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경에 도착한 박일우 일행은 곧장 황극경세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오죽 윤사달과 벽암, 육관도사 송학수가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소기의 목적은커녕 전연 소득 없이 돌아온 탓인지 기색들이 곱지 않았다. 윤사달이 위로했다.

“구로다가 신도원을 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네.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을 불러들여 명도(明圖)를 삼으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네. 그뿐이 아닐 게야. 그 자가 평소 잘 쓰는 동목인으로 혼령들을 불러 모았지만 다스릴 여력이 없었을 거네. 그러다보니 집회고 뭐고 때려치울밖에 도리 있겠는가. 가만, 그러고 보니 우리 기자 양반도 꽤 고생을 했겠구만.”

벽암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문소장에게 연락이 되지 않으니 큰일입니다. 혹시 변이라도 당할까 걱정입니다.”

윤사달의 말이 섬뜩하게 떨어졌다.

“그 사람 명수(命數)는 진즉 끝났네. 예전에 내가 일러줬어! 그걸 알기 때문에 그런 기사를 내보냈을 테지만. 사람이면 어느 때든 죽게 돼. 어떤 모습으로 죽느냐가 중요하지.”

김순원은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그 옛날 점쟁이들의 일화에, 앉아서 백 리 밖을 보고 가만히 앉아 오늘 일어날 일을 짐작한다고 했다. 그같은 일을 김순원은 직접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요즘에는 하도 이방 종교가 설쳐대니 나도 그쪽으로 비유해야겠구만. 문소장의 죽음은 좋은 옥토에 떨어진 씨앗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걸세. 그의 죽음은 열배 백배의 값어치가 있을 것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윤사달 역시 심기가 고르지 않은 듯 헛기침을 몇 번인가 뽑아냈다. 그는 품안에서 붉은 주머니를 꺼내 김순원에게 건네주었다.

“이걸 분석해 보게. 반드시 특종을 쓰게 될 걸세.”

라디오를 켜자 예상했던 뉴스가 흘러나왔다. 종교문제연구소 문태일 소장이 집 앞에서 괴한의 칼에 찔려 숨졌다는 것이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문소장이 피격 당할 때 근처에 여러 명의 괴청년이 모여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하루 전에 문소장이 발표한 [격암유록]에 대한 기사 때문으로 추정하고, 이 사건이 계획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연한 듯 보였지만 윤사달의 말을 듣고 있자니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이번 고비를 피하면 아주 고약한 죽음을 당하네. 그래서 비방을 만들지 않았어. 그 사람 혼인할 때에도 궁합(宮合)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지. 이번만큼은 보기 좋게 간 거야.”

송학수가 생각났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가만, 이렇다니까! 요즘엔 어찌 된 게 정신이 없어. 이보시게, 박사주! 정읍에서 연락이 왔었네. 오상균이라는 면사무소 직원인데 오늘 내일 사이로 이동박이란 사람이 내려온다는 구만. 아주 긴요한 일이라는데 물론 알고 있겠지.”

“알고말고요. 극악한 짓을 저지르면 그만큼 보응 받는 거죠. 그자도 이 세상에 있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세상 참 재밌어요. 어떤 사람은 죽은 후 세상이 시끄럽고, 또 어떤 이는 세상을 떠나는 데도 배웅해 줄 사람이 없으니.”

아는지 모르는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김순원은 이상한 표정으로 좌중을 휘둘러보았다.

                                             
                                              함정

“정공칠 실장을 만난 건 실로 우연한 기회였네. 하늘이 속죄할 기회를 주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게요. 죄 많은 이 몸이 그나마 하늘에 머릴 두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만났기 때문이었을 게요.”

박사주 일행이 이천의 도요지를 찾아갔을 때 장민호 회장은 그 말부터 꺼내 들었다. 장회장은 그들이 찾아온 목적을 듣고서야 비로소 안도하는 기색으로 그런 말을 꺼낸 것이다.

“이 세상엔 혼자서 알고 있기엔 희한한 일들이 많아요. 마호(魔壺)도 아마 그런 겁니다. 이 얘기를 하자면 길어요. 어쩌면 나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야 될지도 모르니까. 정실장 얘길 하기 전에 이 얘기부터 하는 게 순서라 보오.”

장민호의 나이 스물셋일 때라 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박수 무당 최씨가 어느 날 그를 찾아왔다.

“이보게, 나를 좀 도와주게. 대대로 우리 집안은 내림 무당이 아니었는가. 다섯 대에 걸쳐 무업을 이어왔는데 어쩌면 내 대에서 끝날지 알 수 없네.”

그렇게만 된다면 환영할 일이었지만 최씨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다. 그것은 지난밤 꾸었다는 3대조의 현신이었다.

“3대 조부님께서 나타나 내게 마호(魔壺)를 찾으라는 게야. 그게 뭐냐 물었더니 한 마디로 귀신 단지라 그러더구만. 그것만 있으면 신통력을 발휘해 과거와 미래를 쏘옥 쏙 뽑아 낼 수 있다지 뭔가? 참으로 신기한 일이제?”

깨어보니 꿈이었다는 것이다.

“마호라는 게 어딨답니까?”

“그걸 모르니 답답할밖에.”

장민호가 혀끝을 찼다.

“아니,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도와 달라는 거요?”

최씨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주 오래된 무덤에 있다는 것이다. 어느 부잣집 대감이 돌아가실 때 함께 묻힌 무당이 무덤 안에 가지고 들어갔다고 했다. 장민호는 질겁하여 펄쩍 물러났다.

“남의 무덤을 도굴하자는 겁니까?”

“글쎄, 반드시 도굴이랄 수는 없고. 도굴이 될지 어쩔는진 모르지만 무덤 안에 들어가 마호를 찾는다면 내 우묵배미 다섯 마지기 논을 자네에게 주겠네. 어떤가?”

다섯 마지기의 논이면 배를 곯을 일은 없었다. 그러나 죽은 자의 안식처를 들쑤신다는 게 자꾸만 뒤가 켕겨 섣불리 결정하지 못했다. 최씨는 슬쩍 냄새를 피웠다.

“자네가 이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네만 못한다 해도 할 수 없네. 사실은 면서기로 있는 오필선이도 한몫 거들기로 했네. 오서기는 면에 있는 지적도(地籍圖)를 근거루, 오래된 무연고 무덤이  어디 있는지를 내게 알려주기로 했네. 그러니 문제가 생길 것도 없어. 일단은 무연고 무덤부터 파들어가니까 말이야.”

한사람이라도 더 거든다는 말에 장민호는 엉겁결에 약속했다. 그날부터 낮과 밤이 다른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처음과는 달리 최씨는 엉뚱한 욕심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오래된 무덤을 열고 들어가 그곳에 있는 부장품에 욕심을 낸 것이다. 아예 도굴꾼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장민호는 도굴에서 손을 뗀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했다. 이제까지 희희낙락 여유를 부리던 최씨가 애원조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굴하자는 것이었다. 그곳은 ‘대감묘’로 알려진 창하산 중턱의 묏자리로 그 묘는 쌍분처럼 거대했다. 어림잡아 삼사십 평은 좋이 되어 주검이 있는 아래엔 상당량의 부장품이 있을 것이란 계산이 나왔다.

“좋아, 이번이 마지막이다.”

장민호는 한밤중에 집을 나서며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묘를 좌우에서 파들어 갔는데 쇳덩어리 같은 석회(石灰)를 만난 것이다. 후대에 누군가가 도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검을 안치시키고 주위에 수백 근의 석회를 부은 것이다. 어느 쪽을 건들어도 출입구를 찾지 못하자 일단 원상 복구하고 철수했다. 며칠 후. 오서기는 군청에 들러 ‘대감묘’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가져왔다.

“나는 이곳이 벼슬살이를 했던 김대감이나 이대감의 묘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닐세 그려. 실제 벼슬은 아니 살았지만 연산군 때인가 언제 이름을 날린 무당의 무덤이란 풍설이 있네. 그래서 내 그때의 기록을 이렇게 찾아왔네.”

오서기가 필사해 온 내용은 ‘요사스런 무당을 성밖으로 축출했다’는 기록이었다. 그 무당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신통력이 있어서 많은 금백(錦帛)과 땅을 소유한 부자였다고 씌어 있었다. 그는 품속에서 탁본 한 장을 꺼내며 누가 들을세라 잔뜩 목소리를 낮추었다.

“여길 보게, 산세를 보아하니 분명 이 자리 아닌가. 수백년 전에 죽은 그 무당은 대단한 부자였을 것 같네. 어찌 보면 최씨가 찾는 ‘마호’라는 것도 있을지 모르겠어. 무덤 안에 귀하고 값진 것을 놓아두었으니 함부로 열지 못하도록 했을 것 아닌가. 그러니 좀 더 방법을 생각해 보세.”