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목인

정월도 중순이 지났지만 이동박에 대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자 경찰의 무능을 조롱하던 매스컴은 그가 저지른 사악한 일에 앵글을 맞추어 집중 해부했다. 무당들에게 당한 선량한 홀아비들의 사연과 꽃뱀에게 물려 거액의 위자료를 지불하고 합의한 중소기업체 사장의 빗나간 러브 스토리도 한몫 거들었다.

그런가하면 성격파탄자적인 그의 이상성격도 가십의 대상이었다. 충무로의 어느 술집에 들어갔다가 서빙하는 아가씨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녀를 납치해 흑산도로 팔아넘겼다는 현대판 노예상인의 얘기였다. 이러한 보도는 직접 관계없는 시청자라도 분통을 터뜨리며 신문사와 방송국으로 항의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전형적인 악질 사이비 기자였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이러한 사이비 기자를,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간을, 오래 전에 지구에서 인간 제대시켜야할 인간을, 마씨3인방의 실세인 마충길 대령이 뒤를 봐주었다는 근거를 제시하자 민심이 출렁거렸다.

“나는 잘 모르죠. 언제나 마충길 대령과 어울렸응께요. 신년 벽두에 장민호 회장의 도요지에 쳐들어 간 것도 뭔 이유가 있기는 있을 것인디 그게 뭔지는 모르죠.”

이동박이 적을 둔 ｢스캔들｣ 잡지의 사주로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민사장은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설령 모가지가 달아난다 해도 당장 잡지사가 문 닫는 것은 막아야 했다. 그는 한술 더 떴다.

“긍께 뭣이냐, 이동박 그 친구 서랍에 이상한 명단이 있드라고요잉. 한 스무 명 되는디 유난히 장민호 회장님 이름 앞에 빨간 줄을 그어났더라고요. 으째서 그랬는지는 모르죠. 멀쩡한 사람 이름 밑에 빨간 줄을 쫙쫙 그어댄 것으로 보아, 아마 신년 벽두에 벌어진 그 난리가 분명한 듯 싶어요잉.”

여론이 들끓자 가장 곤혹스러운 쪽은 직속 상관 노민우(盧玟玗)였다. 은밀히 추진된 일이 예기치 않게 언론에 노출돼 긍정도 부정도 못하는 상태가 돼버렸다.

골치가 지근거렸다. 대책 마련에 부심했지만 어떤 대안도 마련치를 못했다. 밤과 낮이 없는 구수회의에 지칠대로 지쳐버릴 무렵, 중견 탤런트 송수라(宋繡羅)의 연락을 받았다. 두해 전, 우연히 안가(安家)의 만찬에 나갔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가까워진 사이였다.

“아빠, 충무로 파라다이스란 모텔에 와 있어요. 강변으로 가려 했는데 아무래도 턱밑이 편할 것 같애서요. 3층 특실이에요.”

서른을 두해 전에 넘긴 송수라는, 노민우와는 2십년 이상의 차이가 났다. 그런데도 한 번 만난 후 알게 모르게 밀회를 거듭해온 것은 노민우의 남성다운 파워 때문이었다.

“전, 언제까지 아빠만 해바라기 할래요. 나중에 일이 잘 되면 못 본체 마세요. 아셨죠?”

응석을 부리듯 착 감겨드는 그녀의 애교는 세파의 시끄러운 소란을 잊게 했다. 한차례 뜨거운 늪 속에 잠겼다가 어렵사리 빠져 나오자 사지 육신이 녹신녹신하게 풀어져 버렸다. 원하는 걸 마음껏 포식했을 때의 느긋한 포만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한동안의 평안이 송수라가 눈치 없이 떠벌이는 바람에 깨어져 버렸다.

“이동박기자가 실종 됐으니 당분간은 괜찮겠지요.”

“무슨 소리야?”

“마충길 대령 말예요.”

“그렇겠지. 아무리 여론이 지지고 볶아도 아니라고 오리발 내면 그만이야. 잠시 소란스러울 뿐 별건 없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노민우의 얼굴엔 불안한 그림자가 깔렸다. 요즘 같아서는 일거리도 많은데다 머리까지 복잡하다. 그렇지 않아도 군부의 움직임을 심상치 않게 주시하고 있는 학생들의 시선에 시비꺼리를 만들어 준 게 마음에 걸렸다. 어차피 건너온 강이었다. 별거 아니라 믿었던 모래사장에서 수없이 깔린 발목지뢰를 만난 격이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궁지에 몰린 대마가 활로를 찾을 그런 묘수가 없을까? 노민우는 부질없이 그 생각으로 골똘했다.

“저어, 장군님.”

노민우가 얼굴을 찌푸렸다.

“새삼스럽게 장군은…, 평소대로 해.”

“장군이라는 호칭이 싫으세요? 그럼 예전처럼 아빠라 부를까.”

“그게 편하잖아. 듣기에도 부담감 없구.”

“피이, 딸하고 그거 하는 아빠도 있어요.”

송수라가 까르르 웃었다.

“마충길 대령, 요즘 마음고생이 심해. 이럴 때 일수록 뭔가 위로가 될 일이 있어야 하는데 안타까워. 날이 새면 언론에서 때리는 통에 어르신의 심기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야.”

“그렇게 애틋하고 안타까우세요?”

“우리가 하루이틀 지내온 사인가. 전우야, 전우!”

“어머, 언제 전쟁 났어요?”

송수라가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노민우는 실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사내 쪽을 흘끔대며 말문을 열었다.

“사실 이런 얘긴 안하려고 했는데요. 너무 너무 괘씸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요. 아빠, 주식회사 무극이라는 곳 아시죠? 서미애라는 여사장이 있는 곳 말예요.”

노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서 이번에 홍보용 CF를 만들었대요. 제목은 ｢해인(海印)을 찾아서｣구요. 그 시에프에 등장한 탤런트들은 모두 신인이거든요. 그걸 찍기 위해 무극이라는 회사에서 신인들을 뽑았다는데 출연료는 엄청 쎄더라구요.”

“그거야 홍보 시에프니까.”

“편집까지 끝났는지 방송국으로 릴을 가져왔더라구요. 신인탈랜트들 목소리가 너무 가늘어 더빙하려구요. 그래서 우리들도 잠깐 봤었죠. 3십분짜리와 5십분짜리였는데 자막엔 기획자가 이동박으로 나왔더라구요.”

“그 사람 이름은 뺐을 거야.”

“더빙한 선배 언니가 그러더라구요. 홍보물 내용으로 보면 마충길이란 사람 꿍꿍이속이 있대나봐요.”

“무슨 말이야?”

“해인이란 건 용왕의 도장이래요, 그 도장은 무엇이든 소원을 이룰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거든요. 그런 점으로 볼 때 마무리가 묘하다는 거예요. 해인이라는 도장을 어르신이 마충길로 보이는 사람에게 맡기고 신선 세계로 떠난다는 건데요. 내용상 어르신이 정권을 잡으면 자동적으로 차기 정권은 마충길에게 돌아간다는 거죠. 다시 말해 어르신이 천하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면 자신은 제2인자가 된다는 거죠. 물론 홍보 시에프닌까 드라마틱하게 짜여 있을 테지만 간단히 말해 이런 정도죠.”

“그럼, 마대령이 흑심을 품고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요.”

“에잉, 그건 아니야. 나도 ｢해인을 찾아서｣의 시놉시스 봤어. 그런 내용 아니야. 어르신도 그렇고 나도 싸인해 줬어. 뭐 대충 보긴 했지만 이상한 곳은 없어.”

“중간에 손질했다면요?”

“그렇다면 모르지.”

그러나 이내 노민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아 신경 꺼. 어떤 공식에 의해 계산적으로 탁탁 떨어지는 거라면 몰라도 그건 아니야. 사내로서 그런 욕망이 있다 손치더라도 한두 사람 가지고 될 일이야? 사람이 없는데 뭘 어떻게 해? 장군들을 무작위로 잡아들여 강제로 전역시키고 어떻게 해보겠다는 거야? 도저히 불가능해.”

“아빠, 그렇게만 생각지 마세요.”

“어허, 이런 사람 봤나.”

“지금 여론을 보세요. 12.12 이후 군부의 흐름은 터진 둑이라잖아요. 지금은 그곳을 강하게 틀어막고 있지만 정상적인 건 아니에요. 아빠쪽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자꾸만 삐꺽거려요. 학생들의 데모도 그렇고 그 흐름에 식자 층이 자연스럽게 합세하는 것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아빠를 만나 지극 정성으로 모시곤 있지만 저 역시 바램은 한가지예요. 오로지 아빠가 잘 되는 거죠.”

노민우는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그의 말에 약간 여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