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를 띤 단단한 물체는 예리하게 육벽(肉壁)을 치며 좌우로 요동했다. 똥똥한 몸집의 김말순으로서는 마치 자신보다 훨씬 연하의 남성을 희롱하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몸을 흔들 때마다 일어나는 기이한 느낌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밀어가고 내려오는 중에 그녀는 허벅지를 힘껏 조였다. 그녀의 몸속에 들어온 뾰족한 물체는 참으로 괴이한 감각을 전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반사적으로 엉덩이를 흔드는 김말순을 히라다는 가는 눈으로 웃어 주었다.

사실 히라다에게도 그녀의 움직임은 자극적이었다. 이제까지 상대한 아가씨들은 지극히 의무적인 몸놀림으로 시간을 때웠다. 그러나 김말순은 달랐다. 참으로 오랜만에 사내다운 사내의 힘을 받아들이게 되자 그녀도 믿기 어려울 만큼 몸을 흔들었다.

한층 높아진 비명과 신음이 조화를 이루었다. 그녀의 내부에 들어온 사내의 첨단에서 무언가 분출되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히라다는 감탄했다.

“정말 좋은 몸이오. 우리들의 인연이 계속된다면 언제까지나 함께 지내고 싶소만.”

그녀는 완전히 구름 위에 있었다.

“차암, 일임이라 했었죠. 하나 물읍시다. 요즘 우리 신도교에 대한 평판이 좋질 않죠?”

“확실한 건, 모르겠어요.”

“내가 교령 신분이지만 걱정되는 바가 많아요. 신도원을 한국 정부에 내놨으니 교도들이 당분간 집회는 못 가질 겁니다. 그래서 걱정이죠. 혹시 한국에 유명한 점집을 알아요?”

“점 치는 집이오?”

“내가 한국에 다시 온지 한 달밖에 안됐는데 이 일을 계속해야할지 어쩔지 알 수 없잖소. 비전이 없으면 본국으로 돌아가야죠.  할 일이 많거든요. 부모님의 가업도 이어받아야 하구. 내게 좋아하는 한국 여성이 생긴다면 더 없이 다행이구요.”

김말순은 멈칫거리며 황극경세원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제가 아는 점집이 있는데요. 어딘가 하면 광화문에서 사직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자꾸만 히라다가 되묻는 바람에 김말순은 아예 종이를 가져와 약도를 그려주었다. 그럴 때마다 감사해 하는 사내의 말에 필요없는 설명까지 세세히 덧붙였다.

“정말 고마워요. 점이란 다른 사람이 알면 효험이 없다면서요. 그러니 일임께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됩니다. 좋은 효험이 빠져나가면 안 되잖아요. 아시겠지요?”

김말순은 애정이 담뿍 담긴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따금 고양이 울음 같은 휘파람이 일어나며 창틀이 들썩였다. 그런데도 박사주는 일절 동요가 없었다. 다만 어느 누구건 오른쪽에 있는 정원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아니, 그곳은 벌써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16절지의 하얀 종이를 깔고 붓을 들어 먹물을 적신 채 이쪽저쪽으로 점을 찍고 선을 그었다. 그것을 기미꼬와 송학수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송학수의 눈짓을 받고 기미꼬가 점자(占字)를 뽑아 오른쪽에 놓았다. 석(碩)이었다.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송학수는 파자로 들어갔다. 석 자를 뽑아 오른쪽에 놓았다면 방위로는 동(東)이다. 동쪽은 박사주가 나가지 못하게 한 정원 쪽이다.

‘허어, 참으로 놀라운 일.’

송학수는 내심 감탄했다. 석(碩)이란 돌과 머리 혈(頁)로 쪼개진다. 기미꼬가 점자를 뽑아 오른쪽(동쪽)에 두었으니, 정원에 나가면 돌에 머리를 맞아 죽는다는 뜻이 된다.

‘지금 정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여전히 유리창 밖은 소담스런 눈이 내릴 뿐이었다. 송학수는 잠시도 밖에 나가지 않았었다. H신문 김순원 기자가 왔을 때 정원에 잠깐 내려갔을 뿐 종일 방안에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무렵 정원에서 박사주를 본 것 같았다. 그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붉게 물들인 한 뼘 남짓의 삼각형 기를 정원에 꽂고 있었다.

한동안 기가 꽂힌 간격을 걸음걸이로 재어보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방으로 들어와 김순원의 건너편에 앉았다.

“아마 내일쯤 손님이 올 거요. 모처럼 김기자가 돈을 좀 만질 수 있겠어요.”

“돈이라니오?”

“귀신도 매수할 수 있다는 돈 말입니다.”

김순원의 기색이 밝아졌다.

“어디서 돈이 들어온단 말입니까? 복권이라도 당첨되겠어요?  그러고 보니 이번 주는 복권도 안 샀잖아요. 아니면 누가 은행을 털어 내 방에 놓고 사라지기라도 합니까?”

“아침나절과 저녁에 올 것이오. 나서기 좋아하는 성깔 급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오전일 터이고. 그들은 어둠이 내리는 걸 좋아하지 않죠. 아침에 만나자는 전화가 오면 조건을 붙여요.”

“조건이라뇨?”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 한 가질 약조해 달라구요.”

“한 가지?”

“그건 자유요.”

김순원이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그러나 박사주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을 만났을 때 이유를 물으면 그렇게 말하세요. 신년 벽두에 보았던 점괘를 들려주되 올해 동안은 김기자 당신을 체포나 구금 또는 살인해선 안 된다고 말해요. 그러니까 김기자는 최소한 올해 동안만이라도 면죄부(免罪符)를 달라 하시오.”

“그렇게 말하니 금방 죽을 운이라도 되는 것 같네요?”

“본래 김기자 운은 거기쯤이었소.”

“예에?”

“더 살고 싶음 내 말대로 해요.”

김순원은 어이없다는 듯 송학수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송학수 역시 가타부타 말이 없이 빙그레 웃어보였다.

“오후가 되면 어디 있던지 김기자를 찾아낼 거요. 어차피 만나야 될 거라면 구태여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게 좋아요.”

김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손님은 꽤 큰 액수를 줄 거요. 내놓는 액수보다 더 받고 싶으면 한 번 튕겨 봐요. 그 배를 더 줄 거요. 그 돈은 전연 하자가 없으니 편하게 받아 장가 밑천으로 써요. 상대가 누구건 돈을 받지 않으면 김기자의 목숨이 위태로워요. 그러니 받으세요. 이왕 받을 바엔 많이. 아시겠소?”

박사주는 그 얘기만을 던지고 돌아앉았다. 그 돈이 어떤 쪽에서 오는지 송학수는 궁금했다. 그러나 직접 물을 수도 없는 처지여서 모처럼 ｢역리학원(易理學院)｣에서 날아 온 월간지를 하릴없이 펼쳐들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