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후 거래를 위해 우선 5천을 준비했습니다.”

김순원이 무표정한 낯으로 되물었다.

“5천?”

“5천만 원입니다.”

김순원은 봉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준비된 보도 자료만 쑥 뽑아 들었다. 미우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버렸다.

“주신 자료와 지금까지 말씀해 주신 내용을 참고로 기사는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배려해 주신 돈은 눈물나게 고맙습니다만 받을 수 없습니다. 그걸 받으면 미우라 상은 확인서를 원하실 거고, 그때부터 전 발목을 잡힐 게 아닙니까? 더구나 미확인 기사를 내보낼 때는 그만큼 위험이 따르죠. 마씨들이 반발하면 나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게 아닙니까. 5천만 원은 도피 자금으론 부족하죠. 안 그렇습니까?”

아차 싶은 모양이었다. 미우라는 황급히 김순원이 일어나는 것을 막았다. 그는 즉시 밖에 있는 사내들을 불러들였다.

“어이, 밖에 누구 있나?”

잠시 전의 사내가 황급히 들어왔다. 미우라는 그 사내에게 귀엣말로 명령하며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서 돌아앉았다. 화급했던 조금 전과는 달리 그의 낯빛은 평온을 유지했다. 김순원의 행동에 얼마나 놀랐으면 손뼉을 쳐 불러들일 여유를 잊은 것이다. 검은 양복의 사내는 다시 돌아와 미우라 옆에 봉투를 놓아두었다.

“김기자, 다시 협상합시다.”

“말씀하십시오.”

김순원이 예측했던 대로 미우라는 준비해 둔 서류 봉투를 밀쳐 놓았다. 안에 든 내용물은 두 가지 사안에 대한 처리였다. 하나는 신문에 발표된 것이 동목인이 아니라 신도교 교도들이 선원을 출입할 때 사용되는 신분 증명용 신패라는 것을 밝혀 달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구로다 회장은 한일간의 경제발전에 우호적인 촉매 역할을 하기 위해 방한한 것이지 항간에 떠도는 것처럼 일본 무당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러한 두 가지 사안에 명예회복 시켜 줄 것을 확인서는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한 기사가 나갈 때까지 김순원에게 준 1억 원은 당연히 차용금이 되며 기사가 발표되는 것과 동시에 김순원은 1억 원을 변제할 의무가 없다고 써 있었다. 그리고 추가 항목이 있었다. 구좌 넘버였다.

“이건 우리가 조사한 마충길의 구좝니다. 정확할 겁니다. 은밀히 조사해 보면 입금자와 입금처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건 특별한 얘깁니다만, 이것까지 기사화 시키는 비용으로 1억 원을 준비했습니다만, 단서 조항에는 빼겠습니다.”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습니까?”

미우라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선선히 수긍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 마디 하겠습니다. 미우라 상과 유대 관계를 맺게 되어 고맙습니다만, 이것은 엄연히 어떤 사안에 대한 비즈니스지 나를 통째로 미우라 상에게 내놓은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게 무슨?”

“나는 엄연히 H신문사 사회부 기잡니다. 미우라 상과의 협상은 여기에 쓰인 내용에 국한하는 것이며, 향후 발표되는 신도교나 구로다 회장님에 대한 건, 또는 여타 내용에 관한 기사는 미우라 상에게 보고할 의무나 그것을 삭제시킬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즉, 미우라 상과의 계약은 보도 자료에 씌어 있는 내용으로 국한합니다. 이 점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미우라는 웃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으나 눈가에 어린 그늘은 결코 김순원을 만만히 다룰 수 없다는 아쉬움이 깔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