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이사람 점점 큰일 날 소리만 하고 있어. 좋아, 어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봐. 도대체 마대령의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거야.”

“첫째는요 ｢해인을 찾아서｣라는 홍보물이에요.”

“그건 말했잖아.”

“한 번 더 짚고 넘어갈게요. 아빠는 사람을 너무 믿으세요. 그러니까 이 문젠 심각한 거예요. 아빤 그 사람을 군인들이 따르지 않는다지만 그건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

“마충길 그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오래 전부터 종교단체와 손을 잡았어요.”

노민우는 어이없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그뿐인가요, 2백대 기업을 주무르며 경영인들의 발목에 고무줄을 걸었어요. 필요에 따라 줄을 당기면 따라올 수밖에 없는 일종의 올가미죠. 박대통령이 혁명을 일으킬 때완 다르다는 생각 안드세요. 방송국에 있다보면 이런저런 얘길 많이 듣잖아요. 때론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흘러다니지만 모두다 그런 건 아니구요.

가끔 선배들은 그런 얘기를 해요. 앞으론 대통령에 출마한 후보들이 특정 상품을 내세울 시기가 올거라구요. 이를테면 축구를 잘 한다거나 또는 경제를 잘 안다는 것도 아름다운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는 것도 대선에 출마할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코미디언 출신이잖아요.”

“그건 빼고…, 마대령에 관한 것만 얘기해봐.”

“그분이 2백대 기업을 주무르고 있다는 건 아시죠?”

“그건 알아.”

“내일부터 그분의 비자금을 은밀히 조사해 보세요. 대사에 쓸 비용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유용하기 위해 만든 별도의 통장이 있을 거예요. 이번에 문제가 된 이기자 사건도 안가(安家)가 아닌 개인 사무실에서 벌어졌잖아요. 안가에서 해도 될 일이라면 굳이 개인 사무실을 열어야할 일이 없잖아요. 소문도 좋지 않는데.”

“신경 쓸 정돈 아니야.”

“그 사람이 일본 쪽과 손을 잡는데도요.”

“일본 쪽과 손을 잡아?”

“주식회사 무극에 의뢰했던 홍보물이 어떻게 미우라 클럽에서 제작했어요? 이상하지 않으세요, 새 시대를 맞이해 영웅이 출현하는데 그 홍보물을 일본인들이 제작했다면요. 이런 저런 자료가 그쪽으로 넘어간 게 아닐까요?”

“쓸데없는 소리.”

“내 말이 쓸데없다면 다행이죠. 하지만 아빠가 위험해 지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혹시 알아요. 내가 그 사람 가슴에 무엇이 들었는지 샅샅이 캐내올지. 허락해 주세요. 절대 아빠에게 누가 되는 일은 안 만들게요.”

“어허, 안된대두 그러누만. 이 사람아 마충길 대령은 자네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아. 허물이 드러난다 해도 섣불리 건들었다간 큰코 다쳐. 오죽했으면 ‘세상을 울리는 마씨 3인방’이라 했을까. 그들이 움직이면 지축이 움직인다는 말이 있잖아. 그만큼 어르신의 신임이 두텁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함부로 건들었다간 낭패를 당해.

얼마 전에 마상섭 대령이 어르신을 찾아가 정보부 김부장의 구명운동을 했어. 보통 사람 같았으면 곤욕을 치러도 한참 치렀을 거야. 근데 그냥 내보냈어. 대세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조치란 게지. 어르신이 뭐란 줄 알아?”

“뭐랬는데요?”

“철이 덜 든 것보다는 순수한 게 좋다시는 거야. 그러기 때문에 나서지 못하게 한 거야. 나는 자네가 다치는 게 싫거든.”

송수라도 슬쩍 물러났다.

“고마워요 아빠, 날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니. 그치만 이 말만은 해야겠어요. 저기, 마충길 대령은 노총각이잖아요. 한다 하는 여배우들이 그분과 줄을 대려고 난리들이에요.”

“그쪽도 신경 꺼. 그 사람 계집애 치마폭에 싸일 사람 아니야. 일과 유희는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야. 여자를 도구로 생각하는 타입이니 괜히 여론에 노출돼 상처 받고 깨질 이유 없잖아. 그런데, 자네 유식해졌어. 예전엔 안그러더니만 세상 돌아가는 사정이 밝아.”

“도와주는 분이 있거든요.”

“도와줘, 누가?”

“그런 사람 있어요. 그분이 그러더라구요. 아빠가 큰 자리를 차지하려면 걸림돌을 치워야 한다구요. 그 걸림돌이 마충길 대령이래요. 서둘러 장애물을 치우지 않으면 거기에 걸려 넘어진다는 거죠.”

“누가 그런 소릴 해?”

“믿을만한 분이죠.”

“글쎄, 누구냐니까?”

“아실 거예요, 김송자 여사! 저기 ｢매란방 철학관｣을 운영하는 김여사 말예요.”

“아, 티브이에 나왔던 여자 점쟁이?”

“지금 건너편에 있어요. 만나보실래요? 아니 만나보세요, 아빠에게 손해날 일은 없잖아요. 그분이 하는 얘길 들으시고 필요 없음 안 만나면 되잖아요.”

“언제부터 아는 사인가?”

“좀 됐어요.”

“우리 관곌 얘기했겠구만.”

“죄송해요.”

“좋아, 만나지. 회의실이 좋겠어. 대충 씻고 나갈테니까 준빌 해. 그림을 그리려면 자네가 화구(畵具)는 펼쳐야지.”

김송자는 대면한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얘기를 끌어갔다.

“이렇게 나선 건 제 어머니의 생사를 알고 싶어섭니다. 점괘로 보면 살아있음이 분명한데, 어찌된 셈인지 확신이 들지 않거든요. 제가 장군님의 고충을 풀어드리면 제 소원의 매듭도 풀어주세요. 그래 주실 수 있겠습니까?”

노민우의 답변이 선선했다.

“좋아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생사를 확인하는 문제인데 어려움이 있겠소.”

“감사합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