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라와의 인연부터 김송자는 소개했다.

“아마 두 해 전일 거예요. 재동(齋洞)에 있는 저의 점집에 송수라 씨가 찾아오면서 인연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남자와 선을 보기로 했는데 같은 날 만찬회에 초대됐다는 연락을 받았답니다. 그때가 78년 5월이었죠. 5월 1일에 남산 3호터널이 개통되고 사흘인가 뒤였으니까 아마 5월 5일 어린이날이었을 거예요.”

이날 송수라는 맞선을 보기 위해 깔끔하게 단장하고 11시 30분쯤 김송자의 점집을 찾아왔다. 아침부터 세 사람의 운수를 뽑아준 탓에 입침이 말라 깔깔해진 상태였다. 화장실에 들어가 소금을 반 스푼 남짓 털어 넣고 양치를 하고 나올 때, 문득 화장실 문 위에 거미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누군가 화장실에 들어왔다가 거미가 머리 위로 내려오자 질겁하여 죽인 게 분명했다. 손에 든 것으로 휘두르자 거미는 쏜살같이 도망쳤을 것이다. 흔들흔들 줄을 타며 도망치는 거미는 화장실 문 위벽에서 잽싸게 기어올라가다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 녹이 슨 못으로 거미의 하복부를 관통시킨 기괴한 모습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보니 송수라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채 점자가 든 상자 속에서 조각 하나를 집어들었다. ‘아니 불(不)’ 자였다.

“저기요 선생님. 오늘 요 아래 한식당(韓食堂)에서 맞선을 보거든요. 이름은 송수라구요. 나이 서른에 그러려니 쑥스럽기도 하구 좀 그래요. 중소기업 하시는 분의 둘째 아들이라는데 사진으로 보니 인물이 훤하거든요. 이름은 유근일(劉根一)이구요. 나인 서른넷이래지요. 여기 사주가 있거든요. 선생님, 궁합을 봐주실래요.”

사내의 사주를 펼쳐들 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왔다. 무언가 명치끝에 얹힌 듯 무거워 그녀는 대뜸 점괘를 털어냈다.

“오늘 맞선 보는 자리에 나가지 못합니다.”

“왜요?”

“죽은 자와 맞선 볼 수 없잖아요.”

“예에?”

“송수라씨가 뽑은 점목(占木 ; 파자점을 치기 위해 뽑은 나무 조각)은 아니 불(不) 자인데, 이건 어느 쪽으로든 일이 성사되지 않는 걸 뜻해요. 불 자의 시작은 한 일(一)인데, 외람된 말씀 같지만 죽음(死)이 시작되고 삶(生)이 끝나는 획이거든요. 그러니 상서롭지 못해요. 더구나….”

“더구나?”

“잠시 전 내가 화장실에 갔을 때 죽은 거미를 보았거든요. 누군가 거미의 아랫배를 녹슨 못으로 찔렀더라구요. 그걸 보니 불길한 생각이 더 들잖아요.”

“불길해요, 뭐가요?”

“십이지로 운수를 헤아릴 때 죽음이 시작되는 첫획(한일 자를 말함)이 들어가지 않는 건 무슨 잡니까? 그건 묘죠. 즉,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가운데 한 일자가 들어가지 않은 건 오직 묘(卯) 자 뿐이에요. 이 글자는 송수라씨와 맞선 보는 남자 분께서 죽음을 당한다는 예시구요.”

“뭐라구요?”

“화장실에서 본 거미의 아랫도리에 못이 박힌 것은 이렇게 풀어낼 수 있어요. 남자는 여자와 달리 두 개의 불알을 가지고 있어요. 사내라는 걸 나타내는 징표죠. 만약 불알(卵)이 깨어졌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죽지 않겠어요.”

“예에?”

“난(卵) 자에서 두 개의 불알이 깨어졌다면 묘(卯)가 되죠. 오늘은 78년 5월 5일이니 병진월(丙辰月) 정묘일(丁卯日)이에요. 정(丁)은 정(釘)과 음이 같으니 더욱 불길하구요. 분명 맞선보는 분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납니다.”

김송자의 점사처럼 불길한 소식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12시가 됐을 무렵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지난밤 임진각 쪽으로 드라이브를 나간 유근일은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아침까지 술이 안깼다는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난폭운전으로 빚어진 사고로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라는 것이다. 김송자는 덧붙였다.

“송수라씨께서 다른 곳 약속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십시오. 액살이 풀렸으니 좋은 기운입니다. 좋은 인연은 그곳에 있습니다.”

이날의 만찬회에서 송수라는 노신사와 같은 인물을 만났다. 바로 노민우 장군이었다. 억지로 짜 맞춘 얘기라 해도 김송자의 점법은 신묘하다 볼 수 있었다. 한때 신문 방송에서 떠들었던 것처럼 그럴 능력이 있기 때문에 김송자라는 이름이 회자됐을 것으로 노민우는 믿었다.

“내 고충이 뭔지 아십니까?”

노민우가 점잖게 물었다.

“마충길 대령님 문제겠지요.”

“해결 방안이 있다면 말해 보세요.”

“그보다도 종교문제연구소 문태일 소장에 관한 얘기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문소장?”

“장군님께서는 문태일 소장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믿으시지요.”

“그렇소. 영화배우인가 누군가에게 피살 됐으니 행복한 죽음은 아니잖소. 그것 때문에 여론도 시끄럽고.”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문소장은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아간 거죠.”

“그게 무슨 말이오?”

“문소장은 죽음을 피할 방도가 없었어요. 이번 피습에 목숨을 건지면 모르긴 해도 온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화재로 몰살당할 운명이었거든요. 그런 이유로 󰡔격암유록󰡕에 대한 기사를 발표하였고, 누군가에 의해 자신이 살해되는 것을 기다렸었죠.”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민우는 바짝 긴장했다.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귀중한 생명을 그렇게 버려야할 이유가 뭡니까?”

“조금 전에 말씀 드렸듯, 그건 그분의 운명입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생을 마감한 거죠.”

“객사 당했는데도?”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비밀이 드러난 거지요.”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