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실실
김시우는 삼합회 간부들을 ‘쵸이스’로 불러 사태의 심각성을 짚어나갔다.
“신도원에서 4대 총령의 할복사건으로 마충길 대령의 입지가 좁아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신도원을 헌납 받는 것만으로 얌전히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 이유로 동목인(桐木人)이 영화배우 송현국의 주머니에 있게된 점을 지적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대목이 아닌 것 같지만 여기엔 상당한 지략이 숨어 있다고 설파했다.
“동목인 108개를 만든 것은 한국의 미륵 신앙을 근간으로하여 한국인(김시우는 중생으로 표현하지 않음)의 번뇌를 다스리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 삼합회 본부를 정여립의 생가가 있는 제비산(帝妃山)으로 정했던 적이 있습니다. 허나 그곳은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해 너무 눈에 띄는 곳이었기 때문에 부득이 남악리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새삼스러운 얘기를 왜 하는가에, 마사오와 마사끼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상념에 빠져있는 미우라 쪽을 흘끔거렸다. 김시우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108번뇌란, 눈 · 귀 · 코 · 혀 · 피부 · 뜻의 육근(六根)과, 이러한 육근의 대상이 되는 색깔과 소리, 냄새와 맛, 감각과 법(法)의 육진(六塵)이 상호작용해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에 대한 산출법입니다.”
예를 들면 이러했다. 육진이 육근을 접촉할 때 발생하는 좋거나(好), 나쁘거나(惡), 또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 아주 어정쩡한(等) 세 가지 인식 작용이 바로 3×6=18번뇌다. 이렇듯 좋고 나쁘고 어정쩡한 관계에서 즐겁고 기쁜 마음이 생기거나(樂受), 괴롭고 언짢은 마음이 생기거나(苦受),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는 상태(捨受)가 생겨난다.
이러한 삼수를 육근과 육진 관계에서 생겨나는 육식(六識)을 곱하면 역시 18번뇌다. 이와 같은 서른여섯 종의 번뇌에 전생 · 금생 · 내생의 3생을 곱하면 108번뇌다.
그러고 보면 동목인을 108개로 한 것은 한국인의 육체적 · 정신적인 모든 활동을 지배하려는 뜻이 숨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목인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루지 않은 채 옷칠이 잘된 상자 안에 곱게 모셔져 있었다.
이 점을 삼합회 간부들은 잘 알았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고 김시우는 지적한 것이다.
“매스컴에서 떠들고 있는 것은, 송현국의 주머니에서 나온 동목인 입니다. 그게 동목인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런 물건이 나왔다는 것만으로 우리에겐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겁니다.”
마사끼가 실눈을 뜨며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물건을 송현국에게 주었는지 조사해보면 알 일 아닙니까?”
“소용없습니다. 송현국은 자기 몸에 그런 물건이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를 불러들인 것은 곽성필이고 그 자는 마충길 대령의 촉숩니다. 그렇다면 답안 작성이 쉽지 않습니까.”
이번엔 마사오가 추궁하듯 물었다.
“그럼 마충길이 꾸민 겁니까?”
“그 자 외엔 동목인에 대해 관심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한데, 송현국이가 체포되던 날 H신문의 사회부 기자 김순원은, 동목인에 쓰인 사주가 수십 년 전 실종된 강유선이란 여인의 것이라 했거든요. 물론 우리 쪽엔 확보된 이름이지만요.
솔직히 말해 강유선의 동목인은 분실된 일이 없는데, 무슨 연유로 그 여자의 이름과 사주가 쓰인 동목인이 송현국의 주머니에 들어있었는지 분명치 않아요. 누군가, 분명 누군가가 우릴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거든요.”
“그 자가 마충길이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입니다.”
“짐작되는 인물이 있는가?”
“아직은 그렇습니다. 한 시간 전 교령한테서 연락을 취해 왔습니다. 두 명의 낯선 여인과 두 명의 군인이 신도원을 다녀갔답니다. 역경원 쪽과 저번 날 구로다 회장님께서 명도(明圖)를 부르시던 동굴에만 들어갔답니다. 여러 각도로 그들이 누군지를 쫒고 있지만 마충길 대령은 아닌 게 분명하답니다.”
미우라가 직선적으로 물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방도가 있습니까?”
마사오와 마사끼는 서로를 돌아볼 뿐 고개를 저었다. 대답은 김시우에게서 떨어졌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여기가 한국인 이상 마충길과 전면전을 편다는 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참에 물러나면 끝없이 추궁하며 밀어붙일 게 뻔합니다. 부득이 우리 쪽에선 사간술(死間術)을 쓸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미우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생각도 ‘사간술’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몸짓이었다. 사간술은 어떤 계책인가?
이것은 [손자병법]의 가장 아래 계책인 ｢용간편(用間篇)｣에 나오는 지략이다. ‘물이란 능히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어 엎어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이중성을 적절히 이용하는 게 사간술이다. 서로 공생해온 관계지만 이젠 마충길을 제거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역대의 병법가들은 간첩을 이용하되, 그 간첩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 제거한다. 이것이 현대판 ‘게임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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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