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이 훌쩍 지나갔다. 최씨는 한밤중에 장민호에게 달려왔다.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비몽사몽간에 꿈을 꾸었는데 3대 조부가 나타나 비방을 일러주었다고 기색이 환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요?”

“다른 게 아니고 말이시. 으째서 우리 조부는 어린애를 데려 오라고 했는지. 그걸 모르겠단 말이시. 저기 말이여, 오서기 조카 금동(金童)이를 데려오면 안 될까? 이제 아홉 살이지만 그놈 배짱이 이만저만 아니라는디.”

“뭐에 쓰게, 아일 데려와?”

“난들 아나. 조부가 현몽하여 데려오라니까 그런 거지. 이봐 장씨, 하늘도 꾸무럭 한 걸 보니까 오늘 지나면 장마 질지 모르겄어.  오늘밤에라도 일을 끝내는 게 좋겠어. 모처럼 군용 후라쉬도 구했으니까 말이어.”

장민호는 별수 없이 금동이를 데려왔다. 보통 아이라면 무서워 뒷걸음질 쳤을 것이지만 금동이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걸음걸이가 토끼처럼 날렵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무당 최씨는 대감묘 아래 바짝 엎드려 있었다. 그는 조부가 알려줬다는 부분을 호미로 긁어 대며 이따금씩 힘을 가해 내려쳤다. 메마른 하늘에 물기가 비치고 한두 방울 비가 떨어졌다. 이쪽 저쪽으로 후래시를 돌려 대던 최씨가 탄성을 터뜨렸다.

“출입구를 찾았다!”

장민호와 금동이가 다가갔다. 최씨가 찾아낸 출입구는 경사 각도가 상당한 곳으로, 봉분으로부터 10여미터는 좋이 떨어진 곳이었다. 출입구는 네모난 오석으로 덮여 있었다. 그것을 들어내자 겨우 어린애가 출입할 만큼의 공간이 생겨났다. 최씨는 지하 공간을 후래시로 비춰 보다 금동이에게 말했다.

“네가 내려가야 쓰것다. 입구가 호리병 마냥 이 모양이니 어른들이 들어가겄냐. 어쩔래?”

금동이는 호기심 짙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해간 밧줄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밧줄을 내려뜨린 깊이로 보아 대략 3미터 남짓은 돼 보였다. 안으로 들어간 금동이가 소리를 질렀다.

“최씨 아저씨, 뭐가 많이 있어요. 칼도 있구, 방패와 노리개, 항아리, 도자기 밥그릇…, 없는 것이 없네요. 여기 돈도 있어요. 옛날 돈이오!”

최씨의 눈빛이 빛을 뿜었다.

“금동아, 혹시 까만 항아리 없냐?”

“까만 항아리요? 가만 있어 봐요, 안 보이는데요.”

“그럼 말이다, 줄바가지를 내려 줄 테니 그 안에 있는 것을 바가지에 담아 올려. 알것냐?”

최씨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비춰 보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그의 눈에 이상한 그림 하나가 들어왔다. 그것은 뿔이 돋은 구렁이였다. 구렁이는 혀를 날름거리며 최씨가 들이민 머리를 향해 다가왔다.

“아악!”

갑작스러운 비명 소리에 장민호 역시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최씨의 머리가 빠져나온 그곳에 뿔 돋힌 구렁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엉겁결에 물러앉으며 엉덩방아를 찧은 장민호와는 달리, 최씨는 위쪽에 놓아둔 오석으로 출입구를 막아 버렸다. 서둘러 흩어진 흙을 쓸어 근처를 다독거리자 줄기차게 비가 쏟아졌다.

살려달라는 소리가 꿈결처럼 희미하게 들려 왔다. 금동이의 울부짖음이었다. 그러나 최씨와 장민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음질쳤다. 두 사람의 뒤통수엔 금방이라도 구렁이 머리가 달라붙을 것만 같아 소름이 쫘르르 흘렀다. 50년이 훨씬 넘은 옛날 일이었다.

박일우의 물음이 조심스러웠다.

“그 후, 고향에 가지 않으셨습니까?”

“갈 수 없었지. 언젠가 오필선이가 소문을 듣고 찾아온 모양이지만 만나진 않았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정공칠 씨완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두 분이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회장님의 업무는 그분이 도맡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네.”

“어떤 인연입니까?”

“정실장 부친을 본 적은 없지만 난 소문을 들어 아네. 내가 무라야마 패거리들과 도굴에 손을 댔을 때 전국 어딘들 안 가본 곳이 있었겠는가. 우연히 지리산 어디를 갔는데 정실장 부친이 운영하는 생사탕 집을 보게 됐었네. 물론 그 당시엔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던 때였지. 사람들이 주인을 보고 정구렁이라 그럽디다. 이유를 물으니 하루라도 뱀을 먹지 않으면 몸이 득신거려 견딜 수 없다는 거요. 하긴, 몸에만 맞는다면 생사탕 먹는 것도 괜찮을 것이오만.”

정상필은 이미 식욕을 잃고 있었다. 한 켠에 놓인 양주병을 들어 물컵에 5분의 1쯤 따라 입안을 적셨다.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회장은 잠시 사이를 두고 얘기를 이어갔다.

“당시는 그런 인연이었을 뿐이었네. 그러니까 그때가 언제더라. 네 해전이던가? 일본의 아카다 컬랙션에 나온 월산대군의 태 항아리를 감상하고 돌아온 날이었지. 언론사를 자청하고 전화가 걸려 왔었네. 누구냐 물었더니 금동이 조카라지 뭔가. 그러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안 그렇겠소?”

박일우는 선선히 받아들였다.

“그렇겠군요.”

“그래서 만났는데 무슨 주간지의 부장으로 있더구만. 그때 정실장은 내게 기사를 보여줬어. 두 분도 잘 아는 ｢서삼릉 미스터리｣였네. 상중하로 나뉘어진 기사는 일제가 서삼릉에 태실을 조성한 이유라든가, 또 태실을 조성한 후 본래의 태호를 쓰지 않았다는 점 등을 세심히 다뤘더라구.”

얘기를 하는 도중 장회장은 금동이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정공칠은,

“제 아버지는 지리산 자락에서 뱀집을 하는 정구렁이란 사람이에요. 어머니는 몸이 약해 하루 넘기기가 고달픈데 아버진 구렁이를 달여 먹은 탓에 피부는 허여멀쑥하고 기력은 넘쳐흘렀어요. 전 이런 부친이 싫어 외갓집에서 컷거든요. 숫기가 없어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금동이 삼촌에 관한 얘기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들었어요. 몹시 활달하고 마음이 여렸는데 폐가 약하다고 했어요. 외갓집은 이상하게 집안사람들이 폐가 약했답니다. 모두 그런 건 아니구요. 식구 가운데 반쯤 그랬다는군요.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제게 부탁을 했어요. 건너 마을 장씨가 초저녁에 데리고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았다구요. 몸이 부실하니 어디 가서 요양이라도 하는가 싶었지만 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사실 금동이 삼촌에게 그날 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