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과 오리

박일도 중위는 매부리코를 한 손으로 감아 내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봐요, 김기자. 빨리 말해 봐요. 우리가 가져온 내용대로 기사를 쓸건지, 목숨을 내놓던지. 이왕지사 틀어진 일이라면 혼자 죽는 건 바보잖소?”

사무실에서 나와 곧장 이곳으로 왔으니 아무래도 30분은 지났을 것이다. 잘해야 10시 40분 남짓이다. 겨우 3, 40분이 흘렀다면 흥정하기엔 이른 시각이다. ｢산동반점(山東飯店)｣이란 중국 음식점에 앉아 있을 시각은 앞으로 1시간 반이다. 싫든 좋든 점심시간 전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조바심이 난 걸까? 박일도 중위의 위협은 거세졌다.

“어떻게 하겠소? 우리가 준 소스대로 기살 쓰겠소, 아니면 이마에 콩맛을 보고 칠성판에 눕겠소?”

김순원은 실소를 깨물었다. 아직도 그는 여유가 있었다.

“박중위님, 신문사에 들어올 때엔 그만한 각오가 없었겠습니까? 일단 그 쇠붙이부터 치우고 얘기합시다.”

박일도 중위는 권총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처음부터 얘길 해보죠. 박중위님이 원하시는 게 뭡니까?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느냐 그 말입니다.”

“두 가지요. 하나는 신도원을 접수한 경위가 정당했다는 것과, 다른 하난 장충동 안가에 대한 가상법의 문제야. 여론이 시끄러워지니 우리 쪽도 내부 갈등이 심하다 그 말이오. 아시겠소, 김기자?”

“그게 왜 내 탓입니까. 모두가 당신네들의 실수죠. 방송국에서 더빙 중인 ｢해인을 찾아서｣가 언론에 유포되니 여론이 비등해진 것 아닙니까? 실종된 이동박이 기획자로 올라온 증거도 있어요. 그런데 무조건 아니라면 어떻게 합니까. 저를 완전히 핫바지로 보십니까?”

“허, 이 친구 봐라.”

“이것 보세요, 모든 일이 드러났는데 천하가 아는 사실을 내가 아니라 한대서 믿겠어요? 나를 미친놈 취급하지 않겠냐 말예요. 우리 신문사는 정신없는 놈 밥 먹이는 수용솝니까?”

“허어.”

“마충길 대령에게 전하십시오. 기자가 기사를 쓸 때엔 그냥 쓰는 게 아닙니다. 우리 회사 사시(社是)가 뭔줄 아십니까. ‘정론공도(正論公道)’예요. 있는 그대로를 떳떳이 알리자는 겁니다. 물론 그런 것은 있습니다. 인신공격이 아니라 기사가 나감으로써 데미지를 입는 경우죠. 제 입장에선 나름대로 보호해 드리려고 기사 작성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데 자꾸 이러시면.”

박일도의 인상이 험악하게 돌변했다.

“이 새끼 정말 안되겠구먼. 야 이 새끼야! 너 마충길 대령님이 아니었으면 진즉 내 손에 작살났어. 이게 윗전에서 봐주니까 럭비공 튀듯 함부로 튀잖아! 너 말이야, 지난번 ｢잡동사니｣ 칼럼에 오명계에 관한 기사 썼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어도 당신이 쓴 건지 다 알아. 그때 잡아다 가죽 벗기려다 참은 건 지금 같은 때 상부상조하자는 것 아냐.”

김순원은 아예 눈을 감은 채 딴전을 피웠다. 자신이 무시당한 것 같아 박일도 중위는 더욱 날뛰었다.

“이것 봐 김기자.”

“말씀하십시오.”

“당신 이러면 재미없어.”

“지금도 무척 재미없습니다.”

“이 새끼 나하고 장난 놀자는 거야 뭐야?”

“글쎄 도와주겠다는 겁니다. 기사를 그렇게 쓸 근거만 제공하라구요. 근거만 있으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기사를 써 드리겠어요. 근거를 가져오세요, 근거를.”

“히야, 이 새끼 완전히 웃기는 짜장일세. 좋아, 니가 이렇게 나온다면 한바탕 붙을밖에.”

“왜요, 중국집 주방에 끌어들여 튀겨 버릴려구요?”

“아쭈, 이게 말은 송나라 비단일세.”

박일도는 양복 윗저고리를 우왁스럽게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와이셔츠를 팔굽까지 걷어올린 채 김순원의 멱살을 거머쥐었다.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못한다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 나 말이야, 옷 벗을 각오 돼 있어. 알았어, 이 새끼야!”

박일도의 거친 행동이 누군가에 의해 저지되었다. 홀 안에 있던 마충길이 어느새 밖으로 나와 박일도의 팔을 잡은 것이다.

“그만 둬.”

“글쎄 대령님, 이 자식이.”

“그만두라니까. 김순원 기자라 했소?”

“그렇습니다.”

“난 마충길이오. 만나서 반갑소.”

“아무리 힘이 있다지만 이런 법은 없습니다 대령님.”

“그 점 사괄 하겠소. 정말 미안합니다.”

“됐습니다, 그런 사과 받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든 자료 보았소?”

“보긴 했습니다만.”

“얘기는 세 가집니다. 우리 간단히 끝냅시다. 이쪽에서 전라도에 소재한 신도원을 접수한 것은 개인적인 차원으로 보지 말란 거죠. 머지않아 골프는 서민 문화의 레저 스포츠가 될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 터를 조성했고, 그 전에 정부에서 임대 형식으로 빌려 신도교가 사용했다고 밝혀 달라는 겁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잖습니까.

둘째는 오명계 텁니다. 마상섭 대령이 유명한 풍수사로부터 권유 받은 곳이라지만 정작 그곳이 가상법상 명당인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곳에 살았던 전 주인은 집안이 폭삭 망했어요. 그런 일을 부각시키면 얼마든지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잖아요. 기사를 주무르는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고급 기사로 둔갑시킬 수도 있어요. 고집 부리는 진짜 이유가 뭡니까?”

“없습니다.”

“세 번째 역시 별거 아니오. ｢해인을 찾아서｣라는 홍보물이 더빙에 들어갔다가 일부 언론에 노출됐지만 그것은 전설을 다루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어요.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다면 이상합니다.”

“뭡니까, 이상하다는 것이?”

“문제는 ｢해인을 찾아서｣의 기획자가 실종된 사이비 기자 이동박이라는 의혹입니다.”

“자막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잘못될 수 있는 일이잖소. 그렇게 보아줄 순 없겠소?”

“…….”

“이봐요, 김기자.”

“조건이 있습니다.”

그제야 마충길의 낯빛에 혈색이 살아 돋았다.

“뭡니까?”

“쓰겠습니다. 마대령님이 원하는 대로 기사를 쓸 테니까 대신 저를 보호해 주십시오.”

“보호해요? 누가 김기자를 해치기라도 한답디까?”

“그거야 모르죠. 마대령님께서 제가 이용 가치가 없다고 믿으면 가차 없이 거세할 것 아닙니까. 거기에 대한 방비책이죠. 제가 그 세 가지에 대해 보호색을 칠 테니까 마대령님께선 면죄부를 주십시오.”

김순원은 면죄부에 대한 내용으로 들어갔다.
즉, ‘H 신문사 사회부 기자인 김순원은 1980년 정론공도에 입각한 기사 작성시엔 체포 또는 구금, 그리고 제3자 등의 청부에 의한 살인을 하지 않는다. 아무런 이유 없이 여타의 불이익을 당할 경우 면죄부는 언론에 공개한다’는 내용이었다.

상대가 불러 주는 대로 휘갈겨 쓴 면죄부는 곧 김순원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는 곧 뒷장에 끼적였다.

첫째, 신도원에 관한 건

둘째, 오명계 터라는 안가에 대한 건.

셋째, ｢해인을 찾아서｣의 홍보물에 대한 건.

이 세 가지 건수는 보도 자료 형식으로 마충길 대령이 가져온 것을 참조하여 기사화 시키되 부족한 부분은 채워넣는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위의 세 가지 건수 외에 새로 발견된 기사는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