, 말세가 가까워진 이때 구원을 받으려면 오로지 이 종단에 입교해야 뒤탈이 없다고 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