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파장을 불러일으킨 김순원의 기사는 처음부터 이상한 문구에서 출발했다. 그는 자신의 기사에 ｢인생 경책(人生警策)｣이란 제목을 달았다. 제목은 그렇다 치고 그 아래쪽에 자잘하게 풀어놓은 수도승 같은 어투가 읽는 이의 마음을 묘하게 흔들었다.

｢일찍이 빅톨 위고는 이런 말을 했다. ‘칼이 붓을 못 죽이면 붓을 가지고 칼을 죽일 것이다’라고. 그런가 하면 영국 속담엔 ‘펜을 가지고 쓰인 것은 도끼를 가지고도 부수지 못한다’는 말도 남겼다.
나는 두 종류의 기사를 준비하면서 우리 인생사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그것을 나는 ‘인생 경책’이라 붙여 보았다. ‘경책’이란 글을 쓸 때 가장 요긴한 부분을 말한다. 그렇다면 인생에 대해 가장 긴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특히 지금 시점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필요하고 긴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이제부터 그 부분을 짚어 보고자 한다.｣

기사의 시작은 맨 처음 춘천에 지었다는 무전선원에 관한 것이었다.

｢우두산(牛頭山). 이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곳이 주원장의 할아버지 묘가 있는 전설 어린 곳이다. 이른바 ‘솟을묘’다. 고려 중엽 한 스님이 계란을 묻은 땅속에서 부화된 병아리가 튀어나왔다 하여 풍수학적으론 대귀지지(大貴之地)의 명당으로 알려진 곳이다. 전설의 진위를 떠나 이곳은 명당 중의 명당이다.｣

우두산 아래이고 보니 이런 곳에 묘를 쓸 때엔 소 입에 해당하는 자리가 명당이라는 구중지혈(口中之穴)이다. 멀리든 가까이든 넉넉한 산세가 아름답고 화천에서 80리를 끌고 와 맺은 혈자리기에 일찍이 신도교에서는 이곳에 신도들의 수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원을 만들고 운영해 왔다. 
근자에 이르러 신도교가 이곳을 폐쇄한 것을 놓고 여러 가지 구차한 얘기가 들린다. 즉, 정부에서 이 선원을 강권으로 압수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일부 신도교 교도들이 정부 청사 앞에 나아가 데모를 벌이는 등의 소란을 자행하여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신도교 교도들의 집단행동을 자제해 줄 것을 감히 요청하는 바이다. 본래 이 선원이 있던 자리는 그린벨트 지역으로 훗날 국민들의 레저 스포츠용으로 골프장을 만들 계획은 있었으나 전면 보류된 상태였다. 박정권의 상징인 ‘황소’를 상징할 수 있는 우두산. 이곳을 신도교에서 임대한 것은 15년 전이었다. 신도교 본부에 보관된 임대 계약서는 분명 15년 전의 계약서임을 확인했다.｣

비록 조그맣게 촬영된 것이지만 읽을 수는 있었다. 틀림없이 15년 전의 임대차 계약서 사본이었다. 두 번째는 오명계 터에 관해서였다.

｢우리나라 전당업(典當業)의 시조인 정태환 씨가 당시 국풍으로 불리는 풍수사에게 거금을 주고 구입한 곳이 지금의 장충동 안가다. 흔히 이 집은 ‘정곱추 터’로 알려져 있다. 가상법 상으로 아주 좋은 집터였기 때문에 정씨는 상당한 재력가로 군림한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집을 정부에서 구해 안가로 사용하게 되면서 식자들의 입살에 씹히게 된 것은 장충동 안가가 오명계 터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수학인들은 오명계 터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오경에 맞추어 울어대는 닭울음소리를 봉황으로 여기는 것은 너무 황당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되는 것처럼, 이곳이 정작 명당이라면 안가로 사용되기 전의 주인 K씨 집안이 멸문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삼형제 모두 사고와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그곳이 어떻게 천하제일의 명당일 수 있으며, 그곳에 터를 잡는다고 장차 군주가 된다는 속설은 아무리 접고 또 접어줘도 지나친 전설 한 자락일 뿐이다.

세 번째가 ｢해인을 찾아서｣라는 홍보물에 관한 건이다.

｢지금 나라는 어수선하다. 12. 12이후 군부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따갑고 정치인들을 보는 시선 역시 곱지 않다. 박정권의 18년간 독주가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은 여러 가지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건 공작 정치의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좋은 색깔의 그림을 그려내도 속임수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만다. 바로 그런 의혹과 곱지 않은 행동반경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