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자 일행이 신도원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정오 무렵이었다. 이미 출입이 통제되어 바리케이트가 처지고, 예배 보던 장소는 큼지막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동행을 자청하고 나선 마상섭 대령은 머쓱한 낯으로 더듬거렸다.

“윗전으로부터 지시 받진 않았습니다만 필요하시면 문은 따 드릴 수 있습니다.”

김송자가 가볍게 커트했다.

“아니에요, 됐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마상섭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가 동행하는 게 불편하시면 두 분이 돌아보세요. 전 반대쪽 역경원을 살피겠어요.”

마상섭은 품속에서 줄이 달린 호각 하나를 꺼내 게이꼬에게 건네주었다. 아직은 모든 게 드러나지 않았으니 위험할지 모른다는 세심한 배려였다. 게이꼬는 감사히 받았다.

“저는 저쪽으로 갑니다. 두 분 멀리 가지 마십시오.”

역경원 쪽으로 올라가는 마상섭이를 바라보다 김송자는 가져온 지도를 펼쳐 들었다. 그것은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한 설계도면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지도의 귀퉁이를 잡은 채 김송자는 완성되지 않은 건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 어디쯤인가가 집단으로 주검을 매립했다는 장소를 눈대중으로 훑었다. 십여 분쯤 경사진 곳으로 오르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게이꼬씨, 지도에 기표된 지점이 여긴 것 같죠?  저기 봐요, 동굴이 있죠. 동굴 아래쪽으로 약간 둥그렇게 일어난 곳이 생매장했다는 터일 거예요. 그렇게 보면 동굴은 일종의 피난처 구실을 톡톡히 했겠죠. 신도원에서 귀신을 부르는 방술(方術)을 펼칠 장소론 오직 저 동굴밖에 없어요.”

둘은 다시 걸었다. 녹지 않은 눈이 미끄러웠지만 전연 개의치 않았다. 20여 분쯤 오르자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 좌우엔 음식물 찌꺼기와 토막 난 양초 부스러기가 널브러졌고 햇살은 겨우 동굴 입구에 머물러 있었다.

게이꼬가 성큼 안으로 들어가 호루라기를 세차게 불었다. 소리는 긴 여운을 뿌리며 동굴 안에 공동(空洞)되었다.

“김선생님, 대략 3, 4십 미터는 되겠는데요. 호루라기 소리가 공명(共鳴)하는 것으로 봐서.”

“한번 들어가 볼까요.”

게이꼬가 앞으로 나서며 후래시를 켜자 옆으로 따라 걸으며 김송자가 말했다.

“게이꼬 씨는 제웅이 뭔줄 알아요?”

“직접 본적은 없지만 얘긴 들었어요. 일본에서 할아버지 한테요. 그 분은 시간만 있으시면 한국 문화에 대해 말씀하셨거든요.”

“그렇다면 설명이 필요 없겠네요.”

“아니에요 선생님. 한 번 들었을 뿐이지 기억하고 있진 않아요. 그게 동목인 같은 거죠?”

“제웅은 사람의 형상을 짚으로 만들었답니다. 나후직성(羅睺直星 ; 제웅직성이라고도 함)에 든 사람들의 액막이를 하기 위해 제웅을 만들어 길거리에 버리죠.”

남자는 10세 여자는 11세 때 처음 만드는 데 9년 만에 한 번 액막이를 해야 할 시기가 돌아온다. 나후직성에 든 사람은 제웅을 만들어 옷을 입힌다. 머리엔 푼돈을 넣고 이름과 출생년의 간지(干支)를 적어 정월 14일날 저녁 길가에 버린다. 이렇게 해야만 그해의 액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액막이 놀이가 언제부터 상대를 저주하는데 사용됐는지 몰라요. 시앗을 본 사대부 집이거나 후궁들이 요란을 떠는 궁 안에선 상대를 죽이지 못해 안달을 해요. 그러다보니 무당을 불러들여 못된 짓을 일삼잖아요. 저주하는 상대방의 제웅을 만들어 사지에 온통 유자나무 가시를 꽂아 신당(神堂)에 감춰두고 죽기를 빌죠. 그런가하면 사람 형상을 만들어 무수히 활을 쏘아 저주하는 방법도 있구요. 얼마 전 시작한 연속극에 그런 게 나오잖아요.”

물론 그 대표적인 것을 찾자면 [인현왕후전]이나 [계축일기]를 들 수 있지만 굳이 그 부분까진 건들이지 않았다. 얘길 나누며 대략 20여 미터 남짓 걸어갔을 때였다. 갑자기 매캐한 냄새가 밀려왔다. 석유 드럼통을 반으로 자른 듯한 화덕 안에 무언가 타는 냄새였다. 게이꼬는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곁에 있는 나무가지를 들어 안에 든 내용물을 휘저으며 경악에 찬 비명을 터뜨렸다.

“선생님, 동목인이에요!”

김송자가 달려왔다. 그녀는 드럼통 안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내려다보며 비틀거렸다. 게이꼬가 얼른 부축했다.

“이곳으로 잡혀온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엄청난 양의 동목인을 만들 이유가 없잖아요. 저의 어머니도 진즉 돌아가신 거예요.”

“아직은 몰라요 선생님. 타오르고 있는 나무 조각이 동목인인지 아니면 이곳을 출입하는 사람의 신분을 적은 것인지 아직은 모르잖아요. 그러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게이꼬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언제 나타났는지 몸집이 1백 킬로그램은 됨직한 사내가 그녀들의 뒤에 서 있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엔 충혈된 두 눈만 번뜩였다.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깎아서인지 분위기가 한층 음산했다.

사내는 눈알을 희번덕이며 아지 못할 소리를 토해냈다. 벙어리였다. 잔뜩 화난 얼굴로 두 여인의 퇴로를 차단했다. 김송자는  사색이 되어 몸을 떨었다. 게이꼬가 목에 건 호루라기를 잡아 입으로 가져간 그 순간 사내의 우왁스런 손길이 낚아챘다.

사내는 가슴을 치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러더니 재빨리 게이꼬의 팔을 잡고 상의를 잡아당겼다. 게이꼬가 구석으로 몸을 피하자 김송자가 드럼통에 타오르고 있는 장작을 집어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사내의 동작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사내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흥미롭다는 듯 키들거렸다.

사내의 눈이 더욱 타올랐다. 거의 반라가 된 게이꼬의 상체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김송자가 넋이 빠져있는 사내의 등에 불쏘시개를 휘둘렀으나 오히려 사내의 주먹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사내는 성큼성큼 게이꼬에게 다가가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몸을 만지작거렸다. 총성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마상섭 대령이 권총을 겨눈 채 다가왔다. 사내는 깜짝 놀라 일어서더니 어둠이 짙게 깔린 동굴 안쪽으로 달아나버렸다.

마상섭 대령의 부축을 받고 겨우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눈이 없는 풀밭에 쓰러져버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직도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김송자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마대령님, 그만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많이 놀라셨군요.”

“역경원 쪽은 어땠어요? 그곳에 사람이 있었나요?”

“아무도 없었어요. 급히 물건을 옮기느라 방안이 엉망이더라구요. 방안 구석에 빨간색과 푸른색 알약 두 개가 굴러다니길레 가져왔는데 성분을 조사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마상섭은 담배곽을 뜯어 알약을 싼 봉지를 꺼내보다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