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하산(蒼霞山). 지도에 나와 있는 것으로 본다면 해발 150미터에 불과하고, 산세로 보면 영락없는 지네 산이다. 이 고장에 사는 김씨 일문에서는 집 옆으로 느티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지네 산까지 이르게 했다. 지네는 습지에 사는 동물이므로 햇빛이 쨍쨍 쬐는 것보다 그늘이 져야 편안하다는 것을 염두에 둔 배려였다.
지난번 보았던 대감묘를 창하산 중턱 어림으로 표시하며 이동박은 눈내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출발하기 전 등정에 필요한 로프며 등산 장비 등을 만만히 구입해 배낭에 넣어 두었다지만 그래도 확인해 보았다. 이상이 없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틀었다. 사이클이 맞지 않아 칙칙거리는 소리가 한곳에 이르러 음색이 맑아졌다.
“정오 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종교문제연구소 문태일 소장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이틀간의 탐문 수사를 통해 사고 당시 현장을 배회하던 세 명의 괴청년에 대한 신원 파악에 나섰습니다. 경찰이 쫓고 있는 유력한 용의자는 신도교 서울 본당의 행동 대원 심문수 씨, 방주교회 교인인 이정수 씨, 그리고 영화배우 송현국 씨 등입니다. 이들은 사건 당일의 행적이 묘연한데다….”
이동박은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이런 병신 새끼 기껏 한다는 게 그 정도야!”
창 쪽으로 머리를 두른 채 졸고 있던 청년이 깜짝 놀라 깨어났다.
“나보고 한 소립니까?”
“아니오. 잠을 깼다면 미안합니다. 아니죠,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했잖아요.”
이동박은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중 나오기로 약속한 상균 씨가 보이지 않는다. 십분 남짓 기다리다 그 집으로 전화를 넣었다. 반가워하는 상균 씨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이구,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마중 나가려고 나서다가 대문간에서 넉장구리를 했지 뭡니까.”
“예에?”
“얼마나 쎄게 넘어졌는지 엉치 뼈가 부러진 것 같아 걷지를 못합니다. 집구석에 오래된 파스가 있길레 붙이긴 했습니다만 온 삭신이 들쑤셔 꼼짝 달싹을 못하겠네요.”
“할 수 없죠.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눈길에 조심하시오잉.”
상균 씨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아차 싶었다. 이 눈길에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들어오는 길에 파스라도 몇 봉지 사가지고 오란다는 걸 깜빡한 것이다. 약간 몸을 틀었는데도 엉덩이뼈가 토막난 것처럼 고통이 몰아치자 금방 죽는다고 뒤로 나자빠졌다.
세 시간이 넘어서야 이동박은 상균 씨 집에 도착했다. 중간에 잠깐 어디 들렸다고만 할 뿐 자세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상균 씨 부인은 소고기 세근을 내놓는 이동박을 향해 환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안해도 될 것인디 뭣할라고 사왔으까잉.”
“과일을 좀 사 오려고 했습니다만 보다시피 들고 올 방법이 없어 그냥 왔습니다. 이해하십시오. 그리고 이거 받으십시오.”
이동박은 20만 원이 든 흰 봉투를 내밀었다. 겉으로 사양했지만 상균 씨 부인의 입은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한 이틀 묵을 생각입니다만 폭설이라도 쏟아지면 며칠 늦어질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경비는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별말씀 다하시네요.”
상균 씨는 기회라는 듯 느긋하게 소리쳤다.
“임자. 거 닭이라도 한 마리 잡으소. 서울 손님 술이라도 한잔할라믄 안주 거리라도 있어야제.”
부인의 장단이 척척 맞았다.
“그러잖아도 두어 마리 잡을랍니다. 애기들도 한 마리 죽 쑤어서 멕여야지요.”
부인이 부엌으로 들어가자 상균 씨는 이동박을 끌어당겼다.
“이쪽으로 좀 오시오. 이놈의 장작불은 나무가 탈 때만 지글지글 끓는당께. 윗목은 찬께 이쪽으로 오시오잉. 그라나 저라나 마을까지 오는 동안 무지하게 춥지라우잉. 뭔놈의 날씨가 하루는 뺀하니 햇빛이 비치더니 오후엔 내립다 퍼붓지 뭐겄소. 하긴 그놈의 무당이 날궂이 하느라 동네방네 갈고 댕기니 하늘도 생난리 안 치르겄소.”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상균 씨는 투덜거렸다. 봉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한 분이 구부정한 몸을 좌우로 흔들며 ‘지노기 굿’의 사설을 중얼대고 있었다. 상균 씨가 봉창문을 거칠게 닫으며 퉁을 놓았다.
“아따, 저렁께 날씨가 좋겄소. 맨발로 생난리를 치고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니 영락없는 날궂이제잉.”
토종닭을 안주 삼아 몇 잔의 술로 뱃속을 헹군 후 이동박은 궁금한 것을 물어 왔다.
“저기 오선생님. 예전에 둘러봤던 대감묘 말입니다. 그 묘에 어느 분이 묻힌지 아십니까?”
“글씨라우. 그 전에도 말씀드렸듯 난 산으로 쏘다닌 것은 별로란께라우. 우리 아부지야 들여놓은 밑천이 있응께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남의 묏자리를 파 들어가 안에 든 걸 훔쳐내 온 사람들 보짱이 을메나 큰지 감도 못잡겄습디다. 사실 그것만이래면 장씬지 장회장인지를 미워하지 않지라우. 장씨가 폐앓이하는 작은 삼촌을 데려 갔는데 지금까지 소식이 없응께 더 미웁지라우.”
상균 씨는 작은 삼촌이 실종되기 전에 있었던 얘기를 잠깐 들려주고 나서 핏대를 세웠다.
“그라니께 사람이 돌아버리제라우. 몸이 아픈 꼬맹이도 없어져 버리고 아이를 데리고 나간 장씨도 종적을 감췄응께 으떻게 생각하겄습니까. 필경 장씨가 데리고 튀었다고 생각했지라우. 언젠가 우리 아부지가 장씨를 찾아갔는디 그런 얘긴 쏘옥 빼고 돈몇푼 쥐어 줬다 안 하요. 그러니께 열불이 날밖에요.”
이동박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오선생님, 혹시 귀신 단지라는 게 뭔 줄 아십니까?”
“귀신 단지? 아, 그것이사 무당들이 잡귀들 혼을 잡아넣는 항아리 아닙니까.”
“보신 적 있어요?”
“보기는요, 그런 항아리가 있다는 말만 들었지라우. 혹시 모르것소야, 그 무당 최씨 집에 가면 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겄구만잉. 아하, 거기도 읎겄소! 가만 생각해 보니 그 집은 불이 났었제잉. 최씨가 즈그 집에 불을 놓아부렀응께 그 귀신 단지가 있다 해도 타 부렀을 것이구만잉. 하이구 이제 늦었으니 그만 잡시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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